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온 깨달음이 오전에 아버님과
통화를 했는데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셨단다.
[ 무슨 일 있어? ]
[ 아니, 별 건 아니고 당신이 보낸 소포가
잘 도착했다는 거였어 ]
일주일에 3번씩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과자나 과일을 챙겨 보내드린지 꽤 오래됐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그거라도 해야지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해오고 있다.
요양원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에 맞춰 전화를
드릴 요량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깨달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님이셨다.
날씨 얘기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내게 깨달음이 전화기를 건넸다.
[ 케이 짱, 고맙다. 늘 챙겨줘서..]
[ 아니에요. 아버님, 별 일 없으시죠? ]
[ 응, 나야 너네들 덕분에 잘 있단다 ]
[ 아버님,,외롭지는 않으세요? ]
[ 응,,나는 괜찮다.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있단다, 케이 짱,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못 가서 어쩌냐,, ]
[ 괜찮아요, 종식되면 그 때 한번 갈 생각이에요 ]
[ 어머님은 건강하시지? ]
[ 네..]
그렇게 아버님은 우리 친정엄마부터
형제,자매들이 잘 있는지 안부를 물어주셨다.
[ 그리고 케이 짱, 지난번에 보내준 한국 과자도
그렇고, 오늘 온 과자도 참 맛있더라 ]
[ 네.. 많이 드세요 ]
[ 근데.. 이 과자는 어떻게 구했는지 먹으면서
궁금하더구나, 한국에 못 갔을 텐데..]
아버님께 한국 과자의 출처를 알려드리고
뭐가 제일 맛있었는지 이것저것 여쭤봤더니
약과가 가장 맛있다고 하셨다.
[ 아버님, 혼자 계셔도 너무 외로워 마세요 ]
[ 응,, 그래.. 케이 짱,, 코로나 조심하고
항상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거 알지?
그리고 미안하구나..]
[ 아버님,,제발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세요 ]
[ 아니,,내가 미안한 일이 많구나....]
아버님은 내게 확인이라도 하듯이
많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거듭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날 때까지 옆에 있던 깨달음이
아버지 목소리가 밝지 않냐고 묻는다.
밝다면 밝았는데 왠지 모를 쓸쓸함 같은데
느껴졌다고 했더니 기분 탓이라며
과자 맛있다고 자기에게도 몇 번이나
말하셨다며 입맛이 자기와 똑같다고 했다.
[ 응,, 한국에 못 가는데 어디서 샀는지
궁금하셨대 ]
블로그 이웃님들이 보내주신 귀한 한국 과자를
시부모님께도 나눠 보내드렸다.
처음엔 약과나 한과를 좋아하셨고 이제는
초코파이나 산도, 쿠키도 부드럽고
향이 좋다며 맛있어하신다.
오늘,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하셨던 건
내가 보내드리는 과자를 드시며 문득
결혼식장에서 본 우리 가족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고 하시면서 다들 코로나 속인데
건강하신지 궁금하고 잘 지내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였다고 하셨다.
지금 아버님은 요양원에 혼자 계신다.
어머님이 요양원을 옮긴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작년, 10월, 두 분의 재산을 관리하던
깨달음의 남동생, 즉 서방님의 돈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
두 분이 받으시는 연금으로도 요양비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는데 느닷없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고 그로 인해 깨달음은
서방님에게 지금까지의 입출금 내력과
지출 부분을 알려주길 원했지만
서방님은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끝내 두 분이 요양원을
옮겨가야하는 사태까지 이르렀고 두 분을
모두 다른 요양시설의 대기자 명단에 올린
상태였는데 간병이 필요한 어머님이
먼저 2달 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셨다.
그 선택밖에 없었던 건 아녔을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깨달음이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내 의견보다는
형제끼리 해결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도 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이 함께 계실 방법이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이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동생에게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시키고
싶었다고 나중에서야 털어놓았다.
그래도 같이 계시는 게 좋지 않냐고 했더니
어머님의 치매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어
간병이 더 필요해서도 옮겼다고는 했지만
난 서방님이 시부모님 재산관리를 못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따지고 싶은 충동이 이렀다.
우리가 요양원을 나올 때면 한걸음 한걸음 어렵게
방 밖으로 걸어 나와 우릴 배웅하셨던 어머님,
이젠 이렇게 걷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고
두 분이서 좋아하셨던 스테이크를 먹으러 갈 수도
없을 만큼 거동이 불편하시다.
코로나로 못 뵙지 2년이 되어가다 보니
이젠 언제 올 수 있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우리 역시 언제쯤 가겠다는 말씀도
못 드리고 있다.
90을 넘기신 시아버지.
90을 바라보는 시어머니..
두 분을 다른 요양원의 대기자명단에
올리던 날 아버님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깨달음..
아버님은 아무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셨다고 했다.
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시는 두 분.
오늘 아버님이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을 때
갑자기 울컥 했던 건 무엇때문이였을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할지
모르는데 부부가 이렇게 떨어져 계셔야하는
현실을 아버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지금에 와 누구의 탓을 해서 뭐하겠냐만은
서방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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