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고 점심시간무렵쯤 깨달음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집 반대편에 있는 공원에
감을 놓아두고 왔다며 10년후에
큰 감나무가 될지모른다는 내용이였다.
깨달음이 공원에 놓아둔 그 감은
지난번 시댁에 갔을 때, 우리가 따 온 것으로
떫은 맛이 강해 먹지 못하고 숙성될 때까지
놔뒀다가 오늘에서야 버리게 된 것이다.
사람이 안 산지 2년을 훌쩍 넘기다보니
시댁은 갈 때마다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요양원에 들렀을 때, 시어머니가 부탁한
기모노를 가지고 가야해서 들렀다.
앞마당은 정글처럼 변해있었고 화분들도
흉하게 말라죽어 있었다. 올 때마다 깨달음이
물을 주곤 했는데 찬바람에
힘들었는지 무서운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날, 둘이서 딴 감을 새가 먹기 편한 장소에
놓아두고 20개 정도를 가져왔었다.
솔직히 난 그냥 모두 새들에게 주고 싶었는데
깨달음은 먹지 못하더라도 가져오고 싶어했다.
시어머니의 기모노는 저렴한 것부터
금액이 좀 있는 것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우리는 일단 모두 박스에 넣어
도쿄 집으로 가져왔다.
처분을 어찌할 것인지는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지만 기모노 전문 취급점이나
재활용센터에 일단 의례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머님이 언제부터 사서 모아두셨는지
알 수없는 아버님의 여름속옷과 겨울 내복들을
모두 챙겨 요양원에 갖다 드렸다.
오늘 난 깨달음이 감을 챙겨간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먼저 출근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깨달음이 보낸 카톡도 볼 시간이 없어
퇴근 전에서야 볼 수 있었다.
연말이여서 매일 송년회로 귀가가 늦은
깨달음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더니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단다.
그래도 깨달음이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먼저 자리를 잡았다.
[ 깨달음, 나는 당신이 감을 가져간줄도
몰랐어. 근데 왜 감을 그곳에 뒀어? ]
[ 응,,그냥,,날씨도 좋고,,공원이니까
혹시나 뿌리를 잘 내려서 어딘가에서
자랄 확률이 있을 것 같아서 ]
[ 카톡에서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던데 ]
[ 응,,당신도 알다시피, 그 감나무가 나랑,
우리 동생이름으로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한그릇씩 심은 거였어. 근데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시골집이 팔리면 당연히 감나무도
잘라내어버릴게 분명하니까 ]
그렇게 말하는 깨달음 표정에
서운함이 역력해 보였다..
[ 깨달음,,그렇게 서운하면 화분하나
사서 거기에 심을 걸 그랬다 ]
[ 집에서 못 키우지,,]
[ 아니,,싹이 나면 그 때 공원에 옮겨 심으면
되잖아 ]
[ 듣고 보니 그러네,,근데 그냥 잊을 거야 ]
오늘 공원에 둔 그 감들이 운 좋게
감나무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갑자기 시부모님 얘길 꺼냈다.
우리는 2주에 한번씩, 계절과일이나 쿠키,
카스테라 등 간식거리가 두분이 계시는
요양원에 보내지도록 우체국에서 계획한
정기 소포 보내기를 신청을 했다.
그 외에 두분이 좋아하시는 과자나
편하게 드실 수 있는 통조림등을 한달에
두번씩 보내드린다. 그러니 한달에
10개의 먹거리가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아버님이 맛있는 귤
도착했다며 고맙다는 전화를 받고
복잡한 심경이였단다.
(일본 야휴에서 퍼 온 이미지)
[ 나 있잖아,,그냥 80살정도 되면 적당히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 뭔 소리야? 아버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
[ 별 얘긴 안 했어..]
80정도 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90,100까지 장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냉정히 해봤다고 한다.
거동도 불편해지고, 남은 삶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살 수있다면 몰라도 그냥 죽지 않으니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게 살아있음에 대한
회의를 느껴질 것 같다고 했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무슨 뜻인지 아는데 요즘 100세 시대고,,
안 죽는다고 해서 자살할 수는 없잖아 ]
80이 되고 90이 되어서도 몸이 멀쩡해서 남은
삶을 즐긴다면 괜찮겠지만 자신의 일상생활,
식사, 대소변 보는 기본적인 거동이 자유롭지
않는다면 생을 정리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단다.
[ 생을 정리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기에
노인들이 죽지 못해 산다고 입버릇처럼 얘길 하지만
역시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거야
불편한 몸, 힘든 환경에 있어도 ]
내가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표정이 바꾸지
않았고 문득 삶의 가치라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없어서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자식들에게 민폐끼칠 일이
없어 편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단다.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깨달음, 그래도 살 때까지 살아보고 몸과
마음이 지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지,
시설 좋은 요양원도 많잖아 ]
[ 그냥, 오늘은 아버지가 늘 말했듯이
의미없이 그냥 살아있는 게 어찌보면
고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
아버님랑 오늘 그런 내용의 통화를 했냐고
제차 물어봤더니 자식, 그리고 부모에 대한
인과관계도 다시 생각했고 역시 무작정
장수하는 게 당사자도 그렇고 자식들에게도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단다.
며칠전에도 아버님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샌다는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편히 주무시게 약처방 받도록
간호사에게 연락해두겠다고 했더니
그냥 이렇게 있다가 죽을 건데 약은
먹어서 뭐하겠냐고 하셨다.
살아 있는 게 귀찮다고 하시는 부모님께
따뜻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깨달음은 꽤나 우울해 했다.
흐물흐물해진 홍시감을 버리면서
어머님의 기모노를 떠올렸을 것이고 언젠간
잘라져버릴 자기 형제 이름의 감나무도
아른 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님과의 통화를 하고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버린 듯했다.
100세시대가 모두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나도 잠시 해 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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