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서울은
가을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용산역으로 이용하는 중에 깨달음에게
점심 메뉴로 뭐가 좋은지 생각해 두라고
했더니 비 오니까 칼국수랑 해물파전
같은 걸 먹겠다고 한다.
용산역 칼국수집엔 부침개류는 없어
메뉴를 급 변경해 보쌈을 주문한 다음,
꼬들꼬들한 칼국수 면 위에
보쌈을 한 점 올려 먹었다.
케이티엑스를 타기 전에 구입한 도너스와
한국에 오면 제일 처음 먹겠다고 고대하고
고대했던 삐요뜨를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껍질을 조심스레 깐다.
[ 깨달음, 안 피곤해? ]
[ 응. 맛있는 거 먹으면 안 피곤해 ]
[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네 ]
난 새벽에 일어난 탓에 눈이 시려와
질끈 잠고 잠을 좀 자 볼 생각이었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신문 보느라 뽀시락 뽀시락,
도너스 크림이 옷에 묻었다고 닦느라고 움질움질,
특실석에서 제공되는 과자를 두 번이나
갖다 먹느라 자리 이탈을 하느라
자꾸 눈뜨게 했다.
엄마 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마침 퇴근시간에 걸려 우린 꼼짝없이
1시간을 꼬박 도로에 갇히고 말았다.
엄마에게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면서
교통체증이 징글징글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깨달음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 징글징글,,, 지겹다는 뜻이야,,]
그렇게 도착해 짐 가방에서 엄마에게
드릴 선물들을 꺼내면서 깨달음이
어묵이 짜지도 않고 입맛에 맞을 거라며
국물 없을 때 편하게 데워서
드시라고 설명해 드렸다.
집 근처 추어탕집으로 이용해 저녁을
먹으면서 깨달음이 예전에는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는데 이번에 먹어보니
너무 맛있다면서 좋아한다.
[ 이 튀김은 청양고추 넣어서 먹는 거지?]
[ 응,, 매워,,, 조금만 넣어 ]
주의하라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풋고추를 5개나 넣는 걸 보고
엄마가 맵다고 말렸지만 깨달음은
이미 입안에 넣고 씹고 있었다.
[ 안 매워? ]
[ 응, 전혀!, 정말 맛있어 ]
[ 깨서방이 매운 걸 잘 먹네..]
[ 응,, 나보다 더 잘 먹어,,,]
[ 한국 사람 다 됐네..]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난 주방에서
우리에게 주려고 담고 계시던 김치들을
마저 버무렸다. 파김치에는 새우젓을 좀 더
넣고 깨도 듬뿍 뿌리고 통에 담고,
열무김치는 시원한 배를 갈아 넣어 비볐다.
[ 엄마,, 이제 김치 이렇게 담지 마,,
사서 먹으면 된다고 했잖아,,]
[ 사서 먹은 것도 좋은디,,그래도
내가 줄 것이라고는 김치뿐인디..
이거라도 가져가야제..]
티눈 수술을 했어도 뿌리가 뽑히지 않아
걷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엄마가 이
김칫거리를 사오셨을 걸 생각하니
난 썩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깨달음이 깔깔 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한 번 눈치를 줬는데도 점점
웃음소리가 커지길래 뭘 보길래 그렇게
재밌냐고 했더니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 저기 봐 봐,, 케이크가 사람 얼굴이야,
촛불을 한꺼번에 끄는 게 웃겨 죽겠어 ]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가 힐끗 보더니 한국말을 못 해도
저렇게 재밌게 티브이를 보는 게 귀엽고
신기하다면서 깨서방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신다.
그렇게 깨달음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리모컨을 손에 쥐고 소파랑 한 몸에
되어서는 깔깔대며 티브이를 봤다.
다음날 아침, 물을 마시려 주방에 나가보니
계란이 삶아지고 있었다.
[ 엄마, 웬,,계란이야,,여수에서
아침 겸 점심 먹기로 했잖아 ]
[ 그래도, 깨서방이 삶은 계란 좋아한께
과일이랑 간단히 먹었으면 해서 삶는다.
내가 토마토도 사 놨응께 그것도
좀 썰어야것다, 깨서방이 좋아한께 ]
그냥 우유한 잔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엄마는 기어코 아침 상을
주점주섬 챙기신다. 그런데 또
거실에 앉아 있는 깨달음이
뭔가 오물거리고 있었다.
[ 깨달음 지금 뭐 먹고 있어? ]
[ 응, 내가 냉동실에서 찾았어, 깨강정 ]
[ 배 고파? ]
[ 아니,, 입이 심심해서.근데 이거
진짜 고소하고 맛있어 ]
눈 뜬 지 20분도 안 지난 상태에서 이미
깨달음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입에 넣고 있었다.
엄마는 각종 과일과 과자, 밤, 떡, 고구마,
그리고 막 삶은 계란, 요구르트를 식탁에
빠르게 차리셨고 깨달음은 과일이
맛있다면서 아작아작 잘 씹어 먹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여수로 출발한 우리는
바로 간장게장집에 들린 다음 유람선을
타기 위해 커피숍에서 대기를 했다.
깨달음은 익숙하게 상투과자를 집어 들었고
아이스크림에 조금씩 찍어 먹었다.
[ 나는 종로에 그 달인집 상투과자가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가게마다 맛이
조금이 다르네, 이 집도 너무 맛있는데? ]
[ 그래.. 많이 먹어..]
깨달음이 엄마에게 맛있다면서 하나를
권하자 엄마는 깨달음을 빤히 쳐다보면서
나이를 먹었어도 깨서방은 항상
볼 때마다 귀엽다고 하셨다.
[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자기가 귀엽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거만해져 ]
엄마와의 대화를 100% 이해 못 해도 자기한테
귀엽다고 한 소린 줄 알고 좋아했다.
약 1시간 30분의 유람선을 타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우리는 서울행
케이티엑스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오징어를 뜯어먹으며
깨달음이 이제부터 어머님 집에서 자는 건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라고 해도
김치도 담고 우리가 먹을 과일이랑 간식들
사느라 아픈 다리로 마트로 가시고
그러셨잖아,, 다음부터는 그냥 어머니를
모시고 1박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머니를 안 움직이게 하는 방법인 것 같애 ]
[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여행을 모시고
가야지 아무것도 안 하실 것 같아.. 근데 당신
아침에도 엄청 잘 먹더라..]
[ 어머님이 아픈 다리 참으시고 시장에서
사놓으셨다니까 먹어야지,,
효도 차원에서..]
사과, 배, 감, 밤, 떡, 강정까지 엄마가 내어
주시는 족족 아주 잘 받아먹던 깨달음.
효도 차원에서 잘 먹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정작 난 목구멍에
잘 넘어가질 않았다.
엄마 한쪽 발바닥에 겹겹이 감아놓은
붕대가 눈에 어른 거려서..
[ 근데 깨달음, 1박2일 즐거웠어? ]
[ 응,나는 어머니 집이 실은 너무 좋고 편해,,
근데,,우리가 가면 어머님이
고생하시잖아,,그래서 죄송하지 ]
깨달음은 엄마집에 또 오려면 티눈이 말끔하게
나아야하니까 효과가 확실한 티눈약을
보내드리자고 한다.
[ 예전에도 보내드렸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 ]
[ 그래? 내가 내 주치의한테 뭐가
특효약인지 물어볼게 ]
지금 우리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정성이 담긴 약도 좋지만 좀 더 가까이서
케어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마음이
더 쓰이는 게 현실이다.
복잡한 심경으로 어두워진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깨달음은 옆에서 검정 비닐봉투를
꺼내 깨강정을 씹으면서 씨익 웃었다.
언제 넣었을까...
엄마가 챙겨 넣어줬는지, 자기가 챙겼는지
알 수 없는 깨강정 냄새가
온 객실 안을 고소하게 퍼져나갔다.
'일본인 신랑(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이 하고 싶은 말 (0) | 2024.12.10 |
---|---|
정신건강이 좋은 사람의 특징 (0) | 2024.11.24 |
감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남편 (0) | 2024.10.21 |
부부, 그래서 항상 노력해야 한다. (4) | 2024.10.07 |
시부모님께 남편이 물려받은 것 (1) | 2024.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