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劉)상을 만나러 요코하마(横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작년부터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었는데
코로나로 몇 번 미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뤘다간 두 번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런치타임에 잠깐 시간을 냈다.
요코하마가 삶의 터전인 류가 도쿄까지
나오는 것보다 내가 이동하는 게 빠를 것 같아
움직였는데 류가 역 앞에 나와 있었다.
적당히 배가 나온 40대 후반이 된 류는
도수 높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머쓱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더니
류가 쑥스러운 듯이 악수를 했다.
얼굴이 변했네, 늙었네, 살이 쪘네,
중년 아줌마네 등등 서로 약간씩 디스를
해가며 예약해 둔 식당으로 걸었다.
대학원 동기인 류는 중국인으로
졸업하고 바로 이곳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차려 운영하다 작년 말에
모든 걸 접었고 올해 중국으로
귀국을 할 예정이라 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한 번 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온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며 걸었더니 왜 찍냐고
묻길래 블로그에 올릴 거라 했더니
촌스럽게 블로그를 아직도 하냐면서
하루라도 빨리 유튜브로 바꾸는 게
현명한 판단일 거라고 웃었다.
와이프와 아이들 근황을 물었더니
벌써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이 자기만큼
덩치가 커서 다들 고등학생인 줄 안다며
엄마는 무서워하는데 자긴 안 무서워해서
중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다이어트를
시키고 아빠 자리를 확실히 잡을 거라 했다.
적당히 음식을 주문하고 우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입장에서 우린 잘 어울렸다.
팀별 리포트도 같이 하고, 세미나 준비를 위해
서로의 자취방에 오갔던 기억도 있다.
[ 정상이 그때 나 많이 도와줬지,고마워.
특히 논문 쓸 때, 정상 아니었으면
나 석사 못 땄을 거야 ]
[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내가 니
논문 봐주느라 죽는 줄 알았어 ]
[ 알아,, 그래서 내가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가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 ]
[ 너, 근데 여전히 일어가 안 늘었네, 어쩌냐 ]
[ 그래서 내가 여기 차이나타운에 있잖아,
일어가 필요 없으니까!!!! ]
그렇게 말해 놓고 자기도 웃고 나도
웃겨서 손뼉을 쳐가며 옛이야기 속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아, 너랑 같은 오우(王)상은 연락해? ]
[ 그 자식 하고는 연락 안 해 ]
[ 왜? ]
오우는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인 사이에
딸을 낳다는 후문을 들었을 뿐이고
자기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재학 시절, 류와 같은 중국 출신이었던 오우는
류의 서툰 일본어를 늘 못마땅해했고
면박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었다.
[ 나는 정상이 그냥 편했어.여자로 안 보이고 ]
[ 나도 널 남자로 안 봤으니까, 걱정 마 ]
[ 그러니까 이번에도 연락한 거야 ]
[ 알아, 나도 니가 편했어 ]
일본을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
목록을 뽑았는데 그중에 내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언제 들어갈 건지,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예정인지 물었더니
이것저것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게
있어 모든 것 정리하면 3월쯤이나
갈 예정이라고 했다.
[ 아내분은 건강하지? ]
[ 응 ]
류가 결혼을 하기 전에 사귀였던 아내분은
나와도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다.
우리 학교에 오기도 하고 류의 자취방에서
두어 번 봤는데 경영학과 출신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지만
류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같이 쇼핑몰을
함께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 우리 와이프가 아까 정상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 ]
[ 뭐라고 했는데? ]
[ 남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기억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맞다고 그랬지 ]
[ 그래? 잘 기억하네, 나 원래 남자 같잖아 ]
[ 그러니까, 흔쾌히 만나줄 지 알았지 ]
[ 한국에서는 남사친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중국에도 그런 말이 있어? ]
[ 있어. 여사친, 남사친, 연인관계가 아닌
이성친구 말하는 거잖아? ]
[ 응 ]
[ 정상이랑 나랑은 사람 친구잖아 ]
[ 맞아, 사람 친구 ]
오우상이 나를 좋아했는데 내가 상대를
안 해줘서 그 자식이 맨날 퉁퉁거렸네 등등
흑역사들을 꺼내며 초등학생들처럼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
난 다시 도쿄로 돌아와야 해 식당을 나왔다.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또 볼지
모르겠지만 유학생활을 함께 보낸 친구가
또 한 명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역이 가까워지길래 건강하게 잘 살아라고
했더니 중국에 놀러 오란다.
[ 정 상, 우리 와이프가 예전에 요코하마에서
같이 하나비(花火) 축제 갔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불꽃축제 데리고 간다고 오래 ]
[ 아,, 그랬지.. 같이 하나비도 봤었지..
알았어.. 기다려..내가 꼭 중국 갈 테니까... ]
류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상당히
넓은 아량을 가진 소유자였고 같은
유학생으로 동변상련의 든든한 친구였다.
내가 담임 교수와 트러블로 울고 있으면
질질 짜지 말고 부당한 것들에 대해 당당히
맞서 싸워라고 잘못 된 건 따져야하지
않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몰라서 꼭 내게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는 류.
되돌아보니 고마운 건 바로 나였던 것 같다.
국적과 성별을 떠나 남사친으로 참 편했고
짧다면 짧은 2년간 돈독한
우정을 쌓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디, 본국에 돌아가서도
건강히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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