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택배가 왔다.
깨달음 거래처에서 보내온 것인데
재일동포라고 했다.
일본에서 살면서 김치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약간 얼떨떨한데
깨달음에게 거래서 최사장이 추석선물 겸
공사 부탁한다고 겸사겸사
인사차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김치 회사 이름이 나카요시다.
이 김치의 수익금은 치바조선초등교에
지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과
사진, 편지지가 들어있고, 내용물은
배추, 깍두기, 무말랭이, 진미채,
창난젓, 냉면이었다.
모두 반찬통에 담으면서 하나씩 먹어봤더니
김치가 아주 상큼하고 간이 딱 맞아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깍두기도 고소한 젓갈냄새가 나면서
상당히 맛깔스러웠다.
진미채는 내 입에 꽤나 달았고
창난젓은 늘 먹던 맛과 별반 차이가 없이
양념맛이 좋았다.
저녁식사 때 반찬으로 내놓은 걸
조금씩 맛을 보던 깨달음은
북한맛이라며 생각보다 훨씬 맛있고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익숙한 맛이라고 했다.
[ 당신이 북한 맛을 알아? ]
[ 몰라,, 그냥 상상해 본 거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나오는 북한을.. 근데
약간 오사카 쯔루하시에서 파는
김치처럼 색이 진하지 않아? 한국은
이렇게까지 진하지 않은 것 같은데..]
[ 그러긴 해..]
[ 솔직히 오사카 쯔루하시보다 더 맛있다 ]
[ 나도 그런 것 같아. 맛은 아주 좋아,,
그래서 나도 이제부터 김치를 사다
먹을까 싶어,, 이렇게 맛있는데 굳이 우리 둘이
먹자고 이것저것 담는 게 의미 없을 것 같아서]
[ 당신 편한 대로 해..]
나는 유학생활중에도 기숙사에서 김치를
직접 담아 먹었다. 김치가 번거로울 때면
깍두기, 그것도 시간이 안되면
무생채를 해서 먹었다.
절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도 있지만 사서 먹는 김치가
내 입맛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는 배추김치 외에
제철김치를 빠짐없이 담아
늘 냉장고에 두둑이 넣어 두었다.
여기서 구하기 힘든 조선파김치나 열무김치는
한국에 가게 되면 가져왔고 다른 김치류는
사지 않았고 동치미까지 담아 먹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재일동포가 만든 김치를
먹어보니 굳이 내가 직접 담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큼 맛도 좋고, 무엇보다 김치를 만드는데
드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들,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사 먹는 거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은 코리아타운만 가면 얼마든지
한국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고 웬만한 마트에도
김치코너가 있을 정도니 내 입맛에 맞는 걸
골라 사 먹으면 된다.
편의점에서도 김치를 사서 먹는 세상인데
지금껏 직접 담아 먹는 게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이 고지식함과 무지하게 느껴졌다.
김치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도
지금까지 힘들다거나 귀찮다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번거로운 작업이었는지
이제와 생각해 보니 뭐 하러
시간 들이고, 에너지 낭비를 했나,, 정말
유통성 없는 꼰대처럼
너무 세상을 열심히 산 것 같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김치를 찾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당히 먹을만한 게 분명 있을 것이다.
오늘처럼 상당히 맛있는 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더 이상 수고스러운 일은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 깨달음, 정말,, 나 김치 사 먹을래 ]
[ 그럼,, 전라도 김치 파는 곳을 알아봐야겠네 ]
[ 코리아타운 마트에서 파는 거 봤어 ]
[ 그래? 그럼 거기서 사 먹으면 되겠네 ]
사 먹으면 되겠네라고 수긍을 하면서도
왠지 낯빛이 서운함이 역력했다.
[ 깨달음,, 표정이 왜 그래? 서운해? ]
[ 서운한 건 아니야,, 그냥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전라도 김치라 해도 당신이 만든
김치맛이 아니잖아,,
나는 당신이 만든 김치가 제일 맛있는데..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친구들이랑
당신 친구들도 당신 김치만 먹으려고 하잖아,,
근데 안 담는다고 하니까.. 조금 뭐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 해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기가 앞으로
김치 담는 날에 더 많이 도와줄 테니까
겨울에 딱 한번 하는 김장만이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 김장? ]
[ 응. 김장때만 한 번씩 보내주는 거야 ]
[ 음,,, 김장은 올 겨울에 한국 가면 엄마 거랑
언니한테 좀 얻어올까 했는데...]
[ 아,, 그래..]
[ 그리고 김장김치도 따로 팔아,,]
[ 그래?.. 그럼 정말 사 먹어야겠네..
근데, 보쌈 먹을 때 어떻게 해?
생김치가 필요하지 않아? ]
[ 그땐 겉절이 같은 걸 바로 만들어서 먹으면 돼 ]
[ 그래..]
미련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난
그냥 못 본 척했다.
내가 먹을 건 사서 먹는다 쳐도 일본 친구들에게
줄 김치는 담아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오늘부터 난 김치를
사 먹기로 작정했다.
돈만 주면 세상의 모든 김치를 내 입맛에
맞는 걸로 찾아 사 먹을 수 있는 요즘이다.
깨달음이 느끼는 서운함은 분명
이해하지만 좀 편하게 살자.
남들도 다 사 먹는다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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