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진도 5강의 지진이 있었다.
수도권 전체가 흔들렸고 내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깨달음이 잽싸게 몸을 눕혔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진동이 컸다.
10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가 불연듯 떠올라
얼른 티브이를 켜 상황을 파악하는데
내 심장박동이 빨라져가고 있었다.
[ 괜찮겠지? 깨달음..]
[ 응,, 나도 몰라,, 일단 거실 보고 올게]
깨달음이 거실을 둘러 볼 동안 난 잠옷에서
외출용으로 갈아입고 양말까지 신었다.
[ 왜 옷 입고 있어? ]
[ 여진이 또 오면 피난처로 갈지 모르니까 ]
[ 그러긴 하네..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겠네 ]
열대어들이 놀라서 다들 우왕좌왕하더라면서
넘어진 장식 인형들을 바로 세워뒀다고 했다.
도심에선 수도관이 파열되어 물이 쏟아져 나오고
정전이 되어 칠흑에 묻힌 마을도 있고
가스로 인한 화재도 발생하고 있었다.
늦은 퇴근을 하던 샐러리맨들이 역에서
발이 묶여 모두가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모습들이 안쓰러웠다.
12시가 될때까지 티브이를 켜놓고 여진이
없을 것 같아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수도권 전철이 거의 운행정지된 곳이 많아서
우린 어렵게 택시를 잡아타고
깨달음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 함께 출근한 이유는 지난번에 얘기했던
보험을 새로 가입하기 위함이었다.
사무실엔 직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깨달음은 의자에 앉자마자 오후 미팅에
필요한 도면 체크에 들어갔다.
보험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으려다
그냥 조용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올 때마다 책도 그렇고 못 봤던 자재 샘플들이
바닥에 뒹굴었는데 여전히 사무실 구석구석엔
이름 모를 샘플들이 놓여있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31
화장실 통로에 타일인지 바닥재인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자제가 쌓여있길래 한 줄로
나란히 정리를 해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회사를 접어야 할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또 바빠진
깨달음이 언제나처럼 온 정열을 쏟아붓고 있다.
간단하게 청소기를 한 번 돌리는 게 나을까
생각하는 중에 마침 보험설계사분이
들어오셔서 우린 새로운 보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18
그리고 어제 있었던 지진 얘기로 화제를 바꿔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는 재해보험들의
혜택들이 어떠한지에 대한
부연설명도 함께 들었다.
[ 이 보험이 회사에 더 보탬이 되는 거죠? ]
[ 네, 회사뿐만 아니라 사모님에게도
여러 혜택이 갈 겁니다 ]
깨달음과 눈빛 교환을 한 번 하고 나서
서명을 하고 좀 더 깊숙한 얘긴
깨달음을 통해 듣기로 했다.
https://keijapan.tistory.com/1267
설계사가 떠나고 우린 주스를 한 잔씩 마시며
일본의 지진 소식에 놀라 자매들이 보내온 카톡을
보면서 지진이 날 때마다 한국의 가족들도
같이 걱정하게 되었다고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 깨달음, 지진 보험은 여러 개 넣을 필요 없겠지?]
[ 그래도 이번에 하나 더 넣어둘까 생각중이야 ]
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지진을 경험했다.
2010년 동일본 지진 때는 홀로 식탁 테이블
밑에 들어가 불통이 되어버린 핸드폰을 들고
깨달음에게서 연락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https://keijapan.tistory.com/1029
참 암울하고 삭막하고 막막하게 느꼈던 나와 달리
깨달음은 많이 침착했고 주위의 일본인 친구들도
늘 일어나는 일이여서인지 평상시가
별반 다름없이 행동하는 게 낯설게 느꼈었다.
지진이 처음이어서 겁을 먹었던 내게
다들 입을 모아 생존배낭을 준비해 두거나
그게 귀찮으면 항상 식수용 물을 2리터짜리
6병 이상을 준비해 주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바로 배낭을 준비했었고
식수도 넉넉히 사두고 있지만 생존배낭을
메고 피난처로 가야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 깨달음,,또 지진이 올까? ]
[ 음,,,동일본대지진처럼 큰 게 또 온다고는
하는데....언제 올지,,나도 모르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지진이기에 대처할 길이
없어 솔직히 두려움이 더해간다.
일본인처럼 덤덤해져야하는데
난 자꾸만 심장이 콩닥거린다.
'지금 일본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남편은 행복하다 (0) | 2021.11.22 |
---|---|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0) | 2021.11.08 |
한국에 취업하길 원하는 일본 대학생들 (0) | 2021.09.30 |
일본에서 맞이하는 추석 (0) | 2021.09.21 |
일본어 선생님이 기억하는 한국 유학생 (0) | 2021.09.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