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락을 주셔서 솔직히 반가웠다.
그녀의 가족이 가와사키(川崎)로 이사를
했고 코로나 때문에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집 근처에 맛있는 고깃집에서
보자길래 두말없이 약속을 잡았다.
가게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스즈키(鈴木) 상 ]
[ 케이짱,, 오랜만이야~ ]
습관적으로 스즈카 상이라고 뱉고 나서야
낫짱으로 불러라고 했던 게 떠올랐지만
나보다 연배인 그녀를 친구처럼 부르긴
좀 어색했다.
[ 스즈키상, 근데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
[ 그래? 다이어트 좀 했지 ]
우리 맛있다는 소고기의 각종 부위를
주문하고 그간에 못다 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난,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 소식이 궁금했다.
자폐증이 있는 마사토(正人) 군이
새로 이사한 곳에서는 적응은 잘 있는지,
그림 그리기는 여전히 좋아하는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잠시 접어두고
그녀가 하는 얘기에 귀기울렸다.
가족들 모두 그동안 별 탈없이
잘 있고 무엇보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다며 주변에 재일동포들
많단다. 아이 교육 때문에 이사를 했는데
아이보다 자기가 훨씬 적응을 잘하고 있다며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 여기 가와사키에 코리아타운이 있잖아,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뭐랄까, 내가
이제껏 살았던 곳하고는 많이 달라..
가족적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못 느꼈던
그런 이웃과의 관계인데,,, 아무튼
나한테 잘 맞더라고 ]
[ 그래요? 다행이네요 ]
[ 아, 그리고 우리 아들이 케이 선생님
만난다고 했더니 누군지 모르겠다고 해서
사진 보여주니까 그림 선생님으로
기억하더라고.. 여기서도 센터에서 적응은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엉뚱하고 가끔
감정 컨트롤 못해 흥분을 하긴 해.. 그래도
건강하고 김치도 물에 씻어서 잘 먹어 ]
[ 그래요.. 예전에는 못 먹었던 것 같은데 ]
[ 몰라, 어느 날부터 먹기 시작해서
우리 남편이 깜짝 놀랐어 ]
스즈키 상은 하나뿐인 자식인
마사토 군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먼저 자폐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아들이 세상에 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주려 안간힘을 썼다.
나에게 그림을 부탁했던 첫 번째 동기는
임상미술치료가 아들의 성격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아들이 곧잘 따라 하는 걸
보고 욕심이 생겼는지
화가 같은 작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폐나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아동 중에서도
색감이 월등하거나 표현이 독특해 작가로
이어지는 아동이 있는 건 분명 있지만
마사토 군은 그 정도의 역량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의
시도를 해 보았고 몇 번의 좌절을 맛본 뒤,
아들에겐 상당히 벅찬 작업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음악치료라는 명목으로
피아노를 시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바로 포기를 했고 어떻게든 아들이
가지고 있는 천재적? 잠재능력을
찾으려 애를 썼다.
[ 마사토 군은 주로 뭘 하고 지내요? ]
[ 요즘은 그림도 안 그려,, 맨날 코끼리만 그려서
다른 것도 그리라고 했더니 싫었는지
또 안 그리더라고, 그리고 요즘은 맨날
티브이 애니메이션만 보고,,, 그래..]
코로나로 밖에 못 나가면서 티브이를
자주 보여주기 시작했더니
이제 그게 하루 일과로 자리 잡혀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단다.
하지만 남편이 이곳으로 이사 온 후로는
많이 변해 자기가 없어도
마사토 군을 잘 케어해준다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주문한 식사를 하면서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했다.
[ 다음에는 마사토 군도 같이 만나요 ]
[ 그럴까 그럼.. 다음엔 집에서 만나자 ]
[ 좋아요 ]
식당을 나와 커피숍으로 옮겨와
우린 아줌마들의 일반적인
수다를 좀 떨었다.
[ 근데 케이짱, 우리 아들이 벌써 27살인데
어쩌면 좋을까.. 정상인 아들 같으면
벌써 독립하고 결혼도 했을 텐데..]텐데..]
자신의 아들이 조금만 더 멀쩡했다면
다른 애들처럼 제빵기술도 익히고
공예로 뭘 만들어 돈벌이를 할 텐데
점점 둔해져 가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고
자기들이 죽을 때 아들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단다
언젠가 남편이 술을 마시고 와서는
보험을 한 개 더 들었다면서
시골에 저렴한 복지시설로 아들을 보내
거기서 여생을 보내게 하자고 하는데
자신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 거 같단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그녀가 한참이나
지나 나왔는데 눈주위가 빨갛다.
벌써 3개월이 지났단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다고,,
그녀가 살이 빠진 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 스즈키 상이 먼저 건강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
[ 그래야지.. 내가 아프면 안 되지..]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스즈키 상이 엷게
웃는데 이마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부모는 자식을 낳은 죄로
끊어 낼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제 살을 깎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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