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돌아오길 누구보다 기다렸던
시무라(志村) 상을 오늘 만났다.
3년 전에 한국 통장에 넣어둔 현금을 인출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던 시무라 상은
내게 한국어를 배웠던 분이다.
본인이 직접 한국에 가서 해야 하는데 건강상
이유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며
내게 간곡히 부탁을 했었다.
은행에서 인출한 현금과 통장, 그리고
한국에서 사온 조미김과 마스크를 건네자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 케이짱도 오랜만에 한국 가서 바빴을 텐데
내 일로 시간 썼지 ]
[ 아니에요. 저도 은행 갈 일 있어서
겸사겸사했어요 ]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그녀는 한국에서
뭘 먹고, 뭘 했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시무라 상은 한국 드라마를 계기로
한국에 흥미를 가지고 한국어까지 배웠다.
매년 한국에 가서 쇼핑도 하고 동대문에서
닭 한 마리를 먹었는데 건강이 악화되면서는
멀리 나가질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남편과 함께
매일 한국 드라마를 같이 보고 있단다.
[ 케이 짱은 인스타 안 해? ]
[ 네..]
[ 나도 안 했는데 우리 딸 때문에 하게 됐어.
근데, 재밌더라고 ]
인스타에 올린 음식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딸 인스타를 내게 보여주었다.
[ 진짜, 귀엽게 생겼네요 ]
[ 응, 다들 귀엽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더 걱정이야 ]
그렇게 딸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30대 초반인 딸은 남자 친구가 너무 자주
바뀐다며 귀여워서 남자들이 많이 따르는데
성질이 못돼서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다.
따님을 너무 냉정히 평가하시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 딸이어서 자기가 너무
잘 안다며 어쩔 때는 만나는
남자애들이 짠할 때가 있단다.
올 여름에는 4살이나 어린 한국 남자를
만나다며 외국인이 처음이어서 신난다고 엄청
좋아하더니 2개월도 못 가서 헤어졌다며
자신이 처녀 때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다소곳한 면도 없고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자기만 생각하고
남자를 남자로 안 보는 것 같더란다.
[ 근데, 한국 남자는 어디서 만났대요? ]
[ 몰라, 어디서 만났는지도,, 처음에는
너무 좋다고 날마다 만나는 것 같더니만
바로 헤어지더라고 ]
독립해서 살다가 코로나 때문에 집에
들어와 다시 딸과 함께 지내게 됐는데
딸을 볼 때마다 시집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단다.
[ 아버님은 따님에 대해 뭐라고 안 하세요? ]
[ 우리 남편은 한국 남자 만난다고 하니까
결혼하라고 그랬다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지. 한국 남자들도 은근히 까다로워서
우리 딸 같은 애들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
[ 너무 심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세요? ]
[ 응,, 내가 다 털어놓진 못하지만 우리 딸도
문제가 많고,, 아니, 요즘 일본 여자애들이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 멋대로야, 내 친구들
딸들 얘기 들어봐도 아주 못 됐더라고 ]
[ 일본이나 한국이나 요즘 처녀, 총각들이
많이 자유로운 것 같아요 ]
일본인, 특히 일본 여성들은 차분하고
순종적이며 배려심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건 아주 옛날 말이
되어버렸다면서 60대 초반인 시무라 상
눈에는 자유분방한 요즘 여자들의 연애관과
이기심에 강한 이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코리아타운으로 걸어가면서
꼭 먹고 싶었다는 팥빙수 전문점에 들어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주문한 팬케익 위에 올려진 약과를
처음 본다고 해서 드렸더니 맛있다며
집에 갈 때 사가야겠다셨다.
그리고 우린 넷플릭스에서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 얘길 했다.
내가 추천했던 미스터 선샤인, 아저씨를
남편과 같이 보면서 울었다며
한국 드라마 덕분인지 남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자기에게
묻는다면서 건강이 회복되면
같이 한국에 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팥빙수집을 나와 전철역으로 가다가
탕수육 가게에 줄을 서는 시무라 상.
남편이 안 먹어 봤으니 사 가지고 가서
저녁 메뉴로 내놓을 거란다.
따님 것은 안 사냐고 물었더니
오늘도 저녁 약속 있어 늦는다고 그랬다며
이 탕수육도 한국남자 사귀였을 때
맨날 코리아타운 간다고 그랬으니까
이미 먹어봤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헤어질 무렵 시무라 상은 내게
일본이고 한국이고 요즘 젊은 여성들은
자기 주관이 너무 확실해서 남녀 모두
독신들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지만 시대적 흐름이니
나이 먹은 우리가 적응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자
맞다면서 어찌 보면 요즘 젊은 여성들이
현명한 것 같다고 했다.
순종적이며 배려심 많은 일본 여성의 이미지는
과거에서나 볼 수 있으니 딸에게도
더 이상 싫은 소릴 안 해야겠단다.
지금 그대로의 딸을 인정하겠다고 말하는
시무라 상 얼굴이 결의에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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