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시간에 깨달음은 졸렸는지
핸드폰을 꺼내 몰래몰래 뉴스를
읽었다. 내 앞 줄에 앉아 계신 분은
고개와 어깨가 왼쪽으로 기운상태로
꿀잠을 자고 계시고 목사님 바로 앞
여신도는 연신 고개를 떨구면서 잤다.
교인들도 이렇게 잠을 자는데 기독교적
개념을 거의 갖고 있지 않는 깨달음이
졸음이 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어 못본척했다.
축도가 끝나자 바로 초롱초롱한 눈을
하면서 빨리 나가자고 내 옷을
두 번이나 툭툭 잡아챘다.
아사쿠사(浅草)에서 1시 30분부터
열리는 네부타 (ねぷた祭り) 마쯔리를 보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고 싶어 했다.
가냘픈 피리소리와 거친 북소리가
뒤섞인 곳으로 가보니 네부타행렬이
출발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아오모리에서 봤던 네부타와는
비교할 수없을 만큼 빈약한 게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도 기대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서 좀 황당하다면서
아오모리 사과직판장으로 눈길을 돌려
사과를 한 박스 샀다.
[ 깨달음,, 집에 그냥 가자 ]
[ 아니.. 그래도 좀 보자, 이 네부타가
여기 상점가를 돌면서 움직이니까
그래도 좀 볼만하지 않을까? ]
행진이 시작되고 네부타가 움직이는데
네부타 사이즈가 너무 아담한 것도
그렇지만 개체수가 3개뿐이어서
마쯔리 분위기를 가득 채우기엔
상당히 역부족었다.
나는 자꾸만 아오모리 본고장에서 봤던
웅장함과 박진감으로 벅찼던
기억들이 상기되어서
아무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깨달음은 어떤지 살펴봤더니 묘한 표정을
하면서 나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 별로다,,아주 많이..,]
[ 아오모리랑 비교하면 실례될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긴 아사쿠사 한정 축제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아사쿠사에서 개최하는 마쯔리다 보니
잔뜩 기대를 하고 왔던 깨달음은
적잖은 실망을 했는지 술 한잔만
간단히 하러 가자면서 나를 붙잡았다.
마침, 가까운 초밥집에 자리가 비어있어
카운터 석에 앉아 바로 니혼슈를
주문하는 깨달음.
청명한 가을의 끝자락에
피리소리를 들으며 마쯔리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단다.
어릴 적부터 사계절 내내 각양각색의
마쯔리를 보고 즐기며 자라온터라
봄이면 벚꽃축제, 여름이면 불꽃축제,
가을이면 각 동네마다 신사축제,
겨울이면 눈꽃축제까지
거의 매달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게
마쯔리 었다며 아오모리를 다시 가서
오리지널 네부타를 또 보고 싶다고 했다.
[ 당신이 작년 내 생일 때
아오모리 온천여행 시켜 줬잖아,
생일선물로,,그때 너무 좋았어..]
[ 그래? 그렇게 좋았어? ]
[ 응,, 진짜 진짜 좋았지..]
[ 그럼,, 내년 생일 선물도 아모모리
온천으로 할까? ]
[ 좋아,,아,,잠깐,, 다른 생각이 떠올랐으까
시간 좀 줘 봐 ]
노릇노릇 잘 구워진 방어를 발라 먹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는데 열중했다.
[ 한국에도 네부타가 있다는데,,
욘동? 욘뜬? ]
[ 욘뜬? 그게 뭐야? ]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자 검색해서
나온 사진들을 보여줬다.
[ 아,, 연등축제...]
[ 이거 엄청 큰 데? 아모모리 사이즈랑
거의 같아, 모양은 다르지만,, 네부타와는
분위기도 다른데.. 여기 한복입고
다들 행렬하고 있어..사람도 진짜 많다..
여기,,이 절,,엄첨 크네...
연등이 밤새 이렇게 떠 있나 봐,,
규모가 대단한데...이거 재밌겠다 ]
재밌겠다는 마지막말을 왜 흐릿하게
흘리는지 눈치를 챘지만 캐묻지 않았다.
[ 이것 봐, 내가 좋아하는 종로 청계천이야,
네부타, 아니 연등 모양이 엄청
유닉크한 게 많아, 코끼리도 있어..
진짜 잘 만들었다.살아서 움직일 것 같아]
혼잣말인 것처럼 나한테 들어라고
계속 어필하는 소리였지만
내가 아무 반응을 안 하고 있었더니
팔뚝을 뚝 치면서 눈을 하트로 만들어
뜨거운 광선을 쏟아부었다.
[ 그래서,, 아오모리 안 가고
연등축제 때 한국 가고 싶다는 거지? ]
[ 응,, 내 생일 선물이니까 내가
원하는 거 해주는 거 아니야? ]
[ 그러긴 하는데.. 생각해 보고,,,]
네부타와 연등은 만들어진 이유와
성향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자기도 다 알고 있다면서 그냥 세계적인
축제 중에 하나를 보러 가는 것뿐이라며
자기 생일 선물로 꼭 부탁한다고는
자기 멋대로 끝맺음을 했다.
[ 깨달음, 정말,, 가고 싶다면 좀 더 정확한
날짜랑 일정을 알아보고 다시 말해 줘..
당신 스케쥴도 맞춰야할 거 아니야,
그럼 나도 다시 생각해 볼게 ]
[ 아,,당신은 4월에 제주도 고사리 따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딱이네 ]
[ .............................. ]
내가 엊그제 육개장을 끓이면서 제주도산
고사리가 다 떨어져서 내년에
고사리 따러 가야겠다고 그냥 아무
계획없이 스치듯 뚝 뱉은 말인데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업 된 깨달음이
술을 한 잔 더 마셔야겠다며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홀 아줌마를 향해 손을 들었다.
깨달음은 정신건강이 아주
튼튼하고 좋은 사람이 분명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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