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부터 이곳은 연휴였다.
깨달음은 거의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일에 몰두했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혼자 넷플릭스를 보고 잠이 들었고
나는 나대로 토요일엔 약속이 있어
잠깐 나갔다가 온 게 전부였다. 오늘도
여전히 낮기온은 25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비가 올 것처럼 꾸무럭거리기도 하고 반짝
해가 비치는 늦은 오후, 우린 산책을 나왔다.
오다이바는 요사코이(夜さ来い) 마쯔리로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포장마차에서
품어내는 음식 냄새로 축제분위기였다.
낮은 더워서인지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고 있는 곳에 깨달음이 수제비 뜨기를 하는데
옛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며 두 번 하고 그만뒀다.
나 혼자 산책으로 나올 때마다 앉아서
명상을 했던 곳에 오늘은 깨달음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었다.
[ 생맥주 한 잔 하지? 깨달음 ]
[ 아니.. 저녁에 다시 도면 체크해야 돼 ]
[ 많이 피곤해? ]
[ 아니,, 괜찮아,,]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깨달음이 조용히
쉬고 싶은데 너무 시끄럽다며 얼마나
요란스러운지 한 번 보자고 했다.
우린 이곳에 가까이 살면서도 한 번도 요사코이를
보러 오질 않았다. 일단 대형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아서인지 소란스럽다는 생각이 앞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량 데시벨로 치면 에이사(エイサー) 축제도
만만치 않지만 요사코이는 우리 취향이
아니었던 게 더 솔직한 표현인 것 같다.
밤에 오라는 뜻의 요사코이 (夜さ来い) 는
민요에 맞춰 팀을 이뤄 군무를 춘다.
나루코(鳴子)라는 도구를 손에 들고
자유롭게 짠 안무에 맞춰 길거리를 활보하는데
대체로 지역민요에 맞춰 춤을 추지만
요즘은 현대음악으로 편곡되어
록이나 삼바, 힙합 같은 느낌으로
믹싱한 곡이 많다.
축제의 참가팀은 대학교 동아리가 많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 참석할 수 있다.
화려한 복장으로 거리를 누비는 춤꾼들은
공연자이기도 하며 관객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환호하고 거리에 나온 관객들도
공연팀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 깨달음,, 어때? ]
[ 역시 내 취향은 아니야,오키나와 에이사축제는
슬픔과 애환이 녹아들어 가 있는데 이건 아니야,,
음악도 내가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 너무 혹평 아니야? ]
[ 아니야, 에이사는 완전 프로처럼 레벨이 달라,
여긴 거의 아마추어잖아 ]
깨달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마음의
너그러움이 없어지는 듯한 발언들이 많아졌다.
예전엔 싫거나 불편해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면 이제는 싫은 건 마주하려 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거나 이해하고 유도리 있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장소를 옮겨 저녁을 먹으러
그릴레스토랑에서 이맘때면 즐겨
먹었던 굴구이를 주문했다.
10분쯤 후에 직원분이 들고 와서는 아직
시기적으로 약간 빨라서 굴 사이즈가 작지만
홋카이도산(北海道)이라 맛은
최고라고 했다. 그리고 굴과 잘 맞는
화이트와인을 추천해 주셔서
한 잔씩 마시며 올 들어 첫 굴구이를 먹었다.
식사용으로 주문한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며
깨달음이 한국에서 뭘 먹을 건지 정했냐고 물었다.
[ 나는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당신이 정해,
그러면 내가 맛집을 찾아볼게 ]
[ 맛집이라고 해도 실제로 맛이 없던 곳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어느 한 곳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게 당신이 미리 가서
전부 맛을 보고 나한테 보고를 해 줘 ]
[ 보고? ]
[ 아니, 보고라기보다는 알려달라는 거지.
맛이 어땠는지, 진짜 맛집인지 ]
깨달음은 자기가 나름 목록에 넣어둔 맛집
몇 군데를 내게 보여주면서 꼭 미리 체크해서
맛집을 구별해 두었으면 좋겠단다.
[ 깨달음,, 나,, 바빠,, 한국에서도 ]
[ 알아,,그래도 꼭,, 꼭,, 맛있는 집만 가고 싶어.
그니까 당신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곳을
찾아 줘, 맛없는 집은 데리고 가지 마 ]
하루 세끼를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고
대충대충 안 먹는 미식가인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끼도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지금까지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던 몇 군데가
전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던 적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도 더더욱 3박 4일 동안 단 한 끼도
허투루 날려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대략 10군데의 식당을 그것도
맛집 중에 맛집만을 골라 찾아낼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알아볼 생각이긴 하지만....
요즘 깨달음이 고집스럽고 외골수적인 꼰대
아저씨화 되어가고 있는 건 나이 탓도 있고
회사 스트레스가 한몫을 한 거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예전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세월이 변하게 만든 건지,
일이 변하게 만든 건지..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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