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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왜 우린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가..

by 일본의 케이 201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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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도착하자 깨달음은 인파속으로

사라졌고 난 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 

 번화가 사람들 속에 나도 빨려 들어갔다.

오후 늦게 부랴부랴 오사카에 온 이유는

깨달음이 직접 확인해야할 현장이

 있어서 코트만 걸쳐입고 신칸센을 탔다. 


체크인을 하고 약속장소로 가는데 벌써

어둑해진 밤거리는 조금전에 봤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반쩍거렸다.

깨달음과 예약석에 자리를 잡고 따끈한 정종으로

건배를 하는데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달달한 알코올이 뭔지모를 

긴장감을 풀어준다.

[ 깨달음,,이상하다,내가 긴장한 것도 없는데 

술 한잔 들어가니까 몸이 풀리는 느낌야 ]

[ 추워서 그랬던 거 아니야? ]

[ 그랬나,,,,]

[ 당신, 요즘 공부하느라 힘든 거 아니야? ]

[ 아니야,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


[ 여기 맛있지? 내가 예약할 때 이 카운터 석만

남았다고 그랬어. 위에 3층까지 꽉 찼나 봐 ]

[ 응,,근데 눈앞에서 이렇게 구워서 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

[ 1월에 시험 있지? ]

[ 응,,]

[ 쉬엄쉬엄 해, 새벽에도 불 켜있던데? ]

[ 응,,단순히 내만족을 위해 하는 거니까

힘들 것도 없어 ]


지난주에 대학동창이 내게 딸의 진로상담을 

하면서 일본취업에 대해 묻다가

내 근황을 얘기했더니 언제 쓸지 모를

 자격증을 스팩 쌓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 더 적어넣기 위해 

자격증이라는 자격증을 죄다 따 놓는

취준생처럼, 풀어먹지도 못하는 공부를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고 쓴소릴 해댔다.

이 나이에 무슨 스팩이냐고 그냥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공부욕심 좀 그만 부리라며 잔소리를

 퍼붓던 친구 목소리가 떠올랐다.


옆에서 깨달음은 직원과 통화를 꽤 길게 했다.

지난달에 남자직원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해서

일단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잡아두긴 

했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1급 건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뭔가 잘 할 줄 알았는데 정말 공부만 하는

직원이여서 일머리가 전혀 없었다고

하지만, 3년을 데리고 있으면서 어느정도

현장도 익숙하게 만들어 놨는데 퇴사하겠다고

 하니 속이 상한다고 했다.

[ 공부는 되는데 일머리가 없는 직원이 있고

일머리는 일등인데 이론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는 직원도 있고,,

인사관리, 사람관리하는 게 머리 아파

[ 당신 회사 직원들, 퇴사했다가 또 몇 년 있으면

다시 들어오고 싶다고 꼭 그러잖아, ]

[ 그니까, 다른 회사 가서 고생을 해봐야

우리 회사가 얼마나 편한지 안다니까 ]


깨달음은 흥분된 어조로 지금껏 자기 회사 

떠났다가 돌아온 직원들을 한명씩 나열하며 

자기 회사 나가서 사회생활이 얼마나 

험하고 냉정한지 경험해 봐야 한다며

어찌보면 자기 회사를 한 번 떠나보는 게

진정한 사회생활을 해 볼 수 있으니

잘 된 일인지 모르겠단다. 

 공부 머리만 있는 직원은 어떻게 가르쳤냐고

 물었더니 그냥 현장을 돌아다니게 하고

 미팅 때 항상 출석시키고 발표도 적극적으로 

하라고 했고 현장 진행과정, 상황파악과 

융통성을 기르게 했다고 한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 현장은 전혀 다르지만

 이론도 탄탄해야 기본적인 실수를 안 하니까 

지금 다른 직원인 야마모토 군이 자격증

 따려고 열심히 공부중이란다.


[ 당신이 한 번 도전해 볼거야? 건축사? ]

[ 내가 왜 해..지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건축사는 무리야, 무리 ]

나는 고개까지 저으며 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깨달음과 나는 전공분야가 달라 공부하는 것도

현장에서 부딪히는 상황도 많이 다르다.

[ 그래도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딸 것 같은데? ]

[ 아니야,,못해..그리고 자격증만 

많이 있음 뭐해...]

풀어 먹지도 못한다는 친구말이 스쳤고

깨달음에게는 다시 한번 못한다고 못을 박았다.

돌이켜보면 난 부가 제일 쉬우면서도

 어려웠던 것 같다.

할 때는 쉬우면서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려운 거 또한 공부였다. 그래도

 착실해 해나가면 그만큼의 성과가 정직하게 

나오는 것 역시 공부밖에 없었다.


공부야 매일매일 하는 것이고, 무슨 불치병처럼

 책을 안 보고 있으면 불안한 증상이

졸업을 하고나서도 계속되었다.

끊임없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나라도 더 외우고,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며 

머릿속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 내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뒤쳐진다는

강박증 같은 게 분명 나에게 휴식을 

주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노파심이라면 무슨 노파심에서인지.

염려증이라면 뭐가 그리도 염려스러운지,

강박증이라면 무엇때문에 강박상태로 10년

넘게 이 긴장상태를 유지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원인모를

불안감이 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나처럼 알수 없는 강박에 쌓여 하는 공부는

정작 내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취준생처럼 밤낮으로 공부를 해야하는 

요즘의 젊은 청년들, 또한 나처럼 나이 50이

 넘어도 책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건 어쩌면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내 자신이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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