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R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좀처럼 설사를 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지난주부터 복통과 함께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코로나는 아닐 거라며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길래 당장 하라고 쓴소리를 했었다.
이젠 코로나에 걸려도 그냥 독감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어 버렸지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바이러스이기에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미리 조치를
취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 연말부터 송년회, 그리고 신년을 맞이해
거래처에 인사 다니면서 예정에 없던
식사자리에 참석하기도 하고 저녁엔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가길래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럴 때마다 자기는 백신을 5차례나 맞아서
행여 또 걸려도 증상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남에게 옮겨가지 않을 거라는
근거도 없는 소릴 하길래 두말할 것 없이
당장 검사를 하라고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예의라고 싫은 소릴 했다.
점심식사를 하며 깨달음에게 음성 결과를
알리고 앞으로도 서로가 조심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로 돌아와 뒷정리를 하고는 좀 이른
퇴근을 하고나선 난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송금을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다.
평일 오후인데도 떡볶이, 어묵, 닭강정,
호떡집에 줄이 서 있고 골목골목마다
그것들을 먹으며 낄낄 거리는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두 곳에 나눠 송금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다
사람들이 없는 역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점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좀 걸어야 될 것 같아서
풀어진 목도리를 다시 둘러맸다.
덕지덕지 뇌리에 붙어 있는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Yas 아니면 No로 즉답을 선호하던 내가
이번에는 답을 내는데 나름 고충이 있었다.
인간관계, 돈, 공부, 청춘, 친구, 보란티어, 봉사,
논문, 박사과정, 명문대, 대출사기, 홈리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오죽하면 나한테 부탁했을까 하면서도
금액이 컸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난 송금 쪽으로 기울였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냥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돈이 없으면 살아가는데 찾아오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박탈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나 스스로도 경험해 봤기에
그러고 싶었다.
가난은 결코 수치나 부끄러운 게 아닌
불편한 것인데 가난이 주는 불편함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시키는지
뼛 속 시리게 느껴봤던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톨스토이는 가난의 고통을 없애는
두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거라고 했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음가짐,,,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애초부터 실용되기 어려운 방법이다.
욕망을 줄이고 살아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다들 기를 쓰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본인 뿐만 아니라 솔직히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녀가 앞으로 얼마나 공부에 열중을
다할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잠시 숨 쉴 수 있는 기회가,
잠시 잠을 청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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