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오늘은 누룽지가 아니네 ]
[ 응,, 다 떨어졌어 ]
[ 그럼 지난번에 코리타운 갔을 때 사 올 걸 그랬네 ]
[ 아니..내가 만들면 돼 ]
[ 당신이 만든 거랑 가마솥 누룽지맛은 다르잖아 ]
[ 우리집은 가마솥이 없으니까..]
[ 그니까 그냥 사러 가자 ]
[ 아니, 코리아타운 가도 가마솥 누룽지는 안 팔아 ]
[ 그렇구나...]
[ 김도 없네...]
[ 응,,김은 여기 마트에서 사면돼 ]
좀처럼 누룽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깨달음이 후배가 보내줬던 누룽지는
고소한 향이 다르다며 좋아했었다.
아침을 먹고 우린 산책을 나왔다.
사람이 없어 좋고 초여름 같지 않은
산들바람이 불어서도 좋았다.
난 다음주에 있을 세미나 건에 대해 고민을
하며 걸었고 깨달음은 오늘 하루 뭘 하고
지내는 게 재밌는지 궁리를 하다가 내게 물었다.
[ 오늘은 뭐 하고 놀지?]
[ 음,,나는 그냥,, 책을 볼까 하는데..]
[ 난 집에서 도무지 책이 안 들어오는데
당신은 잘 되더라..참 신기해..]
[ 내 눈엔 당신이 더 신기해.. 시끄러운
커피숍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나는 공부든, 독서든 조용히 집에서 하는 스타일이라면
깨달음은 약간의 잡음이 섞인 도서관이나 커피숍에서
해야 능률이 오르는 타입으로 집에서는
도면 체크 외에는 좀처럼 책상에 앉는 걸 싫어하다.
집에 다 왔을무렵 깨달음이 다시 말을 꺼냈다.
[ 우리 코스트코 가자, 거기 누룽지 있을지 모르잖아 ]
[ 있겠지.. 근데 가마솥 누룽지는 없을 거야 ]
[ 그래도 가 보자 ]
[ 없으면 어떡해? ]
[ 없으면,, 그냥 다른 것도 사고 그러면 좋잖아]
나는 확실한 것과 명확한 계산이 나왔을 때
움직이는 편이라면 깨달음은 그냥 느낌적으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편이다.
결국 깨달음을 따라 코스트코로 향했다.
전철 안에서 뭘 사는 게 좋을지 머릿속에
정리를 해 둔 상태여서 난 바로 필요한 것들을
집었지만 깨달음은 가는 곳곳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을 했다.
[ 새우 살까? ]
[ 아니. 남아있어.. 그리고 너무 많아 ]
[ 명란젓 살까? 엄청 싸다 ]
[ 아니. 집에 있어, 깨달음,, 필요한 것만 사,
싸다고 현혹되지 말고,,]
특히 이런 대형매장에 오면 깨달음은
느닷없는 품목을 골라 사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냉면도 한 박스,
만두도 물만두 군만두로 하나씩
초콜릿, 삿포로 맥주도 한 박스..
[ 그 초콜릿 아직 한 박스나 남았던데..]
[ 그래도 살 거야, 아까 식육코너에
돼지고기 맛있게 생겼던데 삼겹살 해 먹을까?]
[ 오늘 저녁은 생선구이 할 생각이었는데..]
[ 그냥 삼겹살 먹자 ]
어젯밤 메뉴가 돈가스여서 오늘은 생선으로
하려고 했던 내 계획은 뒤로 밀렸고
깨달음은 어제 먹은 돼지고기를 잊었는지
또 고기 덩어리를 카트에 넣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61
집에 돌아와 삼겹살과 된장찌개로
저녁을 준비했다.
야무지게 상추에 싸서 볼이
터지게 넣는 깨달음이 귀엽다.
[ 깨달음, 풋고추 안 매워? ]
[ 응, 적당히 매워서 맛있어, 당신은 안 싸 먹어? ]
[ 귀찮아, 고기 먹고 상추 먹으면 돼 ]
[ 그게 뭐야, 삼겹살은 싸 먹어야 제맛이지 ]
[ 알았어, 먹을게 ]
난 고기를 싸 먹는 게 귀찮아 따로 먹을 때가 많지만
깨달음은 꼭 쌈을 싸 먹는다.
열심히 쌈을 싸서 맛나게 먹는 깨달음을 보고
있으니 우린 모든 면에서 참 많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994
깨달음은 시큼한 걸 좋아하지만 난 싫어한다.
깨달음은 차가운 얼음물을 즐겨 마시지만
난 한 여름에도 따끈한 물을 주로 마신다.
깨달음은 달달하고 향이 강한 것을 잘 먹지만
난 달달한 것은 물론 향신료도 싫어한다.
난 국물을 좋아하고 깨달음은 건더기만 건져 먹는다.
깨달음은 엘리베이터를 좋아하지만
난 계단이나 에스칼레이터를 선호한다.
깨달음은 레스토랑에 가면 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려 하고
난 항상 입구와 가까운 쪽에 앉으려 한다.
깨달음은 메뉴가 많은 식당에 가게 되면
메뉴 선택을 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리고
메뉴 변경을 자주 하지만
난 입구에서부터 메뉴를 결정하면 끝이다.
깨달음은 웃고 떠드는 코믹 요소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고 난 서스펜스나 미스터리를 즐겨본다.
난 말이 빠른 편인데 깨달음은 말과 행동이
한 템포씩 느려서 거북이라는 별명도 있다.
https://keijapan.tistory.com/849
난 좀 비싸더라도 하나를 음미하며 먹으려 하고
깨달음은 저렴한 걸로 두 개의
맛을 보는 걸 좋아한다.
이 외에도 서로 다른 점을 꼽으라치면
오늘 밤을 새워도 부족할 만큼 많은
개성 강한 두 인격체가
한 집에서 10년을 살고 있다.
어느 날은 뒷통수도 꼴보기 싫어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일다가도
또 어느날은 천진하고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 주고 싶기도 하고,,
국제커플이여서 오는 문제들도 분명 있겠지만
서로가 다른 인격체이기에 존중해야하며
배려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 부부는 전생에 원수들이 만나는 거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도 다를까 싶을 정도로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면서 사는 게 부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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