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집을 나와 히로시마(広島)행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좌석에 앉자 바로 깨달음은 도면을 꺼냈고
난 라디오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약 4시간을 달려야 한다.
나고야(名古屋)를 가는 2시간 남짓시간도
지루했는데 3시간 49분을 가야 한다고 하니
잠을 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는데 정신은 말똥말똥,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각자 사 온 도시락이며
샌드위치를 꺼내 아침을 먹느라
분주한데 음식 냄새가 앞 뒤로
풍겨서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몇 번 뒤척이자 안 자는 거냐고 물었다.
[ 쩝쩝 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 볼륨을 좀 더 높이지...]
음악소리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잡음들이
많아서 너무 예민한 내 감각기능과 신경계가
조금만 무뎌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도착하면 바로 마지막 점검를 해야 한다.
나는 로고 디자인만 확인하면 되고 깨달음은
체크할 게 많다.
지난주 깨달음이 1차 점검을 마쳤고
이번이 2차인데 지적했던 부분이
수정되었는지 재확인이 필요했다.
히로시마에 내려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관계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바로
점검에 들어갔다. 층마다 둘러보는데
깨달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 응,,, 세련됐네..]
[ 그렇지? 그 애가 센스가 있더라고 ]
깨달음 회사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신입은 아니고 깨달음 동창분이 회사를
접으며 자기 직원들을 챙겨줄 수 있냐고
깨달음에게 부탁을 해왔고 그걸 흔쾌히 수락한
덕분에 베테랑 직원이 두 명이나 늘었다.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데 관계자들이 준비한
장어구이 도시락(ウナギ弁当)을 받아 들고 또 우린
히로시마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 출발 시간까지 몇 분 남았지? ]
[ 30분 정도 ]
역 안에 유명한 오코노미야끼(お好み焼き) 집이
많은데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며 지난주에도
못 먹었는데 이번에 또 못 먹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진만 한 장 찍으며 봤는데
점심시간이 지났어도 거의 만석이였다.
우린 오사카(大阪)까지 1시간 30분을 또 타야 했다.
나는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이 아깝고
신칸센만 벌써 5시 넘게 타니까 너무 지겹다고
했더니 깨달음은 냉동 오코노미라도
사 올 걸 그랬다며 계속 오코노미 얘길 하면서
징징거리며 장어구이 도시락을 억지로 먹었다.
난 장어도 싫어할뿐더러 차가운 도시락은
더 질색이어서 주스로 대신했다.
오사카에 가야 할 이유가 내겐 없었는데
깨달음이 작년에 입찰에서 밀렸던 호텔이
완공되었고 올 5월에 오픈을 했는데
그 호텔을 기어코 직접 보고 싶어 했다.
자기 회사가 떨어지고 얼마나 멋지게 지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도착한 오사카는
코로나 때문인지 예전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향기는 그대로였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꼼꼼히 사진을 찍으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하는 깨달음.
액자들이 기모니(着物)인걸 보면 타깃이
외국인이라는 소리네..
통로 디자인도 심플하게 처리했네...
눈높이를 맞췄구나..이 디자인은...
마감 처리가 아주 깔끔하네...
방에 창문을 통유리로 쓰면 비싼데.. 과감하네.
비즈니스호텔인데 저렇게 비싼 샤워기를
굳이 달 필요가 있었을까..
동선을 아주 잘 뺐는데.. 그래서
넓게 보이게 했구나..
외국인들,특히 패밀리층을 겨냥한
타입으로 만들었네...
깨달음이 원래 말이 많은 건 알았지만
오늘은 완전 프레젠을 하는 듯했다.
[ 깨달음,좀 있다가 다시 찍고 밥 먹으러 가자,
나 진짜 배고파 ]
[ 알았어..]
[ 공간 활용을 아주 잘했어.. 저렴한 재료들을
티 나지 않게 잘 썼네.. 아,, 당신
어메니티 확인 좀 해 줘 ]
[ ....................................... ]
호텔 시박회 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체크를 하는 깨달음.
( 시박회는 호텔을 정식 호픈 전, 관계자들과
시공업체가 하룻밤 묵어보고 평가하는 것임 )
[ 이 드라이기가 비싼 거네..다른 건
아까 카운터에 있었어...목욕제 같은 거...]
[ 그렇지? 은근 소품에도 돈을 썼단 말이야.
음,,여기저기 돈을 아끼지 않은 흔적이 있어 ]
탐정도 아니고,,,참 열심히 숙제를 하듯
체크하는 깨달음이 대단하게 보였다.
우린 로바다야끼( 炉ばた焼)에서
술을 한잔씩 하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 깨달음,, 안 피곤해? ]
[ 응,, 전혀,, 당신은 피곤해? ]
[ 아니.. 괜찮은데 아까 문득 지난주에
당신은 몇 시간 신칸센을 탔을까 싶어서...
참,, 고생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
[ 지난주는 혼자 다녀서 지겨웠는데 오늘은
당신이 있어서 하나도 안 심심했어 ]
[ 그랬다면 다행이네..직접 당신이 아까
호텔보니까 어때? ]
[ 우리 회사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는데
역시 회사마다 색깔이 있잖아.. 여기 시공사는
디자인적으로 우리와 다른데 나쁘지 않았어 ]
일 욕심이 많은 깨달음은 자기 일을 누구보다
즐겁게 한다. 천직이라 생각해서인지
전혀 지겨워하지 않는다.
[ 깨달음,, 난 그런 당신을 존경해..]
[ 당신도 작품 할 때는 밤새고 하잖아,
내 집중력 하고는 다른 지구력이 있는 것 같아 ]
[ 다 옛날 얘기야.. 이젠 모든 게 귀찮아..]
[ 아니야,,당신은 곤조(根性)가 살아있어 ]
[ 욕이야? 칭찬이야? ]
[ 좋은 의미에서 말한 거야, 끈기가
대단하다는 거지..나는 실제로 그런
인내라든가 끈질긴 힘이 부족하잖아..]
우린 히로시마 현장 얘길 마저 하고 건축과
디자인의 관련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호텔로 돌아와 잠옷으로 갈아입은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춤을 췄다.
[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
[ 역시 여행은 즐거워,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오사카는 재밌는 거 같아, 약간
한국 온 것 같기도 하고,, 당신도 그렇지? ]
[ 응, 재밌긴 해 ]
도쿄와는 반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한국처럼
오른쪽으로 타는 것도 그렇고 재일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도 이곳 오사카이니
도쿄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게 사실이다.
깨달음만큼은 아니지만 여행 온 듯한 기분에
나도 머릿속이 상쾌해서 좋았다.
깨달음은 거울 앞에서 더 이상한 춤을
추면서 웃고 난리다.
아마도 저렇게 늦게까지 까불 것이다.
술을 더 먹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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