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데
깨달음이 날도 좋으니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
[ 느닷없이 웬 바람쐬러야? ]
[ 바다 보고 싶다면서, 가자, 옷 입어 ]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난 외출 준비를 하고
깨달음은 신칸센을 예약했다. 목적지는
도쿄와 가까운 아타미(熱海)로 결정하고
잠깐 가서 맛있는 점심 먹으며 바다 냄새
맡고 오자는 것이였다.
빨래는 둘이서 대충 널어두고 집을
나서는데 깨달음이 콧노래를 불렀다.
[ 깨달음, 되게 오랜만인 것 같아..]
[ 그렇지, 당신 다리 다치면서 못 움직였으니까
3개월 이상 됐지. 외출한 지..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게 재밌다 ]
[ 맞아 ]
아타미(熱海)는 온천지로 도쿄와 가까워
한국의 가족, 친구들도 찾았던 곳이며
깨달음이 설계한 호텔이
몇 군데 있어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
평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타미 역 맞은편 커피숍은 그대로였다.
깨달음이 천천히 바다 쪽으로 걸어가다 점심을
먹자고 한다.
[ 어,, 여기.. 문 닫았네 ]
[ 그러네.. 엄마가 여기 생선조림 맛있다고
그랬는데.. 또 올 거라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아깝다...]
코로나로 여기저기 문을 닫은 가게들이
꽤나 눈에 띄였다.
[ 당신 다리 괜찮아 ?]
[ 응, 보호대 차고 와서 괜찮아 ]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다 깨달음이 반대편
공사현장을 보고는 잽싸게 뛰어갔다.
공사현장만 보면 직업병이 발동하는 깨달음은
남의 공사? 에 관심이 많다. 무슨 건물이 서는지,
회사는 어딘지 늘 사진으로 남겨둔다.
건물 뒤로 돌아가서 사진을 찍는지 현장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지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 돌아왔다.
[ 우리 회사 현장은 아직까지 공사 못하고
미루고 있는데 왜 여긴 하는 거지? ]
[ 아, 그 코로나 때문에 중단된 호텔? ]
[ 응, 말해야겠네.. 진행해도 되겠다고 ]
깨달음은 핸드폰에 뭔가를 서둘러 메모했다.
20분쯤 걸었을까,,, 바다는 평온했다.
집에서도 늘 보는 바다인데 직접 와서
냄새를 맡아보면 코끝까지 닿는
비릿함이 싫으면서도 좋다.
선선한 9월 바람이 추운지 아이가 더 이상
물 속에 못 들어가고 주춤거리는데 아빠는 딸과
모래성을 쌓느라 아들은 잊고 있는 듯했다.
우린 모래밭 계단에 앉아 잔잔해서 아무런
동요도 없는 바다를 응시했다.
나는 지난 3개월의 시간을 돌아보았고
아마도 깨달음은 아까 봤던 현장을
되돌려 봤을 것이다.
[ 점심은 뭐 먹을까? ]
[ 난 생선구이 먹을래 ]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북적되지 않은 한적한
가게를 찾아 앉아 니혼슈(日本酒)로
건배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 역시, 밖에 나오니까 좋다 ]
[ 코로나가 아니면 더 멀리 갔을 텐데..]
[ 여기로도 충분해 ]
사시미가 맛있다며 깨달음은 술은 연거푸 마셨다.
역 앞에 있던 맛집들이 없어져서 서운하다는
얘기를 하다 깨달음이 내년에 한 달 살기는
또 제주도에서 할 거냐고 물었다.
우린 코로나로 한국에 2년간 못 갔으니
한 달 살기를 해야 충족이 될 거라는
웃기는 합의를 봤었다.
[ 음,, 제주도도 괜찮은데 한번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울에 언니, 동생, 친구도 있고
당신도 서울을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다고 했잖아 ]
[ 그러긴 했지..]
[ 부산도 괜찮을것 같아. 내 친구들 많고 ]
[ 음,,, 광주에서 한 달 살기는 어때? ]
솔직히 광주는 내 고향이긴 하지만
한 번도 광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할 거라
생각해보지 않아서인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 광주는 볼 게 없어. 아니, 갈 데도 별로 없는데 ]
[ 어차피 렌터카 빌릴 거잖아, 그리고 장거리는
케이티엑스 타고 다니면 되고 ]
[ 그러긴 하는데... 좀 불편하지..]
깨달음 왈, 광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다면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 집에서 아침을
먹고 엄마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전라도뿐만 아니라 전북, 경상남도에서
열리는 장날을 돌아다녀볼 수 있다면서
광주는 지리적으로도 제주도도 가깝고,
부산도 가깝지 않냐고 묻는다.
[ 맞아,, 그럼,, 그건 효도 한 달 살기네..]
[ 얼마나 좋아, 일석이조잖아,, 어머님도
좋아하시고, 우리도 재밌고 한 달 살기를
하는데도 의미를 두면 좋잖아 ]
[................................................ ]
광주도 좋은데 한 달 살기는 좀 그렇지 않냐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차근차근
맞는 말만 하는 깨달음에게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니혼슈를 마신 탓에 알딸딸해진 우린 가게를
나와 바다쪽으로 다시 방향을 돌려
30분정도 명상의 시간? 을 갖다가
역으로 돌아와 간단히 쇼핑을 했다.
신칸센에 올랐을 땐 4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 깨달음, 우리 오늘 완전 완벽했어 ]
[ 응, 점심도 맛있게 먹고 바다도 보고
선물도 사고,, 무엇보다 기분전환됐잖아 ]
[ 맞아,, 고마워 ]
[ 별말씀을,,,]
깨달음이 역 앞 부동산에 나온 별장이랑
맨션을 잠시 훑어봤는데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긴 했지만 이렇게 마음이 내킬 때
왔다가는 게 훨씬 재밌다며 자기 친구들처럼
이곳에 별장 사재기를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지만 올여름에도 깨달음 선배가
하코네(箱根)로 거처를 옮겼을 정도로
주변에선 도심을 떠나
노후를 한적한 곳에서 보내고 있다.
[ 깨달음,, 당신은 도심을 좋아하더라, 원래
나이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
[ 난,, 싫어,, 시골은 할 게 없잖아, 난 도시의
중심부가 좋아,, 활기차고 할 일도 많고 ]
[ 나도 시골이 좋은 건 아닌데..... 그래도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찾아지잖아,,]
[ 그니까 광주에서 한 달 살기 하자는 거야 ,
휴식을 취하려고,,, 효도도 하고,, ]
[ .................................. ]
내 말은 그 뜻이 아니었는데 깨달음은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었다.
깨달음이 그런 계획을 염두에 두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데 효도라는 말이 자꾸만 걸려
정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될 것 같다.
깨달음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을까...
난 내 휴식과 즐거움만을 생각했기에
엄마가 계시는 광주는 안중에 없었고
특별한 의미부여도 하지 않았다.
매사에 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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