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열어 둔 탓에
바람결이 차가웠는지 잠에서 깼다.
어젯밤 잠들기 전부터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변호사라는 직업.
내 주변에는 법조계 사람들이 별로 없어
친근감이 형성되지 않지만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주로 하는지 검색을 해봤다.
내가 소속된 단체는 꽤나 크다.
어디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회원이
되었지만 단체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하나의 개인으로 돌아간다.
사건의 발단은 올 초였다.
단체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소송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며 놀다가 발생한 일인데
어느 아이는 구타를 당한 피해아동이
되었고 다른 아이는 구타를
한 가해아동이 되었다.
그저 놀다가 흔히 있는 일이라고 선생님들은
입을 모았지만 일이 자꾸만 크게 번졌다.
그 중심에는 피해아동의 아버지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져 온 일명
[ 누가 변호사 아들을 때렸는가 ]로
변질되어 버린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 있었다.
오늘은 그 사건? 과 관련된 선생님과 함께할
자리를 마련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약속장소로 갔다.
내가 임원이다 보니 회원들 의견을 모아야
해서 만날 수밖에 없는데 가게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웠다.
술 한 잔 하실 거냐고 물었더니 마시고 싶다길래
니혼슈(日本酒)를 일단 주문했는데 둘이 서로
잠시 눈치만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 사토 상(佐藤), 한 잔 해요,,]
잔을 따라주며 마음고생 많이 한 것에
대해 감사와 미안함을 전했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SNS를 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가볍게 일상 얘기를 좀 하다
사토 상이 바로 그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 아무 일도 아니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늘 아이들끼리 있는 일이었어요,
장난감 뺏고 뺏기고,, 그러다가 싫다고
미니카를 든 채로 몸을 흔들다가
얼굴을 맞았고, 그게 하필 긁힌 자국이
생겨서,,, 나를 포함해 직접 그걸
목격한 선생님은 없었고,,,원래
그 마코짱(변호사 아들)이 조금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선생님들이 항상
주의를 주긴 했어요.
얌전한 아이가 아닌 건 사실이었고
욕심도 많고,,좀 그랬어요,,
그날도 그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친구들을 밀쳐놓고 사과를 안 해서
사과하라고 선생님이 타일렸거든요,
그래도 끝내 사과하지도 않고,,.]
유치원에서 흔하게 있는 일인데 변호사
아버지는 누가 자기 아들을 때렸는지
범인 색출을 원했고
그 걸 방치한 선생님들에게까지
소송을 걸겠다고 했다. 또한
그 아버지는 책임 선생님들 사퇴 및
운영진 전원 체인지를 원했었다.
사토 상은 이번 사건으로 지난달에
사표를 냈고 다른 선생님은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그래도 조금은 누그러졌어요,, 그 아빠,,
주변 다른 학부모 시선이 곱지 않음을 느꼈는지.
의사인 와이프도 참,, 심했거든요 ]
이젠 그냥 마음이 홀가분하단다.
그 일 이후로 유치원에 출근을 해서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기 힘들었고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오며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고 있었는데
사표를 던지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단다.
어떤 사유든 직장은 잃었지만 좀 쉬었다가
다시 들어갈 생각이라며 아이들이 그 일로
상처받지 않을지, 그리고 정작 마코짱도
유치원 옮기면서 적응을 잘 못한다고
들어서 어쩌면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만약 마코짱 아버지가 변호사가 아니었어도
엄마가 의사가 아니었어도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질 수가 있었을까,,
내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야 할 일이
있었을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포장을 해서
변호사라는 직권을 자기처럼 힘없는
일반 시민에게 휘둘렀던 건 아닌가,
생각들이 참 많았는데 사표를 내고 나니
그냥 그쪽 부류들만이 사는 삶의 방식들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토 상.
[ 인생공부했다고 생각해요, 서민으로
태어나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계선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예전부터 있었겠지만 내가 직접 이렇게
갑질을 당할 거라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것도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람한테..
그게 가장 쇼크였던 것 같아요 ]
우린 시원한 바지락 된장국을 먹으며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토 상에게
내가 다녀온 곳들을 몇 곳 추천했다.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가봤다길래
한라산, 만장굴, 백록담, 함덕해수욕,
우도까지 사진으로 보여줬더니 꽤나
흥미롭게 사진들을 쳐다봤다.
먼저 고향인 오사카에 가서
부모님이랑 시간을 보낼 거라고 한다.
[ 사토 상, 우리 만나려고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거죠? ]
[ 그러죠, 저도 아직 회원이니까요 ]
다음에 새 직장 잡으면 한 번 또 보자고
하고 마지막 잔을 비웠다.
갑과 을이 존재하는 이상,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난다는 갑질,
블로그에는 이 사건의 일체를 상세히
적을 수 없어 답답하지만
일본의 갑질도 만만치 않았다.
갑질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타인의 평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면의 나약함과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자 앞에서 힘을 과시한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타인에 무관심하며
오직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당연히 공감능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자기 스스로를 단단한 사람이어서
전혀 타격감이 없다고 사토 상은 말했지만
살이 3킬로나 빠진 걸 보면 많이
힘들었다는 증거이다. 이제는
모두 털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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