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장례식장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노야마 상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다.
깨달음 회사의 세무 관련 업무를
봐주었던 노야마 상.
난치병을 앓고 있긴 했지만 50대 중반이라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자들도
많이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장엔 노야마가 아닌 한국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저기 사이(崔)라는 성이 한국어로 뭐야? ]
[ 최야, 최, 성이 최 씨였네 ]
노야마상이 재일동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국 이름은 처음 보는 거라며 깨달음이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간다며 귓속말을 했다.
누님들이 와 계셔서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바로 스님이 오시고 식이 시작됐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시부모님을 보내드린 날을
떠올리며 스님이 읊는 불경 소리를 들었다.
극락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시라는
말씀이라고 내 멋대로 해석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노야마 상에게
모두가 꽃을 들어 관 속에 넣었다.
작은 누나의 아들이 상주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조카는 노야마 상이 생전에
한국 아이돌 콘서트를 다니며 모았던 팸플릿,
그리고 소녀시대 인터뷰가 실린 잡지들,
CD, 캐릭터 인형, 사진을 차곡차곡
관 속에 넣으면서 가까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깨달음에게 머쓱했는지 소녀시대
태연 양을 좋아했다고 하자
깨달음도 잘 알고 있다며 만날 때마다
얘길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했던 한류 스타의 사진으로
가득 채운 노야마 상은 화장터로 향했고
우리와 다른 거래처 사장님은 거기서
가족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 깨달음, 지난번 아버님, 어머님 때도 그랬지만,
정말 장례식이 간소화 됐다 ]
[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뭐 요즘은 가족장으로
많이 하니까,, 가족 외에는 부고 자체를
알리지도 않으니까 아무도 안 오지 ]
실제로 가족들 이외에 우리 부부와
거래처 사장님뿐이었는데 그분도
우리처럼 40년 넘게 세무를 맡겼고
지난달까지 노야마 상과 미팅을 했단다.
역까지 걸어가며 그 분이 한류스타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며 비록 사진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기분 좋게 떠났을 거라며 자기가 아는
한국 연예인은 겨울의 소나타에 나온
배 용준밖에 모른다며 그 여자 아이돌이 그렇게
유명하냐고 묻길래 간단히 설명해 드렸다.
역에서 그 분과 헤어지고 우린 차를 마시려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깨달음은 목이 말랐는지 물을 한 컵 들이켜고는
내게 아침 일찍부터 수고했다고 말했다.
[ 수고는 무슨,,]
[ 올 들어 벌써 장례식이 세 번째네.. ]
[ 그러네... 당신, 아까 누님들하고
무슨 얘길 했어? ]
[ 별 얘기 안 했어 ]
갑작스레 동생이 떠나서 회사에 민폐를 끼친 게
아니냐고 사과를 하시길래 괜찮다고 그랬단다.
20년 전에 만났을 때 얘기도 조금 나누면서
동생이 결혼을 했으면 덜 불쌍할 텐데
독신으로 죽은 게 짠하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그룹이 있어서 그렇게
외롭게 보내진 않았을 거라고 했단다.
[ 그랬더니 뭐래? ]
[ 누나들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몰랐대,
집에 가 봤더니 온통 사진이며 브로마이드가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고 여기저기
박스에도 굿즈들이 가득가득 있었대 ,
그래서 그거 팔면 돈 된다고도 알려줬어 ]
[ ................................. ]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 케이크를 먹다가
깨달음이 자기가 죽으면 관 속에 뭘 넣을까
잠깐 생각해 봤다며 나한테는 뭘 넣고
싶냐고 물었다.
[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
[ 그럼 당신은 꽃만 넣으면 되네 ]
[ 꽃도 굳이 필요 없어, 나 꽃 안 좋아하니까 ]
[ 아,, 그러지 ]
[ 깨달음, 당신은 관 속에 뭘 넣어줬으면 해? ]
[ 나는,, 언제가 아버님 납골당에서
봤는데 미니어처로 만든 한식들이
들어가 있던데 나도 그런 거 넣어 줘 ]
[ 아,, 제사상 같은 거 ]
[ 응, 맛있는 거 많이 올려있는 큰 상 ]
깨달음다운 생각 같아서 미니어처 이미지를
찾아 보여줬더니, 꼬막이 올려진 상은 없냐,
쭈꾸미 밥상은 없냐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길래 내가 살아있다면 주문 제작해서
꼭 관 속에 넣어주겠다고 했더니
정말 부탁한단다.
[ 그리고 한글 책도 한 권 넣어 줘 ]
[ 알았어, 그 외에 또 없어? ]
[ 당신 사진도 한 장 넣어 줘 ]
[ 싫은데 ]
[ 왜? ]
[ 그냥,, 혹 다시 태어나면 다른 여자랑
결혼하라고 내 사진은 안 넣을 거야 ]
[ 그래? 그럼, 우영우 사진 넣어 줘 ]
[................................. ]
우린 아주 씨잘대기 없는 소리들을 하며
차를 마신 뒤 집에 돌아와 각자의 유언장과
사후 관리도 다시 체크했다.
노야마 상의 죽음으로 사무실은 물론
은행, 보험, 그리고 소유하고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모두 조카가 정리하고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떠날 때는 깔끔하고 심플하게 남은
사람들이 정리할 일 없도록 배려 차원에서
미리 해둬야 될 것 같았다.
내 관 속에 뭘 넣어 줬으면 하는 것까지
차분히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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