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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남편이 한국에 감사한 이유

by 일본의 케이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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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마지막 날, 지난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창가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일찍 눈을 뜬 우린 된장찌개로 식사를 하고 

우산 하나에 두 몸을 의지한 채로

광화문 쪽으로 걸었다.

 유튜브로만 봤던 광화문 광장에 들어선

깨달음은 우산을 팽개치고 아이처럼

신나게 분수대로 뛰었다.

그리고 세종대왕께 한글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정중히 인사를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었더니  웃지 말라면서

자기는 진지하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로 한글 창조 과정을

봤을 때도 참 힘든 작업이였다는 걸

 알았는데 직접 자기가 본격적으로

한글을 배우고 보니까 참 알기 쉽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글자라는 생각을

공부를 하면 할수록 들어서 꼭 세종대왕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단다.

경복궁 수문장옆에서 얌전히 사진을 한 장 찍고

 시청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해 우린 커피숍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후 스케줄을 다시 체크하며 지하철

노선을 확인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수문장들에게서 후광이 보였다고

옷도 그렇지만 도깨비 마스크가 참

멋있더라며 역시 한복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창밖을 내다보며 우린 각자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다 후배를 만나

 솥밥 정식을 맛있게 먹고

더 현대로 장소를 옮겼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는데 집중하는 깨달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랑 후배는

한 걸음 떨어져 걸었다.

바닥, 천장, 벽면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깨달음은 흡사 건축물 유지관리 점검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만족할 만큼 사진을 찍은 깨달음과 우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인기가 있는 맛집이어서 대기가 많았지만

주변에 볼거리도 많아 지루하지 않았고

우린 바에서 와인으로

우선 목을 축이며 대기를 해서인지

한층 여유로웠다.

 

와인도 그렇고 음식도 맛있어서

깨달음 기분은 최고로 좋은 상태였고

이 자리, 이 분위기, 이 냄새, 이 온도까지

모든 게 완벽할 만큼 좋다는 깨달음은

 다시 또 이 현대를 찾고 싶다고 했다. 

함께 자리해 준 후배에게 감사를 전하고

우린 아쉬움을 남긴 채

호텔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호텔 근처의

포장마차에는 전날에 비해 사람들이 적었다.

이대로 호텔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기에 깨달음이 이끄는 대로

어느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비 오는 날, 모둠전에 막걸리를 한 잔 하는

모습이 너무 익숙하고 정겹게 보였다.

[ 깨달음,, 아쉽지? ]

[ 응,,,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남은 시간을 포장마차에서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

[ 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 

[ 응,, 알았어..]

 작은 한숨처럼 내뱉은 깨달음 입에서

입김이 보였다.

종일 내린 비로 축축이 젖은 지면에서 

냉기가 올라와 서서히 몸의 온기를

뺏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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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 춥지? ]

[ 응, 조금,,]

[ 이제 호텔 들어가자 ]

[ 싫어,, 나 감기 걸려도 여기 있을 거야 ]

[.......................... ]

다른 테이블에서도 춥다는 소리가 들려서인지

주인아저씨가 비닐을 씌우기 시작했다.

깨달음이 따끈한 어묵이 먹고 싶다고 해서

어묵을 주문했는데 자기가 항상 머릿속에

그렸던 80년대 한국 분위기가 난다며 

소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비를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는 비닐, 

포장마차 안에서 내다보는 어렴풋한

 바깥 세상,,그리고 따끈한 어묵과 소주,,

낭만이라 말하는 모든 게 집합되어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는 깨달음.

[ 당신은,, 예전의 한국이 그리운 가 봐 ]

[ 원래 사람은 뭔가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가

가장 설레고 기억에 남잖아. 난 80년, 90년대

한국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났다고나 할까, 

인간미가 아주 넘쳤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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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그때의 깨달음은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한국을 좋아하기 시작했단다.

[ 3년 만에 온 한국은 어땠어?  ]

[ 물론 너무 좋지.. 근데 오늘 이렇게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어묵을 마주하니까

문득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 맛도 똑같아서.. ]

깨달음은 이날 혼자서 소주를  한 병

다 마실 때까지 우수에 찬 표정을 하고는

한국에서 마지막 날을 붙잡고 싶어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서둘러

도착한 우린 라운지가 운행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아침을 먹기 위해 

게이트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콩나물 해장국, 떡만둣국, 군만두에 맥주까지

시켜 한국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콩나물해장국을 그릇째 들고 마시면서

역시 술 먹은 다음날은 해장국을

먹어줘야 한다며 속이 풀렸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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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구로 가는 도중에 우영우가 있다며

박은빈 등신대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뛰어가서는 갑자기 보고하듯이

또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즐거웠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왜 그 얘길 그녀에게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자기 이상형인 박은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거라 생각했다. 

 

깨서방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 오머니, 선물 좋아요? ] [ 응, 마음에 들고 말고, 크리스마스에 딱 받아서 더 기분이 좋네 ] [ 한국은 추워요? ] [ 응, 징하게 춥네. 일본은 덜 춥제? ] [ 일본은 안 추워요 ] 항상 하는 말들은 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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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탑승해서 최종적으로 물었다.

[ 깨달음, 이번 한국행 만족했지? ]

[ 응, 정말 행복했어, 그리고 한국에

감사하고 싶어 ]

[ 뭘 감사해? ]

[ 나를 행복하게 해 주잖아, 한국은,

그니까 감사해야지, 그게 감사할 이유야  ]

[ 맛있는 거 먹어서 좋았던 거지? ]

[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나에게 한국은

늘 좋은 추억들만 만들어 주는 거 같아,

거리도, 사람들도, 오랜만에 봐서인지

정이 갔어..그리웠던만큼..

그래서 그냥 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한국인으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다

아침을 먹으며 깨달음이 밥상에 놓인 깻잎찜을 먹어보고는 진짜 맛있다며 반찬들이 완전 장모님 집에서 먹는 맛이 난다며 좋아했다. [ 장아찌보다 찜이 더 맛있어?] [ 음,,장아찌는 장아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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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한국 결혼식장에서 놀란 이유

공항에서 날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들고 웃는다. 너무 얄미워서 마중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 역시나,, 모든 가족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깨달음을 위해 나가는데 당연한 거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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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조목조목 캐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봤을 땐 깨달음에게도 감사하고

싶은 게 많았기에...

아무튼, 깨달음이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

나도 감사하고 싶다.

한국, 고마웠습니다. 또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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