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절상을 입었던 두 달 전부터
우린 외출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있고 코로나
감염자 수가 폭증하고 있어 외출은 물론
외식을 할 염두가 나질 않았다.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도 가끔해서 먹긴 했지만
집밥과 비교할 수 없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항상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주말이면 좀 더 느긋하게 즐긴다.
[ 역시,,집밥이 최고야 ]
[ 깨달음,,반찬이 많아서 더 좋은 거지? ]
[ 물론이지, 이렇게 먹으면 난 너무 행복해,
이 새우젓 무침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 ]
[ 입맛에 맞는다고 하니 다행이네 ]
반찬이 많은 걸 좋아하는 깨달음을 위해
누룽지에 잘 어울리는 반찬들을
준비한 보람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던 깨달음이
병원에 혼자 갈 수 있는지 물었고
난 괜찮다며 외출준비를 했다.
[ 택시 타고 가, 비도 오니까.. ]
[ 응, 알았어 ]
[ 내가 끝날 시간에 맞춰 갈까? ]
[ 아니야, 시간 걸릴거야 ]
[ 그럼, 난 청소를 하고 있을테니까
아무튼, 끝나면 전화 줘 ]
[ 그래 ]
병원을 다니는 게 익숙해질만도한데
항상 내 발걸음은 무겁다.
먼저 채혈을 하고 초음파를 기다리는데
지혈이 잘 되지 않아 괜스레 겁이 났다.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고 생각을 비워도
병원에서 순번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 보면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가며
한기가 들면서 등골이 오싹해져 온다.
오늘은 보험회사에 청구해야 할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병원 측에 진단서도 받아야 한다.
올림픽 위원회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겠다며
보내온 서류도 챙겨 왔는데 내 골절 정도로는
보험혜택을 받기 애매하지만 일단 서류를
제출해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초음파를 마치고 상담창구에 진단서를 부탁하고
앉아 있는데 깨달음이 병원 입구에
막 들어오고 있었다.
[ 왜 왔어, 혼자서 괜찮다니깐 ]
[ 그냥, 심심해서. 비도 오고,, ]
[ ........................................... ]
진단서는 2주 후에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깨달음이 차를 마시고 한다.
[ 집에서 쉬지 왜 나와, 안 귀찮아? ]
[ 응, 전혀 안 귀찮아, 밖이 재밌잖아 ]
우린 커피를 마시며 백신을 한번 더 맞아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선진국, 후진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하다
언제나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을지
서로 예측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내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 뭐가? 갑자기 왜 그래? ]
[ 아까 그릇들을 씻으면서 당신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나왔어 ]
[ 고마울 게 없는데....]
아침을 맛있게 먹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늘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위주로 만들어줬고, 항상 자기 입맛을
우선으로 해줬는데 제대로 감사함을 표하지
못한 것 같았다며 미안하단다.
[ 왜 그래..그런 말 하지마,,]
[ 내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한 번도
짜증 안 내고 다 해줬잖아,, 어제도 내가
좋아하는 가리비볶음(ホタテ炒め)이랑
니쿠자가 (肉じゃが)해줬잖아,,]
https://keijapan.tistory.com/1361
[ 아니야,, 당신이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나도 좋아, 그래서 만드는 거야 ]
[ 아직 다리도 아픈데.. 항상 집밥 차려주고,,
반찬도 많이 만들어주고,, 진짜 고마워 ]
[ 괜찮아... 당신이 잘 먹어주는 것도 있고
나도 새 반찬 좋아해서 만든 거야 ]
[ 그래도,, 당신 아직 환자인데...,,]
따근한 아침을 먹을 때마다 매번 고마웠지만
요즘은 부쩍 내 아픈 다리에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100% 붙었을 거라 생각했던 골절 부위가 여전히
안 붙어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부어있는 것도
저녁이면 오른발과 다른 색을 띠고 있는 것도
걱정 되고 그랬단다.
그러다 오늘은 그 감사함과 미안함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려와 내게 꼭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고
혼자 설거지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 너무 고마워서? ]
[ 응, 고맙고,,미안해서... ]
[ 당신.도 이제 정말 늙었구나,,,,]
[ 늙은 것도 있고, 그냥,, 슬펐어...
나 지금,,완전히 중년 아저씨 감성이야..
계절 탓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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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함을 달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깨달음은 센치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불편한 다리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
내 뒷모습을 보고선 마음이 울적했을 것이다.
비도 오고,, 아내는 다리를 절뚝 거리며
병원을 가고,,
[ 깨달음, 앞으로도 먹고 싶은 거, 뭐든지 말해.
내가 만들어줄게 ]
[ 지금만으로도 충분해,,]
[ 내 걱정 말고, 사양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뭐든지 말해. 알았지? ]
[ 응......]
고개는 끄덕였지만 깨달음 표정은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 보였다.
깨달음의 울적함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고
그래야만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고맙고 미안한 건 오히려 나인데...
아프지 말자, 깨달음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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