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부터 깨달음 방에서 소리가 났다.
불이 켜진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출장을 가기위해 가방을 미리 싸 둬야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자버린 바람에 아침에
짐을 챙기는 중이라고 했다.
[ 아침은 어떻게 할 거야? ]
[ 역 앞에서 먹을 생각이야 ]
속옷과 양말을 넣고 있는 깨달음 얼굴이
살짝 부어있었다.
현관을 나서는 깨달음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자 [알았어요]라고
한국말로 대답했다.
히로시마에서 (広島) 오픈을 앞둔 빌딩의
최종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검사를 마시면 바로 시골( 이가-伊賀)로
내려갈 예정이라 했다.
시댁 집이 팔린 이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서방님과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뭐가 시원치 않은지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오전이면 검사가 끝날 거라 했는데
오후가 넘어서야 시골집( 伊賀)에 가는 중이라며
연락이 왔는데 히로시마에서 시골집까지
가는 교통편이 불편해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느라
진이 다 빠졌고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며
쓰러져 침 흘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호텔에 짐을 풀기도 전에 저녁을 먹을 거라더니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중식 레스토랑에서
음식 사진을 보내왔다.
너무 맛있어서 내게 미안할 정도라며
나와 항상 같이 먹다가 혼자 먹으려니
급 씁쓸해진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 깨달음,, 천천히,, 맛있게 잘 먹어..
나도 여기도 잘 먹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술도 한 잔 하지 그래? ]
[ 그렇지 않아도 마시고 있어..]
[ 어쩐지 요리가 많다 했어.. 내일은
아버님만 뵐 거야? ]
[ 아니,, 엄마한테도 갔다 올 거야.. 근데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일 다 보고
도쿄 돌아가면 오후 5시쯤 될 것 같아 ]
[ 괜찮아,, 일 다 보고 천천히 와도 돼 ]
아침부터 너무 피곤했는지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기가 돈다며 호텔로 가겠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가서는 바로 골아떨어졌는지
연락이 없다가 다음날 아침 6시 30분,
아침식사를 찍어 보내왔다.
참 ,, 다양하게 많이도 먹는 깨달음...
아침은 집에서도 잘 먹는 편인데 내가
없어서인지인지 양 조절을 하지 않은 듯
보이는 대로 다 퍼온 것 같았다.
월요 단식을 한 지 2년이 넘어가는데
올 해는 침체기인지 좀처럼 체중 감량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더니 살이 안 빠지는 이유가
이렇게 나 없을 때 맘껏 먹어서였던 게 분명하다.
어젯밤도 그렇고,,,
아버님은 내가 갔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이
잘 계시고 어머님도 이번에는 깨달음이
말을 걸면 짤막하게 대답을 하셨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님이 최근 삼시 세 끼를 잘 받아 드시고
목욕하는 것도 즐거워하신다며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며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고 했다.
두 분을 뵙고 난 후로 자신이 어릴 적부터
온 가족이 행사때마다 다녔던 신사를 갔단다.
가는 길에 자기가 태어난 산부인과도 둘러보고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뒷골목도
둘러보고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센베이집, 자전거포를 지나 꽃집에 들러 국화꽃을
몇 송이 사 성묘를 다녀왔다고 했다.
4년 만에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 묘비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는 깨달음..
날도 좋고, 하늘도 푸르고, 햇살도 따사로워
살포시 눈을 감았더니 잠이 스르르 오더란다.
팔려버린 시댁 집은 아직 철거하지 않은 상태였고
이젠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이 되었기에
들어갈 수 없어 집 키를 만지작 거리다
그냥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섰단다.
뭔가 허전한 마음에 다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다
나고야(名古屋)로 나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서로인(등심) 스테이크용
고기를 샀다며 내게 도착시간을 알려왔다.
그렇게 집에 도착한 깨달음은 생각보다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 피곤하지 않아? ]
[ 응,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서인지
컨디션도 괜찮고 왠지 마음적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래서 안 피곤해? ]
아버님과 어머님 모습이 좋아져서 당신 기분이
좋은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 혼자 시골에 내려가서 천천히 둘러보니까 좋지? ]
[ 응, 오랜만에 성묘를 해서인지 뿌듯하고
그냥 편안한 마음이야 ]
육체적으로는 분명 피곤했을 텐데 건강해진
부모님 얼굴을 보고 조상님께 인사도
드려서인지 정신적인 안도감을 되찾은 듯 보였다.
내가 직접 묻기 전에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염려나 걱정을 굳이 내보이지 않던 깨달음인데
내심 마음을 썼던 것 같다.
[ 깨달음,당신은 언제든지 시골 내려가서 부모님
뵙고 그랬으면 좋겠어.. 있을 때 잘해야 된다고
우리 항상 얘기했잖아 ]
[ 그랬지.. 이렇게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나 할까.. 그래..]
[ 그니까 앞으로도 시간 내서 다녀와 ]
[ 당신도 한국 가야 할 텐데..]
[ 나도 알아서 갈 거니까 당신도
마음이 움직이면 망설이지 말고 갔다 와 ]
[ 알았어...근데..역시 효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이렇게 다녀오면 좋은데
막상 마음은 있어도 일을 접고 시간 내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잖아.....]
[ 그래도 오늘 당신 표정 엄청 좋아 ]
[ 그래? 그럼.. 힘들어도 해야지....]
장남으로서 마음 한편이 항상 무거웠을
깨달음이 오늘은 편안해 보였다.
자식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님에게
연민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가는 모양이다.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하는 단순한 진리를
바로바로 실천에 옮기면 좋으련만
자식들은 자꾸만 미루고 있다.
내 사는 게 먼저이다 보니.....
그러지 말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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