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야, 잘 있어? 여긴 너무 덥다,
거기도 덥지? 오늘 참외 먹다가
너 생각나서.. 니가 참외 좋아하는데
거기서 못 먹었다고 그랬잖아 ]
[ 아니야, 지금은 코리아타운에서 팔아,
근데 요즘 넌 무슨 반찬 해 먹어? ]
[ 반찬? 음,,별 거 없어, 그냥 있는 거 먹지]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난 무의식적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
[ 무슨 반찬에 먹었어? ]라고
그러면 누구는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여 먹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두릅이
많이 나와서 두릅을 삶았다기도 하고 누구는
오징어볶음을 했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밥 하기 귀찮아 집 근처에서
닭볶음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난 한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무슨 이유인지
체중이 줄고 있다. 더워지면서 입맛이
없어진 게 원인이 아닌가 싶은데 어제는
거울에 비친 내 몰골에서
언니들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깨달음이 뭐 먹고 싶냐고 묻길래 동태탕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당황스러워하더니
코리아타운에 없냐고 되물었다.
[ 없어. 당신은 입맛 없을 때 뭐가 먹고 싶어? ]
[ 음,, 나는 입맛 없는 적이 별로 없는데..
힘 빠지고 기운이 없으면 나는 장어를 먹지 ]
[ 그래.. 당신은 장어를 좋아하니까..]
지난달, 서울에 있을 때 난 비가 내리는 날은
동묘시장에 있는 동태탕집을 찾았다.
얼큰한 국물에 약간 간이 베인 동태살을
떠서 같이 먹으면 참 맛있었다.
그날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었는데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몰리면서 식당 앞 골목에
긴 줄이 생겼었다. 기다린지 30분쯤
기다렸을 무렵, 앞에서 누군가가 줄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세상에.. 밥 먹을라고 줄을 서고 난리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줄 서 있는 바보 멍청이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봤더니
70대쯤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쪽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 그렇게 배가 고프면 집에 가서 먹어,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인디 그것도 모르고,,,쯧쯧.
이렇게 기다릴 시간에 어머니한테 가서
밥 주라고 그래서 먹어봐라, 얼마나 맛있는지.
그러면 어머니도 좋아하고 밥도 맛있고
그럴 것인디 부모님 집에 갈 시간은 없고
여기서 밥 먹으라고 계속 기다리고 있어!!!
생각이 있는 것들이여 없는 것들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인 것을 모르고 아이고,,
세상에.. 미쳐서 돌아가서..이렇게
몇 시간째 줄을 서고 자빠졌어.쯪쯪쯧..]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등을 돌렸고
내 앞 커플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지금은
동태탕이 먹고 싶고, 자신의 엄마는
동태탕을 못 끓이니까 여기서 기다리는
거라며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이렇게 기다릴 시간에 부모님한테 가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 그게 최고라는
아저씨 말에 왠지 뜨금한 건 나뿐이었을까..
아저씨가 개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사라지셨는데도
그 여윤이 계속해서 남았다.
우리 집 냉장고엔 지난번 한국에서 가져온
파김치와 묵은지가 아직 조금 남아있다.
아껴 먹느라 식탁에 올릴 때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엄마를 떠올린다. 특히
파김치는 엄마 텃밭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더 귀한 맛이 난다고나 할까..
깨달음은 이렇게 가늘고 작은 파를
다듬느라 고생하셨을 거라고 했다.
뭘 먹어야 입맛이 다시 살아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던 날 저녁, 깨달음이 멜론을 사 왔다.
입맛 없을 땐 좋아하는 과일을 먹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 같고 동태탕은 자기가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못 찾았단다.
[ 깨달음, 고마워. 원래 동태탕은 겨울철에
먹는 건데 그 집은 사계절 오직 그 메뉴만 팔거든,
그래서 그냥 갑자기 먹고 싶었던 거야,
당신.. 정말 8월에 일주일 살기 할 거야? ]
[ 응, 지금으로서는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니까 당신도 그때까지 참았다가
나도 그 동태탕집에 데려가 줘 ]
[ 그래.. 알았어..]
깨달음은 이번에 가게 되면 낙지호롱,
주꾸미샤부샤부를 먹을 거고
광주에 가서 어머니에게 홍어찜을
해달라고 할 거란다. 원래 꼬막이 먹고
싶은데 꼬막은 제철이 아니니까
홍어로 대신한단다.
[ 당신도 엄마 밥상이 그리워? ]
[ 나도 안 먹은 지 오래됐지..]
[ 그래 맞다..]
코로나로 3년간 못 가고 작년에 갔을 때도
지난달에도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전부 외식을 했으니 장모님 밥상을
안 받아본지 꽤 된 게 맞았다.
[ 깨달음, 어느 아저씨가 그러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어머니 밥상이래.. 당신도
어머님이 차려준 밥상이 그립지? ]
[ 그건 맞는 말인데. 우리 엄마는 요리가
별로여서 난 장모님 밥상이 더 먹고 싶어 ]
[............................ ]
어머님이 살아계셨으면 상당히 서운해하실
소릴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아무튼, 없어진 입맛을 살려주는
엄마의 손맛은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그리워지는 게 사실인 것 같다.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더 맛있는 엄마의 밥상,
그리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목이 메는
엄마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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