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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공항에서 즐기는 천연온천 올 1월 31일, 하네다공항 제3터미널 2층에 호텔과 상업시설로 구성된 에어포트 가든이 오픈했다. 도착로비와 직결되어 있어 이동이 편하고 호텔뿐만 아니라 각종 쇼핑몰과 레스토랑, 대형홀,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오픈하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 깨달음이 검사와 시찰을 했었는데 오늘은 직접 체험?을 하기 위해 찾았다. 코로나 전에 완공되었던 이 호텔이 2년이나 늦게 오픈을 하게 된 아픈 사연이 있지만 여행규제가 풀리기 시작해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달, 깨달음 거래처에서 이 호텔 얘기가 나왔고 오늘은 호텔을 이용하는 시박이 아닌, 후지산을 바라보며 천연 노천탕을 즐긴다는 스파를 가보는 일이었다. [ 깨달음,스파 갔다가 또 리포트 작성해야 돼? ] [ 아니. 오늘 당신은 .. 2023. 11. 4.
일본인들 사이에는 없다는 그것 내가 변해가고 있는 건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서 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맞은편 선로에서 들어오는 전철을 사진에 담으면서 야마노테선(山手線)은 서울의 2호선 지하철과 같은 거라며 가이드북을 보기도 하고 카메라 앵글을 바꿔가며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이분들은 서울에서 오셨나라는 아무 뜻도 의미도 없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우에노(上野) 의 아메요코(アメ横)는 한국의 남대문 시장같은 곳인데 오늘 난 이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요즘 변해가고 내 감정의 흐름에 사고를 맡긴 채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 케이짱, 너무 오랜만이다. 연락 줘서 진짜 고마워 ] [ 그냥,,갑자기 잘 계시나.. 2023. 11. 1.
역시, 남편은 사장님이었다. 청소를 하고 잠시 음악을 듣고 있다가 얇은 코트만 걸쳐 입고 집을 나왔다. 창 밖으로 비친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아서 그냥 내버려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깨달음은 주말에도 열심히 회사에 나가 입원 중인 직원의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평일처럼 출근을 했고 난 온전히 혼자서 주말을 맞이했다. 나 혼자 가는 곳은 항상 루틴처럼 정해진 코스와 장소이지만 난 그래도 집에서 가까워서인지 마음이 편하다. 오다이바(お台場)는 바다라고 하기엔 바다스럽지 않은 곳이긴 한데 날이 좋아서인지 스텐드업 패들을 하고 있었다. 수질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물에 들어갈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2년 전, 오키나와(沖縄)에서 카누를 탔을 때 그 짜릿함이 상기되어서인지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스.. 2023. 10. 29.
깨달음,,,,파이팅!! 우리가 단골로 다녔던 소바야(蕎麦屋-메밀가게)가 코로나로 약 2년간 휴업에 들어갔다가 올여름에 리뉴얼 오픈을 했다. 워낙에 인기가 있던 가게다 보니 재오픈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골들이 많아 좀처럼 예약잡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에서야 빈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홀에서 일하시던 파트타임 아주머니들은 안 계시고 아르바이트생이 긴장한 얼굴로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우린 주인 아저씨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뭘 먹을까 새로 바뀐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점장이 니혼슈(日本酒)를 가져오더니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고맙다며 한 잔 가득 따라주셨다. 임시 휴업중에 공사를 하지 않았냐고 깨달음이 묻자 내부는 그대로 두고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2층의 좌식을 모두 뜯어냈다고 했다. 우린 예전부터 먹었던 메뉴들을 위주로 주문을 했.. 2023. 10. 24.
헤어지는 게 정답이다 대학원 동기를 만났다. 홋카이도(北海道)에 사는 아이짱이 남자 친구랑 같이 도쿄에 왔다가 잠시 시간이 생겼다며 내게 연락을 해왔다. 마침 나도 일하고 있던 중이라 점심 시간에 맞춰 중간지점에서 만났다. 테이블에 앉은 동시에 알바생이 와서는 명란젓 (明太子) 과 쯔게모노(漬物 장아찌)인 매운 갓절임 (からし高菜) 을 놓고 갔다. [ 오랜만이네 ] [ 어,, 진짜 오랜만이다 ] [ 무슨 일로 온 거야? ] [ 그냥,,,놀러...] 주문한 모츠나베(もつ鍋 곱창전골)가 나오고 끓는 동안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 정 상,, 식사하고 차 마실 시간 돼? ] [ 응, 괜찮아, 나한테 뭐 할 말 있지? ] [ 아니.. 없어..] [ 그냥 말해,, 얘기하고 싶어서 나 만나자고 한 거 다 알아 ] 그녀는 대답해서 피식 .. 2023. 10. 20.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작지만.. 토요일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이 되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이 거셌다. 베란다에 얼굴을 내밀어 보던 깨달음이 완전 겨울처럼 춥다며 외출복을 가죽점퍼로 바꿔 입었다. 낮은 25도 아침과 저녁은 15도, 기온차가 심한 요즘인데 오늘은 비까지 와서 체감온도는 상당히 춥게 느껴졌다. 전철을 탈까 약간 망설였지만 찬바람이 불어오는 통에 그냥 택시를 타고 교회를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더 늦추면 안 될 것 같아 거실과 각자의 방을 겨울용으로 바꾸기로 했다. 청소기는 깨달음이, 밀고 닦는 건 내가 맡아 척척 빠르게 겨울용 카펫을 바꾸고 침대에도 새 옷들을 입혔다. [ 깨달음, 옷도 다 바꿨어? ] [ 아니,, 그건 저녁에 하려고,,,] [ 그래..] [ 그럼, 세탁기 돌릴 거니까 세탁할 거 내놔 ] 세탁이 끝날 무렵.. 2023. 10. 16.
새로운 직업을 찾은 남편 코리아타운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이곳을 찾은 일본인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음을 갈 때마가 느낀다. 짜장면은 그저 치즈핫도그처럼 간식에 불과하다고 선언했던 깨달음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며 코리아타운에서 만났다. 가게 안은 나만 빼고 100%일본인이였고 모두가 20대 여성들로 가득했다. [ 당신만 남자네...] [ 나는 그것보다 어떻게 일본인들이 이렇게 짜장면을 먹으러, 그리고 이 집을 어떻게 알고 대낮부터 찾아와 먹고 있는지 놀라워 ] [ 당신이 여기와 있듯이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겠지 ] [참,, 대단하다.. 대단해.. 우먼파워..] 오랜만에 먹으니까 역시 맛있긴 하다며 짜장을 다 비비기도 전에 먹었다. [ 그렇지? 원래 짜장면이 그래.. 안 .. 2023. 10. 13.
가족은 사랑하는 게 아니다. [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 [ 네.음식도 괜찮고, 또 얘기 나누기도 편해서.. 술 한잔 하실래요? ] [ 아니요,,저 술 잘 못마시는 것도 있고 역에 자전거를 두고 와서..] [ 아,,그러세요..] 많이 어색해서 술을 한 잔 하면 더 나아질까 했던 내 생각이 짧았다. 서로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통대화가 블로그다보니 네이버블로그와 티스토리 얘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네이버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동시에 전혀 다른 테마로 운영하고 있었다. [ 만나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 아니에요, 저도 언젠가 한 번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 블로그를 한지 벌써 10년이 지나가지만 만나는 이웃님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낯을 가리는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 2023. 10. 9.
남편이 혼밥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았다 퇴근길에 여행사에 함께 들린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중화요리집에 따라 섰다. 5시에 영업이 시작됐는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되었다. [ 이 집, 유명 한가봐,,] [ 그런 가봐,,] 이곳에 올 때마다 그냥 스쳐 지났던 곳인데 중화요리 노포였다. 모든 손님들이 우리 빼놓고 다들 단골인지 안부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주인아저씨께 소개하기도 했다. 2층까지 만석이라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미안하다며 아저씨가 두 손을 모아 사과를 했다. 우리가 앉은 카운터석은 의자가 고정이 되어 있어 옆 사람과의 간격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 깨달음, 요즘 인플루엔자가 유행이야, 마스크 꼭 쓰고 다녀 ] [ 다음 주에 접종 예약했어. 그거 맞으면 돼 ] [ 그래.. 2023. 10. 3.
한국의 추석,,남편이 변했다 아침 일찍 예약해 둔 병원에서 대상포진 2차 백신을 접종했다. 두 달전 1차를 맞고 일주일 내내 38도까지 올라가는 고열과 두통, 오한까지 상당히 힘들어 이번에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느냐 물었더니 1차보다는 덜 하겠지만 증상은 같을 거라며 해열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나는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대체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와 15분간 휴식을 취하라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빈 의자에 앉아 오늘 스케줄을 정리했다. 1차 때도 그렇듯, 발열이 시작된 건 주사를 맞고 7,8시간 후였으니 열이 오르기 전에 끝내고 싶었다. 미팅이 있는 곳에 먼저 가서 아침 겸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가족들끼리 자신만의 소울푸드가 뭔지 얘기를 했었다. 큰 형부가 소울푸드가 뭐냐고 그래서 예를 들어 .. 2023. 9. 28.
내 생일날, 남편이 털어놓은 고백 마지막 기항지는 나가사키(長崎)였다. 나가사키는 여행으로 세 번이나 왔던 터라 하선을 할까말까 망설이다 일단 안 내리는 걸로 하고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거의 잠들 때까지 먹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크루즈생활은 장점이며 단점이다. 운동기구에 따라 두 군데로 나눠진 스포츠짐은 유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서양인과 동양인 두 그룹으로 나눠져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은 코스로 정찬을 먹고 뷔페는 거의 24시간 풀가동이 되어 언제든지 골라 먹을 수 있고 수영장에는 피자와 햄버거가 냄새로 식욕을 자극하고 오후엔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달달한 디저트와 음료, 아이스크림들이 유혹한다. 그러다 보니 입이 한시도 쉴 틈이 없고 우린 특히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다 보니 안주거리를 다운받은 어플로 주문.. 2023. 9. 25.
15년만에 찾은 부산은 참 좋았다 다음날, 기항지 가고시마(鹿児島)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발코니에 아파 보이는 갈매기? 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내가 물을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면서 깨달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무서워서 가까이 못 가겠다며 룸 서비스맨을 불렀다. 그가 다가가자 물려고 사납게 대들어 머뭇거리길래 내가 얼른 수건을 건네자 눈을 가리고 조심히 데리고 갔다. [ 뭐지? 왜 우리 발코니에 와서 쉬고 있었을까? 힘이 부쳤나.. 다친 곳은 없어 보였어..] 다리를 고쳐줬으면 복을 받을 수 있을 텐데라고 했더니 흥부와 놀부 동화를 모르는 깨달음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가고시마의 상징인 사쿠라지마(桜島)에 유람선을 타서 들어가 섬 전체를 버스로 한 바퀴 돌았다. 사쿠라지마는 2000년대 들어 화산활동이.. 2023. 9. 22.
표정이 많이 밝아진 남편 아침에 간단히 커피만 한 잔 하고 요코하마(横浜)에 도착했는데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심사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는데 모두가 부지런히 서둘러 왔나 보다. 깨달음은 주변을 살핀다고 나가더니 20분이 지나도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탑승자의 90프로가 일본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중국, 홍콩, 태국, 멕시코, 미국, 프랑스, 몽골까지 각국의 여행객들이 요코하마 선착장에 모여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타는 크루즈선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전 세계적으로 공포심이 확산되어 가던 2020년 2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그 이유는 선박 내부에서 코로나확진자가 발견되었고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한 3,700여명중 총 705명의.. 2023. 9. 20.
10년이면 많은 게 바뀐다. 2주 전부터 가스레인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3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레인지가 접촉불량인지 점화되지 않았다. 기사분 출장료 4천엔과 체크사항을 적어둔 메모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난 일 때문에 나왔고 깨달음에게 맡겼다. 일하고 있는 중에 사진이 몇 장 날아왔다. 기사님이 다 뜯어보고는 고치는 단계를 넘었다고 그냥 교체하라고 했다며 티브이처럼 가스레인지도 수명이 10년인데 우리 가스레인지는 13년 전 모델이라고 했단다. [ 깨달음, 이번 기회에 IH로 바꾸면 어떨까? ] [ 깔끔하고 좋긴 한데 지진이 나면 전기가 바로 끊겨서 아무것도 못해. 그니까 가스가 좋아 ] [ 그래?... 나 IH로 바꾸고 싶었는데..] [ IH로 바꾼 사람들 휴대용 가스버너를 두대씩 상비해 놓은데.. 지진 대비용으로 ] 난 .. 2023. 9. 16.
이제부터 김치는 사먹기로 했다. 김치 택배가 왔다. 깨달음 거래처에서 보내온 것인데 재일동포라고 했다. 일본에서 살면서 김치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약간 얼떨떨한데 깨달음에게 거래서 최사장이 추석선물 겸 공사 부탁한다고 겸사겸사 인사차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김치 회사 이름이 나카요시다. 이 김치의 수익금은 치바조선초등교에 지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과 사진, 편지지가 들어있고, 내용물은 배추, 깍두기, 무말랭이, 진미채, 창난젓, 냉면이었다. 모두 반찬통에 담으면서 하나씩 먹어봤더니 김치가 아주 상큼하고 간이 딱 맞아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깍두기도 고소한 젓갈냄새가 나면서 상당히 맛깔스러웠다. 진미채는 내 입에 꽤나 달았고 창난젓은 늘 먹던 맛과 별반 차이가 없이 양념맛이 좋았다. 저녁식사 때 반찬으로 내놓은 걸 조금씩 맛을.. 2023. 9. 11.
후쿠시마산을 안 먹는 방법 [ 야, 너 다음에도 이렇게 무작정 오면 나 못 만나 ] [ 알아... 미안해 ] [ 못해도 2주 전에는 연락을 줘야지 ] [ 정말, 이번에는 누나 만날 계획이 없어서 연락을 안 했던 거였어. 근데 오다이바 왔는데 누나 집이 보여서..나도 모르게.. 히히. ] [ 미친... ] 대학원 후배가 갑자기 도쿄를 찾았다. 출장도 아닌 그냥 바람 쐬러 왔단다. [ 뭐 먹을래? ] [ 음,, 우나기(うなぎ 장어) ] [ 한국말 해 , 나 한국말 할 사람이 없다 ] [ 그래? 남편분,, 아,, 한국어 못하지.. 그럼 오늘은 무조건 한국말로 할게 ] 깨달음과 단골로 가는 곳은 당일 예약이 되지 않아 적당한 곳을 찾아 장소를 옮겼다. 니혼슈로 갈증 난 목을 축여가며 식사를 하는데 엊그제 만나던 것처럼 서로에게 익숙했다... 2023. 9. 7.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코로나 핑계로 돌리는 것도 우스웠다. 약속날짜도 내가, 약속장소도 내가 결정해 주길 원해서 예약을 하고 좀 이른 저녁에 그녀를 만났다. 꼭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그녀를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것도, 앉자마자 자기 얘길 하며 감정이 격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도 웃을 때 손뼉을 치는 것도 내가 깨달음과 어떻게 만났는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묻는 거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는 그녀는 그대로였다. [ 케이야, 너 다리는 다 나았어? ] [ 다리? 골절상 입은 거 벌써 2년전이야..] [ 아,,그랬지..내가 깜빡했다 ] [ 뭘 깜빡이야, 6개월전에 만나.. 2023. 9. 5.
모든 부모는 자식보다 더 아프다 오랜만에 연락을 주셔서 솔직히 반가웠다. 그녀의 가족이 가와사키(川崎)로 이사를 했고 코로나 때문에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집 근처에 맛있는 고깃집에서 보자길래 두말없이 약속을 잡았다. 가게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스즈키(鈴木) 상 ] [ 케이짱,, 오랜만이야~ ] 습관적으로 스즈카 상이라고 뱉고 나서야 낫짱으로 불러라고 했던 게 떠올랐지만 나보다 연배인 그녀를 친구처럼 부르긴 좀 어색했다. [ 스즈키상, 근데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 [ 그래? 다이어트 좀 했지 ] 우리 맛있다는 소고기의 각종 부위를 주문하고 그간에 못다 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난,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 소식이 궁금했다. 자폐증이 있는.. 2023. 8. 30.
후쿠오카는 먹거리 천국이다 후쿠오카 둘째 날, 전날 숙취가 남은 우린 아침부터 나가사키 짬뽕으로 시린 속을 달랬다. 마신 양으로 따지면 적었지만 맥주, 소주, 니혼슈, 와인까지 섞어먹은 탓인지 아침이 개운하지 않았다. 말없이 짬뽕 국물을 먹으면서도 깨달음은 오늘이 마지막이니 먹방을 제대로 해보자면서 뭘 먹을 건지 일단 대충 목록을 말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쇼핑센터로 옮겨간 우린 깨달음이 새로 사고 싶다는 심플한 샌들을 사고 약간의 쇼핑을 더했다. 물가가 도쿄에 비하면 엄청 싸다면서 좀처럼 쇼핑에 관심 없는 깨달음이 적극적으로 텀블러와 메모장, 필기도구 그리고 비타민제까지 이것저것 구매했다. 그리고 전날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나카스 리버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후쿠오카 시내를 도는 코스로 저녁 6시 이후.. 2023. 8. 25.
남편이 부른 한국 노래의 진심 추석연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늦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한 탓인지 우린 연휴라지만 무언가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것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뒹굴뒹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스불 켜고 음식을 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하다 보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외식을 하면서 연휴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온 모츠나베(もつ鍋-곱창전골)를 같이 보다가 곱창 좋아하는 깨달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후쿠오카(福岡)를 가자고했고 마침 검색해 보니 바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있어 속옷만 몇가지 캐리어에 구겨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예전엔 미리 계획 세워 갔던 여행을 요즘은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시간 되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 2023. 8. 21.
좋은 인연은 서로가 만들어 간다 난 그들에게 줄 선물을 일단 사고 번화한 시부야(渋谷) 거리를 거닐며 왠지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 회사가 있어서 자주 오는 편이지만 왠지 와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다.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약속 장소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오봉야스미(추석연휴)뿐이었고 서로의 집과 교통이 편한 곳을 찾다 보니 시부야였다. 내가 협회 일을 그만두고 나서 그들과 송별회를 하지 않았던 건 직책은 내려놓았지만 회원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양했었다. 굳이 송별회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내겐 별 의미가 없었는데 꼭 해야 한다고, 안 하면 안 된다는 하시노(橋野) 상의 강력한? 제의로 모두가 자리를.. 2023. 8. 16.
아픈 건 자신의 몫이다 2년 전, 여름 대상포진이 걸려 통증으로 이를 갈았던 아픈 기억을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아 대상포진 예방백신을 맞았다. 맞기 전에 효과와 부작용을 일단 숙지하고 맞았는데 맞은 날 저녁부터 고열이 나고 몸에 잠들어 있던 혈관들이 백신과 싸우는 중인지, 백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지 온 몸이 쑤시고 저리고 열이 올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으로 한 숨을 잘 수 없었다.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원래 발열이 있는 거라고 코로나 백신 때처럼 몸에서 면역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니 2,3일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땐 어깨가 약간 무거운 느낌만 들었을 뿐 아무렇지 않았는데 대상포진 백신이 이렇게 보대끼고 힘들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얼음주머니를 두 개나 끌어안은 채 침대.. 2023. 8. 10.
애정결핍이라고 하니... 신주쿠역(新宿駅) 개찰구를 나오자 온통 북소리와 경쾌한 음악소리가 도로를 점령한 채 축제열기가 뜨거웠다. 4년 만에 열린 신주쿠 에이사(エイサー) 축제가 있는 줄 모른채로 미션 임파서블을 보기 위해 나왔는데 사람들로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거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이사 축제는 유명한 오키나와(沖縄) 전통행사로 크고 작은북을 치면서 남녀춤꾼들이 오키나와 민속악기인 산신(三線)에 맞춰 거리를 돌며 북과 함께 춤을 추는 축제이다. 둥, 둥 울리는 북소리도 그렇지만 그에 맞춰 절도 있는 춤을 선보이는데 음악도 그렇고 보는 이들도 같이 신명이 나게 만든다. 3시간의 긴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린 일단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 팀이 되어 창의적인 춤을 추기도 하고 익살맞은 춤도 추는데 .. 2023. 7. 31.
이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깨달음 친구인 타무라 상(田村) 에게 김치를 보낸 건 한 달 전이였다. 늘 그렇듯,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일본인 지인들에게 김치를 보내는 것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이열치열하도록 칼칼한 김치로 좀 맵게 담아 보냈다. 이번에도 배추, 무, 오이김치 외에 창난젓과 진미채 넣었다.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가 맥주를 보내왔다. 깨달음이 보자마자 이 자식은 맨날 술만 보낸다면서 집에서 술 안 마시는데 쓸데없이 보냈다며 투덜거렸다. 대학동창인 타무라 상과는 지금까지도 일 관계로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할 말 못 할 말 다 털어놓은 절친중의 한 명이다. [ 다시 돌려 보내버릴까? ] [ 그건 실례겠지... ] [ 김치 보내준 당신한테 고마워서 .. 2023. 7. 25.
옆 집 아줌마가 보낸 편지와 남편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손에 들린 편지를 내게 밀더니 옆집 아줌마가 보낸 거라고 했다. 장마가 시작되던 한 달 전, 각 엘리버이터에 공지된 내용을 보고 바로 발코니 배수로 청소를 했는데 아줌마 편지 내용을 보니 먼지나 쓰레기가 배수로에 쌓여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막혀서 자기쪽으로 넘어오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으니 청소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깨달음, 우리 지난주에도 청소하지 않았나? ] [ 했지, 내가 지금 가서 얘기하고 올게 ] [ 아니, 잠깐만,,] 말릴 틈도 없이 다시 나간 깨달음이 바로 돌아왔다. [ 없네...] [ 있어도 무서워서 안 열어줬겠지.. 그냥, 우리도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깨달음이 귀찮은 표정을 하며 내일 아침에 다.. 2023. 7. 19.
시부모님 1주기, 모든 걸 덮었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 우린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탔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아침부터 더운 탓인지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서방님에게서 시부모님 1주기를 한다며 날짜를 알려온 온 것은 2주 전이었다. 우리 스케줄도 묻지 않고 통보만 해 오는 서방님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러니하자 했다. 시부모님도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서방님을 볼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싶은 것도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까지 가족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나만의 인간관계 마무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고야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뛰는데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깨달음도 땀 범벅이 된 채로 버스에 올라타 바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배가 고파왔지만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버스안에서 뭘 먹는.. 2023. 7. 10.
부모도 이젠 혼자 살아가야 한다 장마가 끝나고 난 이곳은 매일 습한 공기와 텁텁함이 계속되고 있다. 더위 탓에 입맛이 없어진 건 나뿐만이 아닌 깨달음도 마찬가지었다. 개운한 게 먹고 싶어 찾은 일식집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은 도쿄 도심뿐만 아니라 변두리까지 관광지로 둘러본다고들 하던데 우린 그들을 보며 젊음이 좋긴 좋다는 말을 했다. 가게 내부를 휙 한번 둘러보던 깨달음이 부모님이랑 같이 관광 온 사람은 한 팀도 없다면서 혼잣말을 했다. 지난주부터 깨달음에게는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아카네(赤根)상이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게 됐는데 그만큼 일을 잘하는 친구를 못 구해서 일이 밀리고 있는 상태란다. 20년 전부터 깨달음 회사 일을 해왔던 아카네 상은 누구보다 3D도면을 잘 치고 일 .. 2023.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