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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남편에게 미안한 건 나였다.

by 일본의 케이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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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골절상을 입었던 두 달 전부터 

우린 외출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있고 코로나

감염자 수가 폭증하고 있어 외출은 물론

외식을 할 염두가 나질 않았다.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도 가끔해서 먹긴 했지만

집밥과 비교할 수 없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항상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주말이면 좀 더 느긋하게 즐긴다.

[ 역시,,집밥이 최고야 ]

 [ 깨달음,,반찬이 많아서 더 좋은 거지? ]

[ 물론이지, 이렇게 먹으면 난 너무 행복해,

이 새우젓 무침이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 ]

[ 입맛에 맞는다고 하니 다행이네 ]

반찬이 많은 걸 좋아하는 깨달음을 위해

누룽지에 잘 어울리는 반찬들을

 준비한 보람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던 깨달음이

병원에 혼자 갈 수 있는지 물었고

난 괜찮다며 외출준비를 했다.

[ 택시 타고 가, 비도 오니까.. ]

[ 응, 알았어 ]

[ 내가 끝날 시간에 맞춰 갈까? ]

[ 아니야, 시간 걸릴거야 ]

[ 그럼, 난 청소를 하고 있을테니까

아무튼, 끝나면 전화 줘 ]

[ 그래 ]

병원을 다니는 게 익숙해질만도한데

항상 내 발걸음은 무겁다.

먼저 채혈을 하고 초음파를 기다리는데

지혈이 잘 되지 않아 괜스레 겁이 났다.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고 생각을 비워도

병원에서 순번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 보면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가며

한기가 들면서 등골이 오싹해져 온다.

오늘은 보험회사에 청구해야 할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병원 측에 진단서도 받아야 한다.

올림픽 위원회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겠다며

보내온 서류도 챙겨 왔는데 내 골절 정도로는

보험혜택을 받기 애매하지만 일단 서류를

제출해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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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를 마치고 상담창구에 진단서를 부탁하고

앉아 있는데 깨달음이 병원 입구에

막 들어오고 있었다.

[ 왜 왔어, 혼자서 괜찮다니깐 ]

[ 그냥, 심심해서. 비도 오고,, ]

[ ........................................... ]

진단서는 2주 후에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깨달음이 차를 마시고 한다.  

[ 집에서 쉬지 왜 나와, 안 귀찮아? ]

[ 응, 전혀 안 귀찮아, 밖이 재밌잖아 ]

 우린 커피를 마시며 백신을 한번 더 맞아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선진국, 후진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하다

언제나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을지

서로 예측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이 내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 뭐가? 갑자기 왜 그래? ]

[ 아까 그릇들을 씻으면서 당신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나왔어 ]

[ 고마울 게 없는데....]

아침을 맛있게 먹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늘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위주로 만들어줬고, 항상 자기 입맛을

우선으로 해줬는데 제대로 감사함을 표하지

못한 것 같았다며 미안하단다.

[ 왜 그래..그런 말 하지마,,]

[ 내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한 번도 

짜증 안 내고 다 해줬잖아,, 어제도 내가

좋아하는 가리비볶음(ホタテ炒め)이랑

니쿠자가 (肉じゃが)해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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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eijapan.tistory.com/1361

 

코로나로 인한 요즘 우리집 삼시세끼

긴급사태가 선언된 후, 깨달음과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서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도 하고 함께 청소를 하거나, 옷정리를 하고,, 깨달음의 하루는 주로 건축관련 메거진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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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야,, 당신이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나도 좋아, 그래서 만드는 거야 ]

[ 아직 다리도 아픈데.. 항상 집밥 차려주고,,

반찬도 많이 만들어주고,, 진짜 고마워 ]

[ 괜찮아... 당신이 잘 먹어주는 것도 있고

 나도 새 반찬 좋아해서 만든 거야 ]

[ 그래도,, 당신 아직 환자인데...,,]

따근한 아침을 먹을 때마다 매번 고마웠지만

요즘은 부쩍 내 아픈 다리에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100% 붙었을 거라 생각했던 골절 부위가 여전히

안 붙어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부어있는 것도

저녁이면 오른발과 다른 색을 띠고 있는 것도 

걱정 되고 그랬단다.

 

그러다 오늘은 그 감사함과 미안함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려와 내게 꼭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고

혼자 설거지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 너무 고마워서? ]

[ 응, 고맙고,,미안해서... ]

[ 당신.도 이제 정말 늙었구나,,,,]

[ 늙은 것도 있고, 그냥,, 슬펐어...

나 지금,,완전히 중년 아저씨 감성이야..

계절 탓인가,,,,]

[ ...................................... ]

https://keijapan.tistory.com/626

 

남자들도 잔머리를 쓴다.

 병원에 도착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 번호가 불리어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주치의가 밝게 웃으며 하신 첫마디였다.  그러고 보니 올 해 들어 처음 인사를 드린다. 먼저 체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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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eijapan.tistory.com/1118

 

남편이 차린 밥상에 배신감을 느낀 이유

매일 아침 인사와 함께 깨달음은 자신이 차린 아침상 사진을 첨부해서 내게 보내온다. 그리고 그날의 스케쥴도 간략하게 보고를 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장을 보고 난 후  멋지게 차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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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eijapan.tistory.com/1406

 

결코 부러운 삶이 아닙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난 병원을 찾았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데 오른쪽 팔뒤꿈치가 좀 가려운 것 같아서 만져봤더니 말랑말랑 뭔가가 만져졌다. 예약전화를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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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함을 달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깨달음은 센치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불편한 다리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

내 뒷모습을 보고선 마음이 울적했을 것이다.

비도 오고,, 아내는 다리를 절뚝 거리며 

병원을 가고,,

[ 깨달음, 앞으로도 먹고 싶은 거, 뭐든지 말해.

내가 만들어줄게 ]

[ 지금만으로도 충분해,,]

[ 내 걱정 말고, 사양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뭐든지 말해. 알았지? ]

[ 응......] 

고개는 끄덕였지만 깨달음 표정은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 보였다.

깨달음의 울적함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고

그래야만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고맙고 미안한 건 오히려 나인데...

아프지 말자, 깨달음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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