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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헤어지는 게 정답이다

by 일본의 케이 202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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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동기를 만났다. 홋카이도(北海道)에

사는 아이짱이 남자 친구랑 같이

도쿄에 왔다가 잠시 시간이 생겼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마침 나도 일하고

있던 중이라 점심 시간에 맞춰

 중간지점에서 만났다.

테이블에 앉은 동시에 알바생이 와서는

명란젓 (明太子) 과 쯔게모노(漬物 장아찌)인

매운 갓절임 (からし高菜) 을 놓고 갔다.

[ 오랜만이네 ]

[ 어,, 진짜 오랜만이다 ]

[ 무슨 일로 온 거야? ]

[ 그냥,,,놀러...]

주문한 모츠나베(もつ鍋 곱창전골)가 나오고

끓는 동안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 정 상,, 식사하고 차 마실 시간 돼? ]

[ 응, 괜찮아, 나한테 뭐 할 말 있지? ]

[ 아니.. 없어..]

[ 그냥 말해,, 얘기하고 싶어서 나 만나자고

한 거 다 알아 ]

그녀는 대답해서 피식 웃었다.

지난번 전시회 때, 바빠서 잠깐 얼굴만 

비치고 말았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했더니 그 전시회는 자기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작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아

비행기값도 겨우겨우 맞춰서

홋카이도에 돌아갔단다.

[ 그때 아직 코로나였잖아,,]

[ 그래서 그냥 참가했던 것에 의미를 두려고 ] 

요즘은 주로 뭐에 관심이 많은지,

뭐 하고 지내면 시간이 금방 가는지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공유하며 식사를 했다. 

[ 아이짱, 나한테 할 말 있으면 말해, 빨리,

망설이지 말고 ]

[ 역시 정 상은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데 

일가견이 있어 ]

[ 표정에 다 나타나잖아 ]

그녀가 3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바람을

폈는데 상대가 외국인 여성이었단다. 

[ 혹시 한국인? ]

[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일본인은 아니래 ]

우연히 핸드폰을 보고 알게 됐고 남자 친구도

솔직히 시인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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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도 3년째고 나이도 4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인생의 동반자처럼 같이 살아야겠다싶어

결혼식은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이라도 할까

하던 터여서 꽤나 쇼크였단다.

도쿄에 온 이유는 학회에 볼 일이 있는 걸

핑계 삼아 서로에게 기분전환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뜻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각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단다.

[ 남자 친구는 뭐래? ]

[ 내 결정에 따르겠대. 헤어지자면

헤어지고, 혼인신고 하자면 하겠다고 ]

아이짱 머릿속에 장악하고 있는 건 상대가

외국인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인 자기한테 못 느끼는 이국적인 매력에

끌렸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 매력을 잊지 못하지 않겠냐고,,

자기에게서는 그런 매력이 없으니까..

푸념처럼,, 체념한 듯 말하는 아이짱은 

상당히 무기력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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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어 넌지시 물었다.

아이짱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 것 같냐고,,

[ 정 상,, 내가 핸드폰에서 사진을 봤어.

상당히 예쁘더라.. 한국인 같기도 하고

중국인 같기도 하고,, 동남아시아인은

아니었어, 피부색이.. 그래서,, 그냥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어졌어. 내 나이에 자신감이 약간 상실되긴

했지만 분노나 질투가 일지 않는다는 건

 이 현실을 내가 인정한다는 것이겠지 ]

 담백하게 툭툭 뱉어내는 그녀의 말투엔

감정정리를 이미 마친 듯했다. 

오늘따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가 유난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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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짱은 자기 자신이 이렇게까지

침착하게 받아들일지 몰랐단다.

시간이 갈수록 헤어지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굳어진다는 아이짱.

나한테 얘기하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며

한국에 한 번도 못 가봤으니까 자기를 

데리고 위로 여행을 시켜주라며 웃는다.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PCR 검사를 또 했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가 음성임을 확인받고 싶었다. 4회 차 백신을 맞았어도 여전히 난 코로나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것 같다. 깨달음은 늘 그렇듯 잔기침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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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상이 모든 건 타이밍이라고 했잖아,

어쩜 헤어질 타이밍이었는지 몰라, 그래서도

내가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어. 

상대가 외국인이었던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서로에게 헤어질 찬스였나 봐 ]

고마워. 정 상 ]

커피숍을 나와 근처 케이크집에서

그녀가 먹고 싶다는 케이크를 한 조각선물했다.

 

일본에선 각방을 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여러 질문을 받곤 한다. 내가 20년 이상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과 배우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도 같은 궁금증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가끔 내게 메일을 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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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

대학원 동기들의 모임이 있었다. 4명은 여성, 2명은 남성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그 날 사정에 따라 서로 안면이 있는 후배를 데리고 와도 무방하고, 남친이나 여친, 아니면 부부동반도 괜찮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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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짱,, 이제부터 인생을 더 즐기고,

재밌게 살라는 타이밍이야, 

먼저 먹는 것부터 즐겨~]

케이크를 받아 들고는 나한테 바짝 다가와서

혼인신고 안하길 천만다행이라며 아이처럼

낄낄대며 좋아하는 아이짱을

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정작 헤어지고 나면

그녀가 느끼는 상실감과 

배신감은 몇 배로 밀려올 것이다.

하지만, 더  멋지고 괜찮은 남자가

나타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거라고

믿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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