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를 가기 위해 공항 라운지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기분 탓인지 유난히 쌉쌀한 커피가
목구멍에 오래 머물렀다.
원래 카페인에 민감해 전혀 마시지 않았는데
마시기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지난번 한국에서 가족들이 내가 커피
마시는 걸 보고 낯설어했는데
이젠 난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잔다.
뒤편에 앉은 깨달음이 우유를 한 잔 가져다주면서
미팅 내용에 관한 짤막한 브리핑을 했다.
깨달음이 리조트 건설로 일본 전국의 리조트를
틈만 나면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홋카이도에
있는 호시노리조트(星野リゾート) 세 곳을
다녀오기로 했다.
호시노리조트는 현재 일본 국내외 40개 이상의
숙박시설을 가지고 있다. 럭셔리한 호텔부터
온천, 관광호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캐주얼 호텔까지 다양하고
개성적인 숙박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첫날 숙소는 아사히카와 (旭川)에 있는
오모7호텔이다. 환대를 뜻하는
일본어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에서
오모를 따와 호텔명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를 호텔까지 안내해 줄 거래처 직원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어 차 안에서
이동을 하며 미팅이 이뤄졌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깨달음은 오키나와에
건설 예정 중인 리조트 설계에 관한
노하우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한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나왔다.
거래처 직원분이 미리 예약해 둔 일식집에서
해산물덮밥이 나왔는데 사시미를 좋아하지 않는 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술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다음날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고 가는
대화를 메모하며 들었다.
내가 거의 못 먹고 있다는 걸 알고 깨달음이
힐끗 나를 쳐다보길래 괜찮다고
술잔을 들어 올려 보였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토마무(トマム)까지
스케줄을 재확인하고 일식집을 나와
호텔로 돌아와 5층에서 장작난로로 불멍을
하는 공간이 있다길래 와인을 한잔씩 들고
제일 편한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내내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었다.
홋카이도에도 다른 리조트가 많이 있을 텐데
왜 호시노리조트만 세 곳을 택했냐고 했더니
장소와 타깃이 다르면 어떤 형태로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을 했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리조트 스타일은 남겨둔 상태에서
캐주얼한 느낌과 일본스러움을 조화롭게
접목시키고 잘 살려놓았는지 보고 싶었단다.
[ 내일 가는 토마무는 스키 타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리조트야, 해외에서도
스키뿐만 아니라 설경을 보려 많이 와 ]
[ 그렇구나.. ]
술기운인지 장작의 열기 때문인지 빨갛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고 깨달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 좋아, 호텔도 마음에 들고,,]
[ 배 안 고파? ]
[ 응, 괜찮아, 그것보다 여기 불멍 너무 좋다 ]
[ 그지? 나도 오랜만여서 진짜 좋네 ]
우린 한참을 말없이 타닥타닥 소리에
귀 기울이며 타들어가는 불꽃을 내려다봤다.
그렇게 30분이 지나도록 그곳에 앉아
어지럽게 흐트러진 생각들을 정리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일 잡힌
미팅에 대해 다시 얘기 나눴다.
[ 깨달음,, 근데 우리 일하러 온 거야?
아님, 쉬러 온 거야? ]
[ 겸사, 겸사 ]
[ 근데, 나 자기 전에 리포트 작성해야 되잖아 ]
[ 응, 그게 당신 일 이니까..]
[ 정말 일하러 온 거네..]
[ 어딜 가나 일은 해야 돼, 당신 돈 받잖아 ]
[ 받지.. 그래서 일 하는 거잖아,,]
[ 그니까, 오늘 이 호텔에 대한 것들을
당신의 시선에서 디자인적인 면을
평가해야 돼 ]
[ 알아.. ]
돈을 받았으면 그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난 이날 밤, 커피를
옆에 두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곳이 리조트든 휴양지든
일은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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