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할 작품이 있어
서둘러 재료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수정을 거듭하고 거듭해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색을 다르게 입혀보려는데 잘 될지 걱정이다.
화방을 천천히 둘러보면 좋으련만
집에서 기다리는 일 거리가 많아서
빨리 나와야했다.
먼저 출근 전에 절여 둔 배추를 씻어두고
전에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했다.
이번 주 토요일이 한국의 추석이라는데
우린 선약이 있어 주말엔 집을 비울 예정이어서
며칠 먼저 추석을 치르기로 했다.
추석 같은 명절에는 늘 같은 메뉴들이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깨달음은
지금껏 아무 불평 없이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번 추석 때도 작년처럼
갈비찜이 아닌 떡갈비가 좋다길래
준비했고, 지난 주말 코리아타운에서 사 둔
영광굴비와 막걸리로 상을 차렸다.
퇴근길에 깨달음이 사 온
삼색당고(三色団子)까지 올리니
그럴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 역시 떡이 있으니까 추석 같네 ]
[ 응, 송편이 아니지만 좋네 ]
막걸리로 먼저 목을 축이고 식사를 하며
아버님 49재에 대해 얘길 나눴다.
서방님 댁과 우리 스케줄이 맞지 않아
지금 조율 중인데 좀처럼 괜찮은 날이
없어 어느쪽이 스케줄을 접어야했다.
따끈따끈한 햇밤을 하나 집어 먹어보고는
잘 영글었다며 아버지가 좋아했던 거라고
원래 돌아가시고 첫 번째 맞이하는 추석을
중요시하는데 오늘 아버지가 와서
많이 드셨을 거라고 했다.
난 솔직히 그런 의도로 추석상을 차린 게
아닌데 깨달음은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아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 깨달음, 그럼 저 팥앙금 찹쌀떡도
그래서 사 온 거였어? ]
[ 응, 아버지가 앙코 좋아하셨잖아,,
생크림도 좋아하셨는데 마침 덮여 있는 걸
팔아서 얼른 샀지 ]
[ 이 율란(栗きんとん)도 그래서 산 거야? ]
[ 응,, 그것은 어머니가 좋아했지..]
[ 아,, 그랬구나,, 그럴 것 같았으면 두 분이
좋아하신 걸로 음식을 좀 준비할 걸 그랬네..]
[ 아니야,,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이걸로도 충분해. 신경 쓰지 마 ]
오늘 추석상을 차린다고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퇴근하는 길에 문득
두 분이 좋아했던 것들이 떠올랐을 뿐이라고
이렇게 상에 하나씩 올렸으니 만족하실 거란다.
[ 깨달음,, 마침, 한국에서 소포 왔는데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한국 과자도
좀 올릴까? ]
[ 아니야,, 괜찮아,,]
[ 그럼,,49재 때 좀 가져갈까? ]
[ 그거 좋은 생각이네 ]
식사를 마치고 깨달음은 소포 속 과자들을
꺼내 아버님이 평소 좋아하셨던 붕어빵과
뻥과자, 꿀땅콩, 빠다코코낫을 챙겼다.
[ 근데.. 이건 누가 보내준 거야? ]
[ 블로그 이웃님이..]
[ 어떻게 아버지가 좋아하는 걸
딱 맞춰서 보내주셨을까.. 신기하네..
아버지가 먹고 싶어 하는 걸 알았을까,,]
일본도 한국처럼 추석이면 조상님을 기린다.
또한, 그 해 거둔 햇곡식이나 과일을
선보이며 감사함을 조상님께 전하고
성묘를 가는 것도 우리네와 같다.
각 지역마다 올리는 음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심플하게 밥과 국, 반찬 세 가지를 준비하고
한자리에 모인 친척이나 가족들은
초밥을 주문해 먹는 경우가 많다.
우린 늘 한국식?으로 추석상을 차렸는데
단순히 추석이니 맛있는 걸 먹는다는 것 외엔
특별히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깨달음에게 올해, 추석은 많은 의미를
부여한 상차림이 되었다.
==============================
올 해도 이렇게 저희는 이곳에서
추석을 보냅니다.
한국은 지금 귀성길에 오르신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 고향 가시는 길
안전 운행 하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일본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장례식, 관 속에 넣은 것들. (3) | 2022.11.22 |
---|---|
남편이 한국에 감사한 이유 (0) | 2022.10.18 |
시아버님이 매일 전화를 하신 이유 (1) | 2022.08.08 |
일본스럽다는 우리 부부생활 (6) | 2022.07.27 |
여행사에서 걸려온 전화 (8) | 2022.06.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