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깨달음은 베란다 물청소를 했다.
나는 나물을 삶고 갈비를 손질했다.
해년마다 설 음식을 줄여가고 있는 우린
꼭 먹고 싶은 것만 준비하기로 했다.
설날이면 일본인들이 꼭 먹는 오세치요리도
깨달음용 1인분만 사서 놔두었다.
[ 깨달음,올 해는 명태전도 안 먹을 거야? ]
[ 응, 전은 먹고 싶을 때 바로바로
따끈따끈하게 해서 먹는 게 맛있으니까
설날에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
[ 갈비만 있으면 돼? ]
[ 응 ]
[ 정말 다른 거 준비 안 한다 ]
[ 응, 하지 마, 괜찮아 ]
나는 삶아진 나물들을 반찬통에 넣고
핏물을 모두 뺀 갈비에 양념을 버무려
가스불을 켰다. 그리고 과일들을
씻어 바구니에 옮겨두고
냉장고 야채를 꺼내 샐러드를 준비했다.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데 통유리까지 깨끗이 물청소로 끝낸
깨달음이 주방 쪽으로 와서는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 요리해야 되는데 ]
[ 나중에 해, 그거 그대로 두고 나가자 ]
[ 뭐 먹을 건데? ]
[ 이탈리안 맛집을 알아뒀거든 ]
이탈리안이라는 한마디에 앞치마를 얼른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입었다.
스파클링 와인으로 건배를 하며 올 한 해도
무탈히 보냈음에 감사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느낌상으로 꼭 3개월 정도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가버렸고 뭘 했나 되돌아봐도
딱히 이거다라는 결과가 없어서
허무하다고 하자 그래도 크게 아프지 않고
큰 사고 없이 지났으니 잘 지낸 거라며
다시 서로를 격려하며 칭찬했다.
[ 깨달음, 이 집 맛있다 ]
[ 그렇지? 내년 신정연휴가 8일까지니까
설날에만 집에서 먹고 다음날부터는
이렇게 밖에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
[ 좋지, 나는 요리 안 하니까, 근데
그렇게 편해도 될까,, 싶네..]
[ 이제 한 살씩 더 먹으니까 그만큼
더 편하게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 고마워 ]
파스타를 게눈 감추듯 먹고 나서 이번엔
다른 파스타를 하나 더 주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푸아그라를 잘라 접시에
놓아주는 깨달음에게 내년에 세운 계획
같은 게 있냐고 물었다.
[ 없어 , 아,, 그 여직원이 내년 5월에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래라고 했어 ]
[ 치료에 전념하는 거야? ]
[ 응, 시골에 내려가서 가족들이랑
같이 치료할 생각이래 ]
그래서 새 직원을 뽑아야 하는 것과
내년에는 직원들 데리고 해외연수를
다시 가볼까 하는데 세상이 시끄러우니
간다고 해도 한국이나 대만,
아니면 하와이를 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 전에는 깨달음 회사에서
세미나 겸 해외연수를 자주 다녀왔었는데
코로나로 못 가고 내년부터는 다시
해외를 다니며 건축 공부?를 하고 싶단다.
나에게도 내년엔 뭐 할 건지 묻길래
진정한 백수의 길을 걸어볼 거라고 했다.
[ 백수의 길? ]
[ 나도 몰라,,근데 정말 잘 놀아볼까 하고 ]
[ 뭐 하면서? ]
[ 음,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시작해 보려고 ]
[ 예를 들면? ]
[ 수영, 그리고 검도나 격투기 같은 거,
아님 태권도도 해 보고 싶어 ]
[ 격투기? 당신 태권도 안 해도
쌈 잘하잖아 ]
[.............................. ]
그냥 몸으로 익히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거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지금처럼 머리고
배우는 걸 하는 게 어떠냐며 악기나
서예가 과격한 운동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좋다고 강력 추전을 했다.
피자까지 아주 풍성하게 먹고 나온 우린
깨달음이 너무도 좋아하는 과일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 2023년도 하루 남았네..]
[ 내년에도 아프지 말고
더 즐겁게 더 재밌게 삽시다 ]
[ 그럽시다, 꼭 지금처럼만,,정말
지금처럼만 내년에도 살아봅시다 ]
우린 말없이 피식 웃었다.
여러분, 올 해도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조금만 아프시고,
조금만 힘드시고
조금만 애쓰셨으면 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4년 행복 가득,
사랑 가득한 한 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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