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갈 때마가 느낀다.
짜장면은 그저 치즈핫도그처럼 간식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던 깨달음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며
코리아타운에서 만났다.
가게 안은 나만 빼고 100%일본인이였고
모두가 20대 여성들로 가득했다.
[ 당신만 남자네...]
[ 나는 그것보다 어떻게 일본인들이 이렇게
짜장면을 먹으러, 그리고 이 집을 어떻게
알고 대낮부터 찾아와 먹고 있는지 놀라워 ]
[ 당신이 여기와 있듯이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겠지 ]
[참,, 대단하다.. 대단해.. 우먼파워..]
오랜만에 먹으니까 역시 맛있긴 하다며
짜장을 다 비비기도 전에 먹었다.
[ 그렇지? 원래 짜장면이 그래..
안 먹으면 생각나고 갑자기 먹고 싶은
소울푸드 같은 거야,,]
한국에 갈 때마다 듣도보다 못한 새로운
음식들이 생겨나는 걸 직접 보고 난 후부 터는
그것들을 모두 먹어봐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더니 자기는 이제 짜장면 먹을
군번이 아니라고 했었다.
[ 짜장면은 한국을 알기 시작한 초심자가
먹는 음식이라 생각했었지, 나처럼
베테랑은 짜장, 짬뽕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어 ]
[ 당신이 베테랑이야? ]
[ 그렇지, 웬만한 건 다 아니까 한국에 대해 ]
깨달음이 생각하는 웬만한 것이라
말하는 데는 과연 어떤 목록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 당신이 다 안다고 생각해? ]
[ 그렇지, 나는 40년 전 한국도 지금의 한국도
잘 알고 있지. 정치, 경제, 문화적인 것까지 ]
[ 아,, 그래...]
뒤늦게 나온 탕수육을 파인애플 소스에 찍어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여고생 두 명이
짜장면이 처음이라며 유튜브 영상을 따라
나무젓가락으로 짜장 소스를 비비면서
즐거워했다. 깨달음은 그녀들의 서툰
젓가락질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는지
곁눈질을 했다.
[ 깨달음,, 아무 말하지 마....]
[ 가르쳐 주고 싶은데..]
[ 뭘? ]
[ 파스타처럼 먹는 게 아니라고,
양파에 식초를 좀 치고 짜장에 고춧가루도
좀 뿌리면 더 맛있다고 ]
[ 하지 마,, 하지 마,, 그냥 냅둬 ]
[ 알았어..]
탕수육까지 깨끗이 비운 후 가까운 곳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 들어가
깨달음이 좋아하는 팥빙수를 주문했다.
[ 나,, 근데 한마디 해주고 싶었어..]
[ 알아, 근데 말 안 한 건 잘한 거야..]
[ 짜장을 그렇게 먹으면 안 되지 ]
[ 그냥 그들만의 세상은 그런 거니까
그러러니 해..]
숟가락에 돌돌 말아 파스타 먹든,
가위로 잘게 잘게 썰어 먹든 우리와는 세대가
다를뿐더러 궁금한 건 전부 인터넷에서 답을 찾고
학습하는 그들에게 중년아저씨의 참견은
황당할 것이고 괜한 오지랖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자기가 한국을 잘 아는
베테랑으로서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나씩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한국을, 한국음식을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자기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 당신은 한국 음식 중에 처음 접하고
당황했던 게 뭐였어? ]
[ 음,,,,역시 산 낙지였지..]
[ 일본에서도 오징어회 먹을 때
다리 꿈틀거리잖아 ]
[ 그러긴 하는데 낙지가 움직이는 것과는
비주얼이 다르잖아.. 지렁이 같기도 하고
실뱀 같기도 하고,,,]
[ 그래서 못 먹었어? ]
[ 아니. 움직임이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었어.
근데 선배가 소주에 담그면 낙지가 취해서
안 움직인다고 해 소주에 넣었던 기억이 나 ]
깨달음이 처음으로 본 한국은 나조차도 생소한
경험들이 많아 들어도 들어도 지겹지가 않다.
우린 카페에서 적당히 수다를 떨다
예정에도 없던 암반욕을 하러 갔다.
날이 쌀쌀해졌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해가 저물면 가을인 듯, 겨울 같은 예측하기
힘든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따뜻하게 몸을 만들어주자고 했다.
각자 좋아하는 방에 들어가 땀을 빼고 나와서
깨달음은 또 팥빙수를 주문했다.
[ 이것 봐,, 아까 거기는 팥이 가득이었는데
여긴 이렇게 조금밖에 안 올려져 있어 ]
[ 맛은 어때? ]
[ 맛... 그냥 시원한 맛.,,.. 아, 아까 그
여고생들 겨울방학 때 한국 간다는
얘기하던데 당신도 들었어? ]
[ 응, 안 듣고 싶어도 바로 옆이어서 들렸지 ]
한국 초심자들에게 가이드를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야 할 것, 꼭 사야 할 것로만
포인트만 꼭꼭 집어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관광 가이드가 아닌
한국 알림 가이드 같은 걸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
[ 무작정 관광지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여행자의 목적에 맞춰 맞춤 가이드 같은 걸 하면
여행자도 실속 있고 좋겠지? 그 사람의
관심분야에 맞춰서 전문적으로 안내를
하면 한국을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잖아 ]
[ 그러겠지..]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화를 체계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주면
음악은 물론 음식도 있고 사찰이나 박물관 등등
다양한 관심사에 맞춰 한국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당신은 그렇다면 민속촌이랑 북촌 좋아하니까
한옥이나 뭐 건축양식 같은 걸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
[ 그거 좋네!!!!, 정말 좋아, 내 전문이지 ]
깨달음이 갑자기 흥분하면서
왜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했는지
바보같다며 정말 진심으로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겠다며 코를 벌렁 거렸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건축물을 소개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해야겠지?
원래 자격증이 있나? 건축물 가이드?
나이제한이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가이드할 기세로
질문을 하는 깨달음은
약간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어쩌다 보니 얘기가 여기까지 흘렀는데
비로소 남편의 제2 직업이 결정된 것같아
괜스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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