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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일본의 배려문화는 이렇다

by 일본의 케이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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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물을 한 잔 하러

주방에 갔는데 싱크대 옆에 흰 종이가

놓여있었다.

아침을 수제비로 부탁한다는 메모였다.

한번 훑어보고는  물컵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예전 같으면 일요일 아침도 일찍

일어났을텐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근 3년간, 우린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어

주말은 늦게까지 뒹굴뒹굴한다.

언제나 교회에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깨달음이 적어둔

메모가 떠오른다.

아침부터 무슨 밀가루인가 싶어

다시 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늘 먹었던 누룽지로 조식을 차렸다.

깨달음이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 왜 갑자기 수제비야?]

[ 그냥,,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

[ 수제비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지? ]

[ 몰라..]

[ 아무튼, 아침부터 밀가루는 안돼]

[ 수제비가 만들기 어려워?]

알기 쉽게 검색해서 이미지를

보여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만들기는 간단해, 근데 아까 말한 것처럼

아침부터 난 밀가루를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만든 거야, 당신도 되도록이면

밀가루보다 누룽지가 나을 것 같아서 ]

[ 나 누룽지도 좋아해.. 근데 지난번에

삼청동 수제비 얘기가 나와서인지

먹고 싶더라고 ]

[ 그렇게 먹고 싶으면 오후에 해줄게]

[ 아니야,, 괜찮아 ]

깨달음은 주말만큼이라도 나를 위해

자기 스스로 아침을 챙겨 먹겠다고

했던 걸 까맣게 잊고 있는 듯했다.

약속했던 거 잊였냐고 했더니 기억한단다.

[ 그런데도 수제비 해달라고 했어?]

[ 내가 수제비를 못하니까 ]

[ 지금 하고 못하고를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당신이 주말은 차려 먹겠다고

했다는 걸 생각해 봐 ]

 자기가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 사과를 하는 깨달음인데

오늘은 좀 망설이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생각하는지

누룽지 그릇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온라인 예배를 보고 나서 난 잠깐 외출을

했다가 오후에서야 들어왔다.

깨달음은 자기 방에 있다가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거실로 나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 아니야, 미안할 것까진 아닌데

좀 당황했다고나 할까.. 그랬어 ]

[ 아니야 미안해 ]

자기가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해 봤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점점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이 변해가는 것 같았다며

배려가 부족했음을 사과하겠다고 했다.

결혼하고 10년이 넘도록 난 아침상을 차렸다.

일본인 부부 60프로가 조식을 빵으로

한다는데 우린 한국 백반 스타일로 쉬는 날도

별 반 다르지 않게 아침을 준비했고

그게 귀찮거나 싫지 않았다.

지금껏 깨달음이 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난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아침이든, 저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 준비를 해 왔는데 오늘 수제비를

부탁한다는 메모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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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자기가 주말에는 알아서 먹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못 지킨 것도 함께..

먹고 싶다고 말하면 뭐든지 내가 바로

만들어줘서 그걸 감사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반성한단다.

깨달음에게 은근히 가부장적인 면이

있다는 걸 결혼하고 바로 알게 됐지만

남자들은 다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마도 이번 코로나로  3년간

더 가까이 지켜보면서 조금씩 이기적인 면이 

짙어져가고 있는 걸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수제비는 나에게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인 건 분명한데 난 해주지 않았다.

주말에는 자신이 챙기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매일 이런 밥상을 받는 게 

당연시되고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난 즐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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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작년, 내가 골절상과 대상포진이

한꺼번에 왔을 때 깨달음은 환자인 나를 위한

배려가 별로 없었던 기억이 응어리처럼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 초, 내가 항암치료 중일 때도

깨달음은 내가 차린 밥상을 기다렸었다. 

내가 아파서 요리를 할 수 없는 탓에 자신이

맛있는 걸 못 먹는다는 말을 했을 때

깨달음의 다른 모습을 본 것같아

꽤나 낯설었다.

그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어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내 기분이

깨달음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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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를 계기로 우린 서로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개선해 갈 부분과

어떻게 배려를 해야 하는지,

손익을 따지지 않는 배려는 어떤 것인지,

진정한 배려라는 게 무엇인지

각자가 이해해야 할 것들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살면서 일본인의 배려가

어떤 형태로 베풀어지는지 잘 알고

있는데 부부지간에도 그런 계산적인

배경이 깔려서는 안 되지 않겠냐는 

내 생각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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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행해지는

사회적 배려는 참 잘 되어 있다.

그 배려는 집단생활에 꼭 필요한 규칙이며

기본 매너에 속하기 때문에 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모두가 지켜야하는

질서처럼 자리잡혀 있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에 있을수록 이기적이고

자기가 우선이 되는 비배려문화 역시도

상당히 팽배해서 난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도 더더욱 부부관계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부부들이 그러겠지만 특히나

국제커플은 살아도 살아도

서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맞춰나가야할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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