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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가끔은 남사친이 더 편할 때가 있다

by 일본의 케이 2022.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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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劉)상을 만나러 요코하마(横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작년부터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었는데

코로나로 몇 번 미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뤘다간 두 번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런치타임에 잠깐 시간을 냈다.

요코하마가 삶의 터전인 류가 도쿄까지

나오는 것보다 내가 이동하는 게 빠를 것 같아 

움직였는데 류가 역 앞에 나와 있었다.

  적당히 배가 나온 40대 후반이 된 류는

도수 높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머쓱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더니 

류가 쑥스러운 듯이 악수를 했다.

얼굴이 변했네, 늙었네, 살이 쪘네, 

중년 아줌마네 등등 서로 약간씩 디스를

해가며 예약해 둔 식당으로 걸었다.

대학원 동기인 류는 중국인으로

졸업하고 바로 이곳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차려 운영하다 작년 말에

모든 걸 접었고 올해 중국으로

귀국을 할 예정이라 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한 번 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온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며 걸었더니 왜 찍냐고

묻길래 블로그에 올릴 거라 했더니

촌스럽게 블로그를 아직도 하냐면서

하루라도 빨리 유튜브로 바꾸는 게

현명한 판단일 거라고 웃었다.

와이프와 아이들 근황을 물었더니

벌써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이 자기만큼

덩치가 커서 다들 고등학생인 줄 안다며

엄마는 무서워하는데 자긴 안 무서워해서

중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다이어트를

시키고 아빠 자리를 확실히 잡을 거라 했다.

적당히 음식을 주문하고 우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입장에서 우린 잘 어울렸다.

팀별 리포트도 같이 하고, 세미나 준비를 위해

서로의 자취방에 오갔던 기억도 있다.

[ 정상이 그때 나 많이 도와줬지,고마워.

특히 논문 쓸 때, 정상 아니었으면 

나 석사 못 땄을 거야 ]

[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내가 니

논문 봐주느라 죽는 줄 알았어 ]

[ 알아,, 그래서 내가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가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 ]

 [ 너, 근데 여전히 일어가 안 늘었네, 어쩌냐 ]

[ 그래서 내가 여기 차이나타운에 있잖아,

일어가 필요 없으니까!!!! ]

그렇게 말해 놓고 자기도 웃고 나도 

웃겨서 손뼉을 쳐가며 옛이야기 속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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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너랑 같은 오우(王)상은 연락해? ]

[ 그 자식 하고는 연락 안 해 ]

[ 왜? ]

오우는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인 사이에

 딸을 낳다는 후문을 들었을 뿐이고

자기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재학 시절, 류와 같은 중국 출신이었던 오우는

류의 서툰 일본어를 늘 못마땅해했고

면박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었다.

[ 나는 정상이 그냥 편했어.여자로 안 보이고 ]

[ 나도 널 남자로 안 봤으니까, 걱정 마 ]

[ 그러니까 이번에도 연락한 거야 ]

[ 알아, 나도 니가 편했어 ]

일본을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

목록을 뽑았는데 그중에 내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언제 들어갈 건지,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예정인지 물었더니

이것저것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게 

있어 모든 것 정리하면 3월쯤이나

갈 예정이라고 했다.

[ 아내분은 건강하지? ]

[ 응 ]

류가 결혼을 하기 전에 사귀였던 아내분은

나와도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다. 

우리 학교에 오기도 하고 류의 자취방에서

두어 번 봤는데 경영학과 출신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지만

류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같이 쇼핑몰을 

함께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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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의 결혼을 꿈꾸는 분들께

 오늘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한국분들과 잠시 자리를 함께 하게 됐는데 그 분들이 생각하는 일본인 남자와의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 너무 의외이고 상당한 이질감이 생겨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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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와이프가 아까 정상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 ]

[ 뭐라고 했는데? ]

[ 남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기억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맞다고 그랬지 ]

[ 그래? 잘 기억하네, 나 원래 남자 같잖아 ]

[ 그러니까, 흔쾌히 만나줄 지 알았지  ]

[ 한국에서는 남사친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중국에도 그런 말이 있어? ]

[ 있어. 여사친, 남사친, 연인관계가 아닌

이성친구 말하는 거잖아? ]

[ 응 ]

[ 정상이랑 나랑은 사람 친구잖아 ]

[ 맞아, 사람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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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살이를 그만 두고 싶은 이유

깨달음이 출근하며 현관문을 닫자마자  난 설거지를 후다닥 해치우고 잽싸게  청소기로 거실만 대충대충 밀어냈다. 그리고 전날 챙겨둔 사진과 여권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물 한병, 책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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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상이 나를 좋아했는데 내가 상대를

안 해줘서 그 자식이 맨날 퉁퉁거렸네 등등

흑역사들을 꺼내며 초등학생들처럼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난 다시 도쿄로 돌아와야 해 식당을 나왔다.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볼지

모르겠지만 유학생활을 함께 보낸 친구가 

또 한 명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역이 가까워지길래 건강하게 잘 살아라고

했더니 중국에 놀러 오란다.

[ 정 상, 우리 와이프가 예전에 요코하마에서

같이 하나비(花火) 축제 갔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불꽃축제 데리고 간다고 오래 ]

[ 아,, 그랬지.. 같이 하나비도 봤었지..

알았어.. 기다려..내가 꼭 중국 갈 테니까... ]

 

내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17년전, 일본어학원을 다닐 적, 알바비가 나오는  날이면 룸메이트와 약속이나 한듯 손을 잡고  규동집(소고기 덮밥)으로 향했다. 한그릇에 280엔(한화 약3천원)밖에 하지 않았지만  요시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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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생이 말하는 한국생활에서 좋았던 것

유끼짱은 내 친구의 딸로 한국에서 3개월 유학생활을 경험했고 지금은 미용공부를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다. 내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해서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친구 두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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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상당히

넓은 아량을 가진 소유자였고 같은

유학생으로 동변상련의 든든한 친구였다.

내가 담임 교수와 트러블로 울고 있으면

질질 짜지 말고 부당한 것들에 대해 당당히

맞서 싸워라고 잘못 된 건 따져야하지

않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몰라서 꼭 내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는 류.

되돌아보니 고마운 건 바로 나였던 것 같다.

국적과 성별을 떠나 남사친으로 참 편했고

짧다면 짧은 2년간 돈독한 

우정을 쌓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디, 본국에 돌아가서도

건강히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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