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월급날 하는 둘만의 파티를 오늘에서야 했다.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 전국적으로 8만을 찍었지만
스테이 홈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와서인지 이곳 도쿄는
여느 날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분위기이다.
깨달음과 나, 위드 코로나 생활에 적응돼서
어떤 동요도 하지 않고 각자의 일에 충실하며
지내고 있다. 불가피하게 외식을 할 경우엔
조금은 방역이 철저한 호텔에서 하자는
룰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깨달음이 미팅이 있어 양복차림을 했으니
나도 드레스 코드를 맞춰야 될 것 같아 정장을
입었는데 건배할 때 어깨가 모여드는 걸 보니
군살이 쪘는지 나잇살인지
몸에 변화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 당신은 정장이 잘 어울려.. 아주 멋져 ]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깨가 넓어서..]
[ 남자한테 나는 멋짐이 있어... ]
[ 원래.. 내가 좀 남자 같잖아 ]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말들을
해가며 건배를 했다.
[ 2022년, 벌써 한 달이 지났네..]
[ 응, 정말 시간이 빠르네 ]
[ 내일모레. 한국은 설날이라며? ]
[ 응,,]
[ 한국이고 일본이고,, 이젠 완전히 코로나 전,
생활 스타일로는 못 돌아가겠지? ]
[ 그러겠지. 전 세계가..]
깨달음은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직원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했고 난 한쪽으로 들으며
휙 지나가버린 1월을 되돌아봤다.
[ 그 직원, 와이프 친정이 이바라키(茨城)인데
연근 농사를 한다면서 전 직원들에게
팔목만 한 연근을 하나씩 주더라고,
아. 그리고 그 와이프네는 한국처럼
구정을 쇤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설명해 줬지 ]
[ 뭘 설명해 줬어? ]
[ 한국에서는 설날에 뭘 먹는지. 일본처럼
세뱃돈도 준다.. 뭐 그런 한국풍습에 관한 거 ]
난 아마 그 와이프분이 재일동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와인을 반쯤 비울 때쯤, 우린 점점 말 수가
줄었고 주변을 괜스레 두리번거렸다.
코로나 때문에 빈 테이블이 많아서인지
유독 우리만 돋보였고 웨이터 세 분과
오픈 주방의 셰프가 다들 우리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 아, 깨달음,, 올해 목표가 뭐라고 했지?
희망 같은 거 ]
[ 난,, 올해.. 꼭 복권이 당첨되면 좋겠어 ]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복권에 맞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라고 타고나거나,
미리 점지된 사람들의 몫이라고 몇 번이나
같은 얘길 했었는데 깨달음은 여전히
복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 깨달음, 정말 당첨되고 싶으면 일상에서
착한 일들, 선한 생각들을 많이 해야 될 거야 ]
[ 나,,, 착한데... 아주 많이... ]
본인 입으로 자신이 착하다 말하는 자체가
벌써 결격사유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깨달음에게
자신도 모르게 불쑥 먹게 되는 나쁜 마음들,
은연중에 이기적이고 권위적이었던 행동들을
버리는 게 당첨의 지름길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도를 닦아야 될 것 같다며 자기가
안 착하다고 생각하냐고 되물었다.
[ 착하긴 하지. 근데 안 착한 부분도 꽤 있어 ]
[ 어떤 부분이 안 착했어? ]
아주 진지하게 묻길래 둘 사이에 있었던
복잡한 상황들을 몇 가지 예를 상기시키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은 원래 착함보다는
악함이 많은데 교육과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노력을 한 덕분에 선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고, 가끔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걸 보면
착한 것만은 아니였다고 하자
쇼크라며 와인잔을 들었다.
[ 내가 그랬구나... ]
[ 깨달음, 당신만 나쁜 게 아니라 나도 나쁘고,
즉, 모든 인간 자체가 착하지 않다는 거지 ]
우린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착한 인성이었는지
아님 악한 인성이었는지 토론하듯 의견을 냈다.
인간은 원래 착하게 태어나는데 주변의 환경이나
욕망, 욕심 때문에 악하게 된 것인지,
태생이 착하지 않아서 악한 일들을 자행하는 게
아닌지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풀어냈다.
[ 결론은,, 어쨌든 착하게 살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네..]
[ 그런 소리지..]
우린 레스토랑을 나와 지금껏 착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행동들을 떠올려보며 자기반성을 하며
길을 걸었다.
착함과 악함의 경계, 그걸 구분 짓는 기준 역시
개인차, 보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에게는 더없이 착했던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이에게는 희대의 악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착함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몸에 베인 습관들에서도
착함은 묻어나 보이고 특히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본성이 확연히 나타난다.
싸웠을 때, 위기에 빠졌을 때,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이 대처하는 태도에서
그의 본성을 눈치챌 수 있다.
착함과 악함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겠지만
언제나, 매사에 한결같은 태도와 행실이 얼마만큼
뒷받침되어 있는지가 관건이 아닌가 싶다.
겉만 착한 사람은 상황에 따라
이중성인 면을 바로 보이고 만다.
깨달음은 자신이 착하다 생각코 행한 행동들이
상대에게 불편했을 수 있었다는 점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며
그냥 적당히 착하게 살면 될 것 같단다.
착함과 나쁨이 항상 붙어 다니는 이유는
처음부터 착한 사람이 없듯,
악한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그저 모두가 악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사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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