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 깨달음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시간 00부동산으로 나오라며
바빠서 긴 설명은 못하고 지난번 우리와 집 계약이 파기 되었던
부동산측이 우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단다.
부동산 사무실에 도착하자 담당직원과
그 사무실 소장님이라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먼저 우리 부부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난 뒤,
담당자가 지난번 계약 파기를 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간단히 말하면, 집주인이 이사하려고 했던 곳이 생각만큼 쉽게
구해지지 않았던 것과 아이들의 통학, 전학문제로
우리와 약속했던 기간에 집을 비워줄 확신이 서질 않아서
팔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집주인 부부가 생각을 했는데
역시 큰 아이의 통학이 너무 멀어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지었고
이 집을 팔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부부에게 팔고 싶다고 부동산측에 연락을 해왔단다.
http://keijapan.tistory.com/629 (계약파기에 관한 글)
그래서 혹 우리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고 매입 해주신다면
지난 번의 실례를 사과하는 뜻으로
부동산에서는 소개비를, 집주인은 매매가를 조정하겠다고 했단다.
이 일련의 이야기가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 우린 모든 얘기를 좀 더 세세하게 듣고 난 후,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집을 계약하기 위해
나와 깨달음은 괜히 분주했다.
은행엔 사람들이 많았다.
무심히 번호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내 번호가 불리워지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오늘이 계약을 하는 날이다.
내 명의로 계약을 하고, 내 명의로 낸 대출금을 난 매달
꼬박꼬박 갚아내야할 것이다.
통장을 집어든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부동산 계약이 시작되었다.
먼저 우리측 담당자(사토군)이 긴장된 얼굴로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법률사항을 하나 하나 읽기 시작했었다.
간략한 부동산법을 시작으로 건축법, 도로법까지
지켜야할 사항, 알아야할 기본 양식들.....
3년후에는 00쪽에 도로계획이 있으며
그 도로는 00도로라 칭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보상은 어떻게 될 것이며,...
소논문 정도의 분량의 책자가 4권이나 있었다.
대략 중요사항들만 읽어가는데도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 맨션이 세워지고나서 행해진 공사및 앞으로 추진하려고하는
맨션관리협회의 스케쥴도 읽어내려갔다.
내가 한국에서 아파트 샀을 때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다시 한 번 이곳이 일본임을 확인했다.
사토군의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들은 소장님이 부가설명을 하셨고
깨달음의 질문에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설명을 하는 동안 또 30분이 지났다.
그렇게 읽어가고 있는데 옆 사무실에 집주인이 방금 도착했음을 알렸다.
집주인과 정식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집주인은 지난번 일에 대해 다시한 번 사과를 했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도 거듭 했었다.
인감도장을 꺼내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상대측 부동산 담당자에게
지금 맨션의 설비및 중요사항들을 약 30분간 설명을 듣고
본계약서 작성에 들어갔다.
매입자란에 내 이름을 적어 넣는데 여러생각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모든 계약을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을 때는
2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배가 너무 고파 가까운 우동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깨달음이 한국말로
[수고 하셨습니다]라고 말을 걸길래 물어보았다.
원래 부동산 매매시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왜 중요항목을 하나하나 읽고 체크하냐고 물었더니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의무화 되어 있기에
모두 읽고 매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나
자료청구를 요청하면 바로 자료들도 준비를 해줘야 한단다.
하다못해, 에어콘상태, 전등, 현관문의 열림과 닫힘의 상태까지 체크해서
정상임을 확인했다는 증명서류도 우리에게 주었다.
2시간이 넘은 계약시간이였지만 참 대단한 일본임을
다시 한 번 느꼈던 부분이였다.
그리고, 지난번 당신이 계약파기 됐을 때, 우리집이 안 될려고
인연이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해놓고서는
다시 이렇게 우리가 계약을 하게 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그랬더니
얼마나 귀한 인연이냐고
그 맨션이 우리가 사 주길 기다렸다고 생각하란다.
[ ........................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눈을 흘겼더니
그 맨션이 꼭, 우리가 주인이 되어주길 바랬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온 거라며 처음 계획 세웠던 것처럼
멋지게 집을 꾸밀 생각에 자기는 기분이 좋단다.
깨달음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아무튼, 계약을 했고 이젠 우린 이사준비를 해야한다.
나도 모든 걸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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