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어
코스트코에 들렀다.
이른 시간대는 쇼핑객들이 별로 없어
선호하는 우린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멈춰 서 올 해는 큰 통닭구이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애길 했다.
피자 한조각을 사려고 잠시 줄을 섰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도
좀 신경이 쓰였고 늦여름이 계속된 탓에
옷이며 침구류를 지금까지 바꾸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오늘 하기로 해서였다.
각자의 침대 커버부터 카펫까지 모두
가을 옷을 입히고 세탁기를 돌렸다.
1년 365일이 참 빠르다.
계절에 맞춰 침구를 갈아 덮고,
두꺼운 옷들을 꺼내 입었던 텀들이 점점 짧게만
느껴지는 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년 새로운 사계절이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새 옷입히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고,,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 오늘 좀 쌀쌀하니까 국물 있는 거 먹을까? ]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동하고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 한다.
항상 머릿속에 뭘 먹을 건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깨달음은 즉시 메뉴를
말해줘서 편할 때가 많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미역과 파를 듬뿍 넣어
만든 따끈한 우동을 둘이서
호루룩 호루룩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 청소를 마저 끝내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깨달음이 불렀다.
[ 왜? ]
[ 이번에 보험을 해지한 게 있는데
당신한테 설명할 게 있어서 ]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깨달음
회사는 약간 위태로웠다.
10년 넘도록 넣어두었던 적립금형
보험을 두 개나 해지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내 이름으로 들었던 보험이었다며
다음 주에 보상이 좀 많은 다른 형태의 보험을
넣을 생각이라고 했다.
[ 새로운 걸 넣을 거면 왜 해지했어? ]
[ 전에 것은 생명보험 같은 거였는데 이번에
새로 가입할 것은 병원 치료도 보상받는
보험으로 바꾸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이 보험회사에서
웬만한 것은 알아서 해줄 거야 ]
[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
그냥 겸사겸사 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노후를 위한 간병인 보험 같은 걸 하나
넣을 생각이라고 했다.
난 말없이 깨달음이 증서들을 보여주며
회사에서 가입한 보험과 보험금들을
설명해주는 걸 들으며 앞으로 어떤 날들이
어떤 시간들이 기다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간병인 보험에 들어놓으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내 귀는
그 말들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21
한국에 살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한국에서는 몸이 지칠 때까지 즐기고 놀다가
마지막이 가까워지면 일본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칠 생각이란다.
[ 벌써 거기까지 생각했어? ]
[ 응, 한국에서는 무조건 놀 거야, 그러다
지치고 다 놀았다 싶으면 일본으로 돌아와서
마지막을 맞는 거지, 당신은 그냥 한국에 있어.
난 여기서 간병인들이 보호해주면 되니까..]
[..................................... ]
https://keijapan.tistory.com/1405
이런 얘길 나눌 때마다 빠른 건 아닌가 싶다가도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고
앞서 계획 세워둬야 한다는 생각들이 섞여
외면할 수가 없어진다.
[ 깨달음, 그게 최선이야? ]
[ 응, 이게 서로에게 가장 부담이 안 되는 거야,
간병인에게 맡기는 게 심플하면서 깔끔해]
[ 그건 그런데... 서로의 마지막은 못 보겠네 ]
[ 그러겠지..]
https://keijapan.tistory.com/1308
나름 깨달음도 생각은 해 봤다고 한다.
만약에 한국에서 요양생활을 하게 됐을 때 과연
한국어가 서툰 자신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염려되면서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부담이 아내인 나한테
가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라도
일본으로 돌아오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단다.
https://keijapan.tistory.com/1413
깨달음에게 무슨 얘기인지 잘 알았는데 좀 더
다른 형태의 노후생활이나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들도 모색해보자고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 그럼, 실버타운에서 살까? 한국에서? ] 란다.
바로 실버타운 말이 튀어나온 걸 보면 분명
이것도 미리 계획에 넣어두었던 게 분명했다.
실버타운 애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일본에서 노후를 보내게 된다면 요양원,
한국이라면 실버타운이 좋겠다는 말은
예전부터 해왔었다.
하지만, 어떤 약속도 어떤 계획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세상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막상 이런 얘기들을 구체적으로 하다 보면
착찹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해야만하기에
서로가 행복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선책을 좀 더 고려해봐야 될 것 같다.
우린 한국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한일커플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서방은 지금도 잘 하고 있다 (0) | 2021.10.21 |
---|---|
2년만에 시부모님을 뵙던 날. (0) | 2021.10.12 |
남편에게 미안한 건 나였다. (0) | 2021.09.06 |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0) | 2021.06.19 |
너무도 다른 두사람이 같이 산다 (0) | 2021.05.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