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함께 아침 일찍 동사무소를 찾았다.
초본, 등본, 인감 등등,, 첨부해야할 서류가 많았다.
광주에서 추석을 보내고 바로 서울로 와야만 했던 건
몇년 전 서울에 사 두었던 우리집이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이주비를 줘야했기에
이주비 신청을 위한 (소유주가 직접 신청 해야만했음) 것이였다.
읽어봐야할 사항도 많았고 서류도 많았고
기입해야할 부분도 많았다.
알아보기 쉽게 파일로 정리를 하고
지정은행에 도착했을 때는 3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내가 해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많은 분들이 편리를 봐주셨다.
죄송하고, 고맙고,,,,
서류를 열심히 정리해 주시고 나서는
비타민 드링크를 언니와 내게 한 병씩 주셨을 때
죄송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게 일단 모든 서류가 문제없이 제출이 되었고
남아 있는 다른 일들은 작은 언니가
또 내 대리인이 되어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날 저녁, 너무 고마운 것도 있고
일단 일이 무사히 끝난 것을 자축하기 위해
동생네와 언니 내외에게 저녁을 샀다.
맛있게 먹는 조카 태현이에게
이모가 일본에 들어가기 싫은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사장님(깨서방)이 기다리시니까 가야한단다.
아직도 우리 태현이는 이모부보다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안 가고 이모 혼자 여기서 살면서 왔다갔다 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3년만 참으란다.
[ .......................... ]
3년후에 완공된다는 소릴 어디서 들었는지
그동안 참았다가 사장님이랑 같이 오란다.
동생도 언니도 그렇게 하라고
3년후에 완공되면 깨서방이랑 같이 귀국해서
살면 좋겠다고
지진 났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불안하고
걱정되더라면서 가능하다면 입주 시기에 맞춰
한국에 들어와 살면 좋지 않겠냐고 한다.
알았다고 와서 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괜히 마음이 많이 설레였다.
그래,,,3년 후에 귀국을 한다면
그러기 위해서 남은 기간동안 난 일본에서
뭘 준비해야하며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찌 할 것인가...
완공이 되어도 귀국해서 살 거라는 생각은
솔직히 해보지 않았었다.
그냥 그 때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지라고만
남의 얘기처럼 생각했었다.
동생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현이가 또 물었다.
정말 3년 후에 사장님이랑 같이 와서 한국에서 살 거냐고,,,,
응,,,, 3년 후에 올게...
들릴듯 말듯 대답해 놓고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뭐라 딱히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차창 넘어 보름달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귀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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