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사 주겠다고 몇 번 했었는데
거부해 왔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전거도 바퀴를 두 번 바꾼 것 외에
외관상 촌스럽고 투박하긴 하지만
싱싱 잘 달리고 마트에서 물건 살 때도
앞 뒤로 바구니가 장착되어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깨달음과 함께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홈센터를 운동을 겸해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에 내 자전거 여기저기에
녹슨게 눈에 띄어 내내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 깨달음,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고장도 없고 ]
[ 아니야,,고장 없어도 그냥 바꿔.
너무 오래되서 촌스럽잖아 ]
[ 괜찮아,,남들이 뭐라든 ]
돈을 아끼려는 생각에서 했던 말이 아닌
그냥 온전한 내 마음이었다.
이동수단 중에 하나인 자전거는 그냥
아무 탈 없이 잘 굴러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그래도 좀 예쁜 걸 탔으면 하는
남편의 마음이 엇갈렸다.
[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당신한테
딱 어울리는 거 사줄게. 이거 너무
오래 탔잖아,,]
[ 그러긴 했지.그래도 아무렇지 않은데 ]
깨달음은 바꿔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며
쇼핑센터 안에 있는 자전거 매장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자전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내 체형에 딱 어울리는 전동자전거를 골라
점원에게 사용 설명법을 들었다.
한 번 타 보라는 권유에 밖으로 나가서
페달을 밟으니 솜털처럼 가볍고
너무 편해서 패달을 밟고 있다는
감각을 못 느낄 정도였다.
허공을 향해 발을 굴리고 있는 것처럼
마치 신세계가 얼린 듯, 뒤에서 누군가가
살면서 밀어주는 그 느낌이 아주 신선했다.
너무 편해서 이상하다고 했더니
모터가 달린 자전거 한 번 타시면
다른 건 힘들어서 못 타실 거라며
점원이 웃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깨달음이 결제를
하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우린 연하장을 사러
3층으로 올라갔다.
깨달음이 고른 것과 내가 고른 것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였지만 그냥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 깨달음, 오늘 술 조금만 마셔,, ]
[ 알았어..]
대학 절친들이 모인 송년회가 있다며
서두르는 깨달음에게 되도록이면
밤 10시 전에 들어오라고 말하려는데
이미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재활용 스티커를
사 와서 옛 자전거에 붙였다.
비록 볼품은 없었지만 기능성만큼은
탁월했던 자전거.
대학원시절에 도둑맞아 새로 급하게
학교 근처 작은 자전거방에서 몇 개 진열되지
않았던 자전거 중에서 가장 무난한 디자인이라
생각돼서 샀던 자전거와 17년을 같이 했다.
시원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재활용창고에 넣기 전에 한 번
안장을 쓰다듬었다. 고마웠고 수고했다고,
혼자 저녁을 먹고 저녁 9시가 넘어가자
깨달음에게 언제쯤 올 것 같냐고 문자를
했는데 웬 사진을 3장이나 보내왔다.
내가 다 알고 있는 동창들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안심하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인지
의중은 알 수 없지만 먼저 자겠다고 그리고
연하장 메시지 칸은 비워뒀다는 말도 남겼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노트북 위에 메시지가
적힌 연하장이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깨달음이 몇 시에 들어온 지는 모른다
분명 11시까지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확실한데 캐묻지 않았다.
술이 상당히 취해서 왔을 텐데..언제 썼을까,
내가 틀리지 않게 예시를 적어 놓긴 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베낀다 해도 생각보다
비툴거림 없이 바르게 잘 적혀 있었다.
지우개로 지운 흔적은 있었지만,,,
연하장을 고르면서 올 해는 특별한
메시지를 넣고 싶다고 했었다.
계엄,탄핵으로 어수선해진 한국을 보고,,
곧 신년을 맞이하는 이웃분들에게 용기와 힘을
더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연하장에 다 적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아마도 분명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한국 상황을 나만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는
깨달음에게,, 그래서 술이 취했지만
자기 마음을 꾹꾹 눌러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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