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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

친정에서 하룻밤이 남편은 행복했다

by 일본의 케이 202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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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울은

가을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용산역으로 이용하는 중에 깨달음에게

점심 메뉴로 뭐가 좋은지 생각해 두라고

했더니 비 오니까 칼국수랑 해물파전

같은 걸 먹겠다고 한다.

용산역 칼국수집엔 부침개류는 없어 

메뉴를 급 변경해 보쌈을 주문한 다음,

  꼬들꼬들한 칼국수 면 위에

보쌈을 한 점 올려 먹었다.

 

케이티엑스를 타기 전에 구입한 도너스와

한국에 오면 제일 처음 먹겠다고 고대하고

고대했던 삐요뜨를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껍질을 조심스레 깐다.

[  깨달음, 안 피곤해? ]

[ 응. 맛있는 거 먹으면 안 피곤해 ]

[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네 ] 

난 새벽에 일어난 탓에 눈이 시려와

 질끈 잠고 잠을 좀 자 볼 생각이었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신문 보느라 뽀시락 뽀시락,

도너스 크림이 옷에 묻었다고 닦느라고 움질움질,

특실석에서 제공되는 과자를 두 번이나 

갖다 먹느라 자리 이탈을 하느라

자꾸 눈뜨게 했다.

 

엄마 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마침 퇴근시간에 걸려 우린 꼼짝없이

1시간을 꼬박 도로에 갇히고 말았다.

엄마에게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면서

교통체증이 징글징글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깨달음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 징글징글,,, 지겹다는 뜻이야,,]

그렇게 도착해 짐 가방에서 엄마에게

드릴 선물들을 꺼내면서 깨달음이

어묵이 짜지도 않고 입맛에 맞을 거라며

국물 없을 때 편하게 데워서

드시라고 설명해 드렸다.

 

집 근처 추어탕집으로 이용해 저녁을

먹으면서 깨달음이 예전에는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는데 이번에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면서 좋아한다.

 

[ 이 튀김은 청양고추 넣어서 먹는 거지?]

[ 응,, 매워,,, 조금만 넣어 ]

 주의하라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풋고추를 5개나 넣는 걸 보고

엄마가 맵다고 말렸지만 깨달음은

이미 입안에 넣고 씹고 있었다.

[ 안 매워? ]

[ 응, 전혀!, 정말 맛있어 ]

[ 깨서방이 매운 걸 잘 먹네..]

[ 응,, 나보다 더 잘 먹어,,,]

[ 한국 사람 다 됐네..]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난 주방에서

 우리에게 주려고 담고 계시던 김치들을

마저 버무렸다. 파김치에는 새우젓을 좀 더

넣고 깨도 듬뿍 뿌리고  통에 담고,

 열무김치는 시원한 배를 갈아 넣어 비볐다.

[ 엄마,, 이제 김치 이렇게 담지 마,,

사서 먹으면 된다고 했잖아,,]

[ 사서 먹은 것도 좋은디,,그래도

내가 줄 것이라고는 김치뿐인디..

이거라도 가져가야제..]

티눈 수술을 했어도 뿌리가 뽑히지 않아

걷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엄마가 이

김칫거리를 사오셨을 걸 생각하니

난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깨달음이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한 번 눈치를 줬는데도 점점

웃음소리가 커지길래 뭘 보길래 그렇게

재밌냐고 했더니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 저기 봐 봐,, 케이크가 사람 얼굴이야,

촛불을 한꺼번에 끄는 게 웃겨 죽겠어 ]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가 힐끗 보더니 한국말을 못 해도

저렇게 재밌게 티브이를 보는 게 귀엽고

신기하다면서 깨서방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신다.

그렇게 깨달음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리모컨을 손에 쥐고 소파랑 한 몸에

되어서는 깔깔대며 티브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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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물을 마시려 주방에 나가보니

 계란이 삶아지고 있었다.

[ 엄마, 웬,,계란이야,,여수에서

아침 겸 점심 먹기로 했잖아 ]

[ 그래도, 깨서방이 삶은 계란 좋아한께

과일이랑 간단히 먹었으면 해서 삶는다.

내가 토마토도 사 놨응께 그것도

좀 썰어야것다, 깨서방이 좋아한께 ]

그냥 우유한 잔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엄마는 기어코 아침 상을

주점주섬 챙기신다. 그런데 또  

거실에 앉아 있는 깨달음이 

뭔가 오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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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지금 뭐 먹고 있어? ]

[ 응, 내가 냉동실에서 찾았어, 깨강정 ]

[ 배 고파? ]

[ 아니,, 입이 심심해서.근데 이거

진짜 고소하고 맛있어 ]

눈 뜬 지 20분도 안 지난 상태에서 이미

깨달음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입에 넣고 있었다.

엄마는 각종 과일과 과자, 밤, 떡, 고구마,

그리고 막 삶은 계란, 요구르트를 식탁에

빠르게 차리셨고 깨달음은 과일이

맛있다면서 아작아작 잘 씹어 먹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여수로 출발한 우리는

바로 간장게장집에 들린 다음 유람선을

타기 위해 커피숍에서 대기를 했다.

깨달음은 익숙하게 상투과자를 집어 들었고

아이스크림에 조금씩 찍어 먹었다.

[ 나는 종로에 그 달인집 상투과자가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가게마다 맛이

조금이 다르네, 이 집도 너무 맛있는데? ]

[ 그래.. 많이 먹어..]

깨달음이 엄마에게 맛있다면서 하나를

권하자 엄마는 깨달음을 빤히 쳐다보면서

나이를 먹었어도 깨서방은 항상 

볼 때마다 귀엽다고 하셨다. 

[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자기가 귀엽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거만해져 ]

엄마와의 대화를 100% 이해 못 해도 자기한테

귀엽다고 한 소린 줄 알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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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30분의 유람선을 타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우리는 서울행

케이티엑스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오징어를 뜯어먹으며

깨달음이 이제부터 어머님 집에서 자는 건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라고 해도

김치도 담고 우리가 먹을 과일이랑 간식들

사느라 아픈 다리로 마트로 가시고

그러셨잖아,, 다음부터는 그냥 어머니를

모시고 1박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머니를 안 움직이게 하는 방법인 것 같애 ]

 

6개월, 블로그를 쉬었다 -2

[ 케이야, 소포 받았어? ][ 아니? ][ 배송된 걸로 알림 왔는데..][ 미안, 나 지금 밖이거든, 집에 가서 다시 연락할게 ][ 그래 ]멀리 세미나를 왔다.이젠 참가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세미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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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죽어서도 이혼을 한다

지난주 미용실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냥 해 봤다고 늦더위가 계속되는데잘 있냐는 안부 문자를 받았는데그건 머리 다듬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계획대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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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여행을 모시고

가야지 아무것도 안 하실 것 같아.. 근데 당신

아침에도 엄청 잘 먹더라..]

[ 어머님이 아픈 다리 참으시고 시장에서

사놓으셨다니까 먹어야지,,

효도 차원에서..]

사과, 배, 감, 밤, 떡, 강정까지 엄마가 내어

주시는 족족 아주 잘 받아먹던 깨달음.

효도 차원에서 잘 먹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난 목구멍에

잘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 한쪽 발바닥에 겹겹이 감아놓은

붕대가 눈에 어른 거려서..

 

깨서방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 오머니, 선물 좋아요? ] [ 응, 마음에 들고 말고, 크리스마스에 딱 받아서 더 기분이 좋네 ] [ 한국은 추워요? ] [ 응, 징하게 춥네. 일본은 덜 춥제? ] [ 일본은 안 추워요 ] 항상 하는 말들은 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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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깨달음, 1박2일 즐거웠어? ]

[ 응,나는 어머니 집이 실은 너무 좋고 편해,,

근데,,우리가 가면 어머님이

고생하시잖아,,그래서 죄송하지 ]

깨달음은 엄마집에 또 오려면 티눈이 말끔하게

나아야하니까 효과가 확실한 티눈약을

보내드리자고 한다.

[ 예전에도 보내드렸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 ]

[ 그래? 내가 내 주치의한테 뭐가

특효약인지 물어볼게 ]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것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한국 냄새가 풀풀 난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져온 온갖 김치들이 밥상에 오르면 깨달음과 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우고 만다. 시간이 없어 바쁜 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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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정성이 담긴 약도 좋지만 좀 더 가까이서

케어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마음이

더 쓰이는 게 현실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어두워진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깨달음은 옆에서 검정 비닐봉투를

꺼내 깨강정을 씹으면서 씨익 웃었다.

언제 넣었을까...

엄마가 챙겨 넣어줬는지, 자기가 챙겼는지

알 수 없는 깨강정 냄새가

온 객실 안을 고소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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