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이야기

그래서 결혼을 했다.

by 일본의 케이 2021. 10. 28.
728x90

빗줄기가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고 흩날리는 오후,

우린 신주쿠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가면 갈 수있는 거리였지만

갑자기 기온이 뚝하고 떨어진 탓에

찬바람이 매서웠다.

로비에 들어서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니

그 날의 기억들이 고스란이 떠오르면서 

왠지 설레었다.

간단히 축하주만 한 잔씩 하고 나올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괜찮아 코스를 부탁했다.

[ 왜 우리가 여길 그동안 안 왔지? ]

[ 음,, 이쪽으로 올 일이 거의 없었지 ]

[ 근데 하나도 안 변했다.., 그날, 입구에

우리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호텔을 정확히

11년 만에 다시 찾았다. 

[ 축하합니다 ] 

 와인을 한 모금 하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깨달음도 생각이 많아졌는지 아무 말 없다. 

[ 깨달음,, 여기 들어오니까 무슨 생각났어?]

[ 음,, 그날,, 한국에서 가족들 오고,,

마중 가다가 내가 넘어져 무릎 양복바지가

찢어졌던 게 떠 올랐어 ]

그랬다. 리무진에서 내리는 친정엄마를 보고

 깨달음이 달려 나가다 미끄러지면서

무릎에 상처가 났었다. 

[ 깨달음,, 그날 신랑 신부 입장을 할 때,

왜 빨리 걸었어? 당신이 빨리 걸으니까

내 웨딩드레스가 자꾸 발에 걸렸잖아 ] 

[ 왠지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었어. 그래서

빨리 걸었지....]

[ 나하고 당신 빼놓고 우리 가족들이랑

당신 가족들도 거의 울었지..,]  

[ 우리도 꾹 참았지..]

우리 둘 다 11년 전, 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와인 한병을 다 마시고 일어난 우린 

 가족들이 머물며 2차로 술을 마셨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도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었고 삼삼오오

모인 손님들이 낚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직접 생선을 낚아서 사시미와 구이, 튀김,

매운탕을 먹을 수 있는 유니크한 가게이다. 

[ 그때 누가 낚았지? ]

[ 후배 남편이 낚았어. 우리 오빠는

안 잡힌다고 화냈던 기억이 나 ]

300x250

[ 여기 오니까 정말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네 ]

[ 그렇지? ]

[ 예식도 그렇고 참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

[ 다들 울고, 웃고, 마시고, 떠들고,, 그랬잖아]

[ 맞아,,참석자 모두 마이크 잡고 한 마디씩

축하한다고 해줬잖아 ]

[ 그랬지..]

[ 깨달음, 당신은 누구의 축하 메시지가

가장 기억나? ]

[ 나는 어머님이 했던 말이 기억나, 케이가

10년 가까이 혼자서 일본에서 있을 때는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짝이 생겨서

안심이 된다고 그러셨잖아 ]

[ 그걸 기억하네..]

[ 기억하지.. 어머님이 많이 우셨잖아 ]

[ 근데.. 그날, 왜들 그렇게 울었을까? ]

[ 몰라, 나도 우리 엄마가 우는 건 처음 봤어 ]

자식들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던 시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셔서

깨달음도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반응형

[ 그래도 울다가 또 배꼽 잡고 웃고 떠들고

특히 당신 선배님이 한국말 할 줄 아니까

돌아다니면서 술 따라주고 한국말로

농담하고 까불고 그랬잖아 ]

[ 맞아, 그 선배가 분위가 다 띄웠지 ]

한국에서는 장남이 최고다며 자기도 장남이고

깨달음도 장남, 우연인지 그날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남자들이 다 장남이어서

한 명씩 붙잡고 포옹하고 난리였었다. 

https://keijapan.tistory.com/1477

 

너무도 다른 두사람이 같이 산다

[ 어,, 오늘은 누룽지가 아니네 ] [ 응,, 다 떨어졌어 ] [ 그럼 지난번에 코리타운 갔을 때 사 올 걸 그랬네 ] [ 아니..내가 만들면 돼 ] [ 당신이 만든 거랑 가마솥 누룽지맛은 다르잖아 ] [ 우리집은

keijapan.tistory.com

그렇게 떠들썩한 결혼식을 마치고 10년이라는

결혼생활을 보냈고 또 1년이 지나가고 있다.

깨달음은 친정엄마의 축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 난 깨달음 선배가

했던 말을 늘 가슴 속에 넣어두고 있다.

[ 솔직히.. 이 두 사람이 잘 살지 못살지

많이, 아주 많이 걱정이 되지만

가족들 앞에서 잘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꼭 그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라고 

 상당히 뼈가 담긴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선배는 우리의 만남부터 계속 지켜봐 와서

불안요소? 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선배다운 조언을 했던 것이다.

https://keijapan.tistory.com/1474

 

우린 권태기가 아니였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다. 햇살이 있는 동안 얼른 다녀오자며 우산을 챙겨 나왔다. 서쪽하늘엔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keijapan.tistory.com

728x90

아까 마지막 와인을 마실 때 깨달음이 자기랑

왜 결혼을 했냐고,, 내게 물었다.

그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보니

무뚝뚝한 나와는 반대로 애교 부리는 게

색다르게 보였고 귀엽게 느꼈였다.

화를 낼 때도 아이처럼 뿡뿡 거리다 마는

모습도 밉지 않았다. 바보처럼 너무

솔직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짙은 속눈썹에

약간 쳐져 있는 무쌍커플의 눈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던 것 같다.

  https://keijapan.tistory.com/1491

 

일본에선 각방을 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여러 질문을 받곤 한다. 내가 20년 이상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과 배우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도 같은 궁금증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가끔 내게 메일을 주시는 분

keijapan.tistory.com

https://keijapan.tistory.com/1171

 

일본남편들이 아내에게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2년만에 보는 선배는 좀 늙어 있었다. 깨달음과도 알고 지낸지 벌써 10년이 되다보니 서로가 허물없이 사이이다. 노총각이였던 그가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50이 넘도록 오직 작

keijapan.tistory.com

그렇게 좋은 것만 눈에 담아 결혼을 했는데

살아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의 예쁜 것만, 좋은 것만 기억하고

살아가면 좋으련만 미운 것, 싫은 것들도 함께

공생해야 되다 보니 지치고 후회하는

시간들도 많았다. 나뿐만 아닌 깨달음도

힘든 시간이 분명 있었기에 이젠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한복으로 갈아입고 피로연을 할 때

깨달음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잘 살겠다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지금도 당신이

맥락없이 까불거나 처진 눈으로 낄낄거리고

웃는 걸 보면 여전히 귀엽게 보인다고 했더니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는 하트를 날렸다.

우린 서로에게 11년간 잘 참아온 것에 대해

격려를 하며 앞으로도 잘 참아내면서

살아가자고 약속했다.

반응형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나눔이 될 것 같아요  (0) 2021.11.11
그래서 결혼을 했다.  (0) 2021.10.28
2년만에 시부모님을 뵙던 날-2  (0) 2021.10.14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0) 2021.10.07
특별하지 않아도 좋은 생일날  (0) 2021.09.24
아내로서 책임과 의무  (0) 2021.09.14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