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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우리가 더 미안해요, 엄마

by 일본의 케이 2019. 12. 30.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깨달음을 기다린지

 1시간이 넘어가자 난 예약해둔 광주행 

케이티엑스를 취소하고 마음을 비웠다. 

하필 같은 시간대에 타항공사에서 3대가 

한꺼번에 도착하는 바람에 외국인 관광객이

입국심사를 통과해 나오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취소를 하고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해 금요일이라 티켓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광주를 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지친 표정으로 깨달음이 입국장에 나타났다.

계단까지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들이

 넘쳐나 기다리는데 배가 꼬르륵 거려서

 기내식 안 먹은 걸 후회했단다.

일단,,택시를 타고 동생이 어렵게 예약해준

 케이티엑스를 타기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광주행까진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차분히 식사를 하고

 엄마에게 늦여졌음을 전화드렸다.


엄마 집에 도착했을 때는 6시, 

도쿄에서 아침 8시 40분 비행기를 탔지만

광주에 도착하고 보니 저녁이다.

도대체 몇 시간 걸린 건지....

엄마는 깨서방을 보자마자 멀리서 돈 들이고,

시간들고 오느라고 고생했다며 겉절이를 비벼서

저녁을 먹자며 저녁상을 준비하시려고

해서 그냥 밖에서 먹자고 했다.

그 와중에 깨달음은 막 삶아낸 꼬막을

까먹느라 이성을 잃고 엄마가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마치 점심을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까먹었다.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는 일주일전에

리폼을 한 이곳 저곳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깨달음은 너무 좋아졌다고, 새 집같다면서

돈이 많이 들지 않았냐, 혼자서 다 하셨냐,

조명이 세련되서 좋다, 벽지는 누가 골랐냐,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하셨냐,

쇼파는 얼마주고 샀냐 등등,

별 것을 다 물었다. 그리고 엄마가 

 미쳐 마무리 하지 못한 부분들,

각 방에 커텐달기를 해드렸다.  


 키가 작은 엄마가, 큰 커튼을 혼자서 달기

 힘드셨다며 깨서방이 해주니까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내 방에 커튼을 달기 위해 거실에 앉아 

핀을 꼽고 있는 깨달음 모습을 보고

엄마가 흐뭇해 하시면서 고생해서 한국까지

왔는데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깨달음은 이렇게 형님들 없이 자기

 혼자 광주에 오는 게 너무 행복하다면서

자기 혼자 오면 어머님의 사랑과 관심을

오롯히 다 받을 수 있어 좋다며

무슨 일이든 시켜 달라고 했다.


엄마에게 통역해 드렸더니 엄마는

어째 깨서방은 해가 가고 나이를 먹어도

귀여운지 모르겠다며 깨서방에게 

꼬막 먹고 싶어서 왔으니까 많이 먹고 

가라면서 꼬막을 또 내오시자 마지막 남은

 커텐을 옆으로 밀어놓고 자리를 잡고 앉아 

맛있게 생긴 꼬막은 입으로, 좀 윤기가 없는 건

 내일 아침 반찬용으로 분리를 시켰다.

잠 자기 전이니까 적당히 먹으라고 했더니 

이렇게 살이 꽉찬 꼬막은 한국 거 뿐이라며

갯벌이 일본과 달라서인지 찰지고 

맛있다며 나한테 사진을 찍어두란다.

[ 왜? ]

[ 일본 가서 먹고 싶으면 보려고 ]

[ .......................... ]


그걸 본 엄마는 삶아서 일본에 좀 가져가라고

하셨고 깨달음은 진짜 가져갈까하고 

내게 물었지만 난 못들은 척 했다.

다음날, 우린 식사를 하고 베란다 청소를 위해

화분들을 정리하고 브라인드도 뜯어낸 뒤

유리창도 닦고 내 방에 있던 묵은 책들도

 모두 정리를 했다.


엄마는 깨서방에게 일을 너무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며 같은 말을 계속했고

깨달음은 갠차나요(괜찮아요)갠찬나요로

답을 했다.

책을 알맞은 높이로 묶는 모습이 영락없이

니기 아버지 같다면서 깨서방을 볼 때마다

어째 니기 아버지가 보인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또 고개를 갸우뚱 거리셨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깨달음이 커텐에 핀 꼽는

사진을 자매들에게 보냈더니 큰 언니가

핀을 꼽는 도톰한 손이 아빠 손처럼 보인다고

했었다고 하니까 참 히한한 일이다고 

엄마는 깨달음을 또 물끄러니 쳐다보셨다. 


그 날 저녁, 깨달음이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엄마가 사주셨고, 깨달음은 밸트까지

풀고 마음껏 먹었다. 엄마와 나는 귀찮아서 

안 먹는 덕분에 깨달음은 자기가 좋아하는

갈비뼈를 혼자서 다 먹어 좋다며 열심히 뜯었다. 

[ 깨서방, 이번에 일을 너무 많이해서 미안해서

 어찌까, 피곤하것어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피곤해요 ]

[ 깨서방이 없었으믄, 또 혼자서 몸살을 하고

했을 것인디 깨서방이랑 딸이 와서 해준께

 금방 다 해부러서 속이 시원하긴 한디

너무 미안하네..,,]

깨달음은 뼈를 뜯으며 괜찮아요, 좋아요,

진짜 괜찮아요, 집이 새집으로 변해

너무 좋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 엄마, 그런 소리 하지마, 뭐가 미안해.

우리가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없었으면 혼자 하셨을 것인데..역시,,

자식들이 가까이 있어야 엄마가 편할 건데 ]

[ 아니,,, 나 혼자서도 잘 한디..

커텐이랑 브라인드는 너무 높아서..

깨서방이 고생했응께 많이 먹으믄 좋것다 ]

엄마는 깨달음 접시에 갈비를 계속해서

올려주셨고 깨달음은 절임무에 싸서

먹으면 밤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행복한 얼굴로 잘도 받아 먹었다.

그렇게 2019년도 크리스마스는 엄마와

 함께 보내고 우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게 별게 아닌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자식들에게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신다. 늙은 부모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오는 자식이 

훨씬 더 미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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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하루 남았습니다.

 50대에 들어서고 보니 어른들 하신 말씀들이

 틀린 게 하나 없다는 생각에

 왠지모를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2020년도 늘 그렇듯 나름 부지런히,

나름 열심히, 나름 알차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때론, 넘어지고 때론, 치열히 경쟁하고

때론 미치게 누군가가 미울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론, 정신나가게 웃고 떠들기도 할 것이며

어떤 날은 내 자신이 싫어서 몸부림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선물처럼 주어진 귀한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생각입니다.

올 한해도 저희 블로그에 많은 사랑과

많은 관심 보여주신 이웃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사랑 가득한

한해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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