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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모두가 그냥 버티고 산다

by 일본의 케이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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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져온 열무김치와 얼갈이, 그리고

묵은지를 챙겨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랩으로 돌돌 말아 두 겹으로 싼 후

보냉가방에 넣어 집을 나섰다.

한국에서 돌아오면 한 번 보자고 인사치레로

했던 말인데 그녀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고

만나기를 원했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약속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 같았다.

한국을 다녀오고 나면 이래저래 할 일들이

늘어나서 마음이 어수선한 상태인 걸

그녀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나를 보자 늘 하는 소릴 한다.

 [  케이짱은 자식이 없어서 좋겠다, 난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데도 10명만큼이나 힘이 들어 ]

[ 케이짱은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좋겠다.

우리 남편은 곧 정년퇴직하면 백수 되는데

노후를 어찌해야할지 걱정이야 ]

[ 케이짱은 시부모님 안 계셔서 좋겠다, 난 

가까이 살아서인지 항상 불편해 ]

내가 그녀와 오늘 약속을 지킨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내가 속했던 모 단체의 책임자에게서부터

받은 부탁이 있어서였다.

요주의해서 관찰해야 할 인물이기에 항상

그녀의 입장을 그녀의 상태를 우선시해야 하는

임무가 있어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 입장에서 보면 난 자식이 없어

걱정할 일이 생길 게 없고 남편이 경제력이 있어

노후 걱정을 안 해서 좋게 보이고

시부모님이 두 분 모두 돌아가셔서

시댁일로 신경 쓸 일이 없어 부러운 게 맞다.

그녀의 시각에선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내 자리가 좋게만 보일 게다.

또한 그녀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들에서

나는 자유롭다는 게 크게 작용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삶은 모두 우메다(梅田) 상이 선택한 것이라고

 경제력 없는 남편을 배우자로 선택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시댁이 가까운 것도

해결할 방법이 분명 있지만 방관해 왔고

지금껏 당신의 의지에서 맡긴  결과이지 않냐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결과론은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난,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일이고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벌써 5년이 넘게 만나고 있지만

마음의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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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외롭고

항상 우울하고

항상 자신감이 없고

항상 무기력하고

그래서 삶의 의미가 없고,,,,

[ 우메다 상, 다시 그림 그려볼래요? ]

[ 음,,, 요즘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나 같은 사람이 꽤나 많은 것 같아서 같이

공유하고 싶은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 그림은 별로 안 하고 싶은 신가 봐요? ]

[ 음,, 그림은 좀 지루한 것 같아서 뭔가

활동적인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

나를 바꾸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 ]

[ 굳이 바꾸실 필요 없지 않아요? 그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하시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

 

[ 그래도 저랑 이렇게 만나면 좋지 않아요? ]

[ 좋아,, 기분 전환도 되고, 케이 짱 덕분에

이렇게 오리지널 한국 김치도 먹어보고

그러잖아, 감사하게 생각해 ]

[ 저는 우메다 상이 항상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움직이셨으면 해요 ]

좋아하는 일, 무슨 일을 했을 때 가장 

가슴이 뛰는지, 몇 시간이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런 질문은 항상 만날 때마다 과제처럼

하고 있는데 그녀 대답은 늘 같았다.

[ 하고 싶은 게 특별히 없어 ]

[ 아까 유튜브에 관심 보이셨잖아요, 전용 카메라

사지 않아도 우선 핸드폰으로 영상

올리는 것부터 한 번 해보시면 재밌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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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나온 우메다 상이 정박해 있는

유람선을 타고 싶어 했지만 시간대로 맞지 않아

포기하고 그녀의 집이 가까운 시부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결혼 전부터 약간 우울감이 강했다는

우메다 상은 결혼 후 잠잠해졌다가

아이를 낳고 1년쯤 지났을 무럽부터 다시

살아가는 게 지치고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어떻게 살아왔으며

학창 시절, 그리고 사회인으로서의 대인관계,

결혼을 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마치 처음 얘기하는 것처럼

다시 내게 알려주는 우메다 상.

[ 너무 완벽하고 잘하시려고 하다 보니까

번아웃 같은 게 자주 오신 게 아닌가 싶어요 ]

[ 착실히 산 죄 밖에 없는데 병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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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엄마에겐 딸이 최고다

아침에 눈을 떠 사방을 살피고서야 이곳이 내 방인걸 인식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2주가 지나가는데 지금도 가끔 잠에서 깨어나면 이곳이 어딘가 엄마집인지, 호텔인지, 제주도인지 착각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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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메다 상,, 일기 같은 걸 적으시나요? ]

[ 아니..]

[ 일기도 좋고, 블로그 같은 것도 좋고

인스타도 한 번 해 보세요, 그러면 하루를 

정리하고 돌아보는데 조금 도움이 되고

여러 사람들 사는 모습들 보면 뭔가 나를

자극시키는 테마 같은 게 보일지도 모르거든요 ]

[ 그래... 좋은 생각이네.. 뭐든지 해 봐야겠네 ]

난 헤어지기 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방법을

링크해서 보내줬다.

그녀가 내가 말한 조언들을 실천에 옮길지

전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하는데

내가 제안한 것 들 중에 그녀에게 하나라도

기억에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후쿠시마산을 안 먹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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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상처 투성이가 되고 너무 착실히 살다보니

나만 맨날 손해 보는 것 같고

너무 착하게 살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날

바보 취급하는 것 같고,,

그녀뿐만 아닌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가지고 있는 삶의 번뇌와 아픔이다.

다 그렇게 산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그저

버티며 사는 것이다. 그 버팀이 버거워지면서

서서히 마음에 병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응어리가 커져만 간다. 그렇지만

그런 세상을 모두가 이겨내고 사는 건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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