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청소에 필요한 도구와 세제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서로가 꼭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연말에 일주일정도 집을 비워야해서 미리
2024년도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내가 지난주부터 시간 나는대로 쓸고 닦고
해서 특별히 할 게 없었지만 깨달음과는
물건 버리기를 같이 하기로 했다.
브랜드여서 그냥 안 입고 놔 둔 옷가지들.
친구나 지인들에게 받아서 놔둔
장식품들과 그릇들,
비싸게 산 가전제품들,
지금껏 쓰지 않고 쟁여둔 것들을
모두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내가 10년 넘게 해 온 물생활을 정리하며
수조 두 개를 미련 없이
재활용으로 버리는 걸 보고
약간 반성했다는 깨달음.
[ 당신 방에 있는 이상한 액자, 그리고
LP판은 중고 거래 할 거지? ]
[ 응, 버리긴 아까워서,, 팔려고 하는데..]
깨달음이 결혼할 때 애장품?이라고
가져온 옛날 액자들이 이젠 골동품이 되어
버려서 처분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집에 들어와 옷을 막 갈아입자
생수가 배달되었고 뒤이어 우체부
아저씨가 오셔서 국제소포를 맡겼다.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들어간 깨달음은
새로 산 청소세제가 독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손장갑을 꼈다.
내가 엊그제 해서 별로 할 게 없을 거라는
말을 흘리듯 하고 난 김치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대추와 유자청을 꺼냈다.
그리고 우리 집 거실을 포함 모든 수납장을
열어놓고 그냥 버리자, 새것이어도 버리자만
생각하기로 하고 파헤쳤다.
우리 집에서 한식파티 때 사용했던
전기 카펫이 3개나 나왔고
가습기도 3대, 방석은 여름용과
겨울용 포함해서 20개,
시어머니가 주신 쟁반 2개, 스팀 전용 냄비,
양은 냄비, 과일용 칼 2개,
로봇청소기, 스테인리스 대야 세트, 손전등,
과일 접시세트. 야외 피그닉 찬합
화려한 색의 머그잔과 보온병,
기념품으로 받은 우산, 어느 호텔에서
받은 탁상용 시계 등등
도대체 몇 년동안 이렇게 있었는지..
이 많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살림을 제대로 못한 게
아닌가 싶어 진작 버리지 못한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일단 재활용 스티커를 붙인 것들을
깨달음이 챙겨서 가지고 나갔고
거실에 널브러진 것들은 일단 쓰레기봉투에
나눠 담고 내일모레까지 책과 옷들도
정리를 해서 쓸어 담기로 했다.
옷도 버리라는 내 말에 깨달음이 좀
당황한 기색을 하며 자기는 뭘
버려야할지 잘 모르니까 내게 봐달라고 했다.
20분쯤 지나 깨달음은 나를 자기 방에
불러서는 꺼내 놓은 옷가지를 몇 개 입어 보고
귀여운지 안 귀여운지 물었다.
[ 그냥,, 당신이 버리고 싶으면 버려, 그리고
오랫동안 안 입은 옷들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안 입으니까 ]
[ 아니야, 내 얼굴을 더 살려주고 멋지고
귀엽게 만들어준 옷이 있는데
그런 옷을 버리면 안 되니까
당신이 보고 결정해 줘 ]
[ ........................... ]
패션쇼를 하는 것처럼 목을 삐딱하게 기울여
보기도 하고 턱에 브이를 올리도 하며
한껏 폼을 잡았다.
[ 이건 어때? 이거 이탈리아에서 산 건 데..]
[ 신혼여행 때 산 거잖아, 나도 알아,,
근데,, 거의 3년 넘게 안 입지 않았어? ]
[ 그건 그래..]
[ 그럼 그냥 버려,,]
[ 그래도 신혼여행 때 당신이 산 준 건데..]
[ 깨달음, 그러면 그냥 당신 마음이
별로인 것만 골라내 ]
[ 알았어 ]
깨달음은 그 남방을 다시 옷장에 접어 넣었다.
내가 있어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방을 나와 따끈한 생강차를 끓여 들어갔더니
옷은 안 보이고 이불커버를 바꾸고 있었다.
[ 옷은? ]
[ 음, 당신이 이쁘다고, 귀엽다고 사 준 것들은
못 버리겠어서 그냥 다시 넣어뒀어.
난 아직 이별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
[ .......................... ]
저런 말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우리 생강차를 마시며 24년도를 잠시
회상했다.
잘 버티고 잘 이겨내고 잘 헤쳐 나온 1년,
아직 올 해와 이별할 준비가 덜 된
깨달음이지만 나머지 10일도
아무 탈 없이 마무리하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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