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 깨달음이 자기 보라며
2년 전까지 와이셔츠 버튼이 터질 것 같아서
못 입었던 걸 입게 되었다고
가벼워진 자기 몸을 꿀렁거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춤을 췄다.
[ 알았어. 얼른 출근해 ]
[ 나,,미팅 끝나고 2시간 후에 들어올 건데
오래간만에 짜장면 먹을까? ]
[ 별로...]
[ 별로라는 말은 긍정으로 생각하고
짜장면 먹으러 간다~~~~ ]
[ ................................... ]
자기 말만 하고 집을 나서는 깨달음.
인간이 저렇게 매일 긍정적일 수 있는 건
타고난 성격이고 어쩌면 시어머님이 임신 중에
태교를 엄청 잘하셨을 것이라 추측된다.
다음 달에 시부모님을 뵈러 갈 생각인데 그때는
잊지 않고 물어볼 생각이다.
세탁기 돌려놓고 난 바로 거실에 매트를
깔은 후 허리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어느 날은 걷는 것도 불편하고 또 어느날은
약간의 저림만 있을 뿐 다 나은 것처럼 몸이
홀가분할 때도 있어 좀처럼 감을 잡기 힘들다.
정확히 2시간 10분이 지나 깨달음은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는 백화점에 추석선물을
주문하러 가자고 했다.
[ 벌써 그때가 왔네... ]
[ 응, 올해도 변함없이 추석선물은 돌려야 해,
회사는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보내야 되니까 ]
[ 목록은 정했어? ]
[ 응, 당신만 체크하면 돼 ]
[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편하지 않아? ]
[ 나도 알아,, 근데 난 신주쿠에 나가야만
짜장면을 먹을 수 있으니까 ]
https://keijapan.tistory.com/1394
카탈로그에 나열된 기프트 목록은 해가 바뀌어도
별 반 다를 게 없어서 작년과 같은 걸로
체크를 하고 리스트를 깨달음에 넘겼다.
선물을 주문하고 난 후 겸사겸사 짜장면도
먹는 걸로 나와 합의?를 본 깨달음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마가 더 심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며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백화점에 도착, 주문서를 넣고 바로 깨달음이
먹고 싶다는 곳으로 직행, 그곳은
예전에 오픈 당시 한 번 먹어보고 실망해서
안 갔던 백 선생님의 홍콩반점이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382
[여기, 안 오기로 하지 않았어? 맛없다고? ]
[ 근데,, 언젠가부터 여기 줄 서 있잖아,
봐 봐, 오늘도 지금 줄 섰잖아, 그래서 내가
검색해봤더니 맛있다고 엄청 소문났더라고.
오픈 때는 맛이 좀 이상했는데 지금은
몇 년이나 지났잖아, 그니까 분명
맛있어졌다는 거야 ]
얼굴에 꼭 먹겠다는 의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서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이름을 적고 기다렸다.
난 개인적으로 백 선생님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요리 스타일이 좀
독특해서 이 분의 레시피나 영상들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데 깨달음은 이 분이 나온
프로나 광고들은 무한신뢰를 했다.
짬뽕이 메인인데 역시나 짜장과 탕수육도
기본으로 주문하고 주변 테이블을 둘러봤더니
다들 우리와 같은 메뉴였고 무엇보다
80% 이상이 일본이었다.
[ 일본 방송에서 한 번 소개했나? 왜 이렇게
일본인이 많지? ]
[ 아마도 어느 프로에서 소개됐거나
유명인이 먹었다거나 그래서도
이렇게 인기사 생긴 것 같아 ]
오픈 무렵, 주방에 있던 동남아시아인이 보이지
않은 걸 보면 분명 맛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고 깨달음이 먹어 보고는
바로 엄지 척을 올린다.
[ 맛있어졌어. 짜장도 옛날 짜장맛이 나, 좋아 ]
깨달음이 만족했다니 일단 다행이고
내 입맛에도 역시나 많이 좋아졌음을 느꼈다.
[ 주방이 바뀐 거 맞지? ]
[ 응, 분명 맛이 완전히 달라졌어 ]
짜장과 짬뽕을 번갈어 먹으며 아주 좋아했고
탕수육은 찹쌀 옷을 입혀 튀긴 방식은 같았은데
위에 끼었은 소스 맛은 다르다며 바로 알아챘다.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에 약간 이성을 잃은 듯
열심히 먹은 깨달음은 남은 탕수육은 포장을
부탁해 챙겨 나와 우린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서기 전 내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합의를 한 것도 있지만
코리아타운에서 구입할 물건이
별로 없어서도 그냥 돌아왔다.
[ 어땠어? 종합적인 평가를 해보면? ]
[ 응, 만족했어. 근데 굳이 말을 하자면,, 역시
오리지널 한국 짜장면이랑 소스에 찍어도
바삭바삭한 탕수육이 더 맛있는 것 같아 ]
[ 그 봐, 내가 말했잖아,,]
https://keijapan.tistory.com/1467
https://keijapan.tistory.com/1481
다음에 가면 볶음짬뽕을 먹을 거라면서 왜
짜장면은 가끔 먹고 싶어 지는지 자긴
한국사람도 아닌데 이상하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한국 꿈을 많이 꾼다면서
나한테 정말 9월에 안 갈 거냐고 물었다.
[ 응, 못 가, 그니까 당신도 잊으라고 했지? ]
[ 백신 맞으면 2주간 자가격리 면제 아니야?
그리고 외국인도 입국 허락할 것이고
그러면 나도 예전처럼 갈 수 있지 않아? ]
[ 그러겠지만,, 내가 안 돼 ]
안 된다는 한마디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9월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아직 백신도 못 맞았고, 일도 정리가 안 됐고
거기에 허리 디스크까지 더해져 마음을 비웠다.
[ 깨달음, 나는 몸과 마음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든
다음에 가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당신도 조금만 더 참아..]
[ 근데.. 한국 가서 가족들이랑 친구들 만나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몸과 마음이 빨리
낫지 않을까? 난 곧 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엄청 설레는데? 당신은? ]
[ ..................................... ]
저 끝없는 긍정파워는 어디에서 솟아나는 걸까..
한국에 가면 변화될 심리적 상태가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어서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었다. 아무튼, 지금보다는
좋아진 상태에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만 더 참을 생각이니
깨달음도 잘 참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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