5월 8일, 어버이날, 그리고 일본의 어머니날(母の日)에
맞춰 깨달음과 함께 선물을 준비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이 좋아하는
과일젤리, 카스텔라와 앙코 빵,
민트 사탕을 똑같이 포장을 하고 약간의
용돈도 넣어 우체국에 들렀다.
시아버님과 떨어져 시설을 옮겨가신 어머님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시고 예전보다
활동량이 늘었다고 한다. 두 분을 정기적으로
진료하시는 담당의께서 서로의 안부를
알려드린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여전히 2.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시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자식들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음을 알고 계시기에 이젠
언제나 올 수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톡이 왔다.
제주도에 언니와 서울에 있는 동생이
엄마를 보러 광주에서 잠시 모인 모양이었다.
오일장에 들러 장을 보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깨달음,, 이 사진 봐 봐, 언니랑 동생이
광주 내려갔대. 엄마랑 지금 시장이래 ]
작은 눈을 부릅뜨고는 그 시장의 튀김집이냐며
맛있겠다고 팥죽 사진은 없냐고 물었다.
항상 막 튀겨낸 오징어 튀김에
풋고추를 올려먹던 튀김집,,
엄마가 잊지 않고 샀던 꼬막 집,
일본에 가지고 갈 창난젓, 새우젓을
단골로 샀던 반찬집..
장을 모두 마치고 나면 루틴처럼 팥죽을
먹으러 갔던 말바우 시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린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통해
전국의 재래시장을 틈틈이 봐왔다.
촬영이 익숙하지 않은 유튜버들이
약간 흔들리며 찍어 놓은 영상들을 보면
마치 우리가 직접 시장을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실감이 나서 즐겨 보았다.
거리의 상인들이 외치는 리얼한 육성들까지
들리면 정말 그곳으로 순간이동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울의 남대문시장, 경동시장, 망원시장,
광장시장, 동묘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가락시장,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부평깡통시장, 제주도 민속오일장까지
둘러보며 과일이 왜 저렇게 싼 지,
지금은 봄동이 없는지, 왜 한국은 미나리가
통통한지, 참기름을 짜러 기다리시는
아줌마들의 파마한 뒷모습은 모두 똑같은지..
손바닥만 한 전복이 3개 만원이라는 게
말이 되냐며 흥분하기도 하고,
참외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둥,,
화면을 보며 눈으로 쇼핑을 하곤 했다.
재래시장에 가면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서 계획에
없던 것들을 이것저것 사기도 하고
보는 것마다 먹으려고 사달라는
깨달음을 달래기도 했었다.
한국에만 가면 참지 못하는 식욕으로
아침부터 입을 쉬지 않고 맛나게 먹는 게
귀여워서 격하게 말리진 않았지만 2년째
그걸 못하고 있으니 우린 그림의 떡을
보고 침만 흘리 듯, 영상으로 만족해하며
맛집들을 재입력하고 있다.
어제 대학 후배와 늦은 밤 통화를 했었다.
내가 블로그 글을 뜸하게 올리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바쁘냐고 묻길래
지금의 근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한국의 코로나 상황과 일본을 비교해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높여야 하니까 비타민 D 섭취를 위해
햇빛에 많이 노출되어야 하고 장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어드바이스를 들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하길래
콩이 적당히 씹히는 청국장과
산낙지, 코다리찜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너무 짠하단다..
[ 왜 내가 짠해? ]
[ 아이고, 청국장이랑,,산낙지..그게 뭐라고,,
그 먹고 싶은 걸 못 먹고,,,그리워하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네...얼마든지 사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더 짠하게 느껴져..]
[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슬퍼진다..]
[ 아이고,, 우리 언니..어떡해..먹고 싶은 거라도
마음대로 먹어야 병이 안 생길 텐데..]
[ 그니까.. 병까지는 안 나겠지만
아무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 내가 갈 수라도 있다면 바리바리
싸서 갈 건데 그러지도 못하고,,]
[ 그니까...]
작년 겨울, 여동생이 보내준 청국장으로 국을
끓여봤는데 내 조리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50%도 그 맛을 낼 수 없었다..
코다리는 코리아타운에서 구입해 한 번
해 먹어봤는데 역시나 전혀 코다리 맛이
나질 않아서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조기도 한번 사서 구워 먹어봤는데
깨달음도 나도 한 입 먹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던 기억이 있다.
깨달음은 시장에 가서 석쇠로 구워내는 돼지갈비와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내가 서너 번 해줬던 칼국수는 2% 부족함이
있어서인지 지금은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 당신은 한국 재래시장에 가면 뭐가 좋았어? ]
[ 생소한 물건들 보는 재미가 있고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호떡이나 튀김,
김이 폴폴 나는 찐빵이랑 만두에서 진짜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 그리고 할머니들이
가지런히 나물들 올려서 열심히 파시잖아,,
그런 모습들도 정겹고 사람 냄새가 섞여서
인간미가 넘친다고나 할까... ]
[ 나도... 그래서 좋아 ]
[ 일본의 재래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은 뭐랄까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느껴져.. 다들 팔고, 사는 사람들인데도 정이
묻어나는 것 같아, 서로를 아끼는 느낌?
모르는 사람들끼리인데도 공생한다고 할까,,.]
깨달음은 한국의 재래시장을 그렇게 느꼈다.
난 삶이 권태롭고 무기력하게 느낄 땐 무조건
재래시장을 찾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활기찬 삶의 현장을 직접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뭔지 모를 에너지를
듬뿍 받아왔었던 것 같다..
조금은 억척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재래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좋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삶의 향기가
진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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