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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2년만에 시부모님을 뵙던 날-2

by 일본의 케이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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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우린 다시 시댁으로 이동했다.

전날 아버님이 부탁했던 것들을 좀 더 찾고

그것들을 아버님이 계시는

요양원으로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님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하셨던 것은 두 자식들의 성장이

담긴 앨범이였다.

당신 죽기 전까지 실컷 보고 싶다면서

깨달음에게 부탁을 했었고 그 외에 물건들은

모두 필요 없다 하셨다.

취미로 즐기셨던 사진 찍기를 위해 애지중지

하셨던 고가의 카메라도 다 버리라 하셨다.

꼭 남기고 싶은 게 그거뿐이냐고 두 번이나

깨달음이 물었지만 단호하셨다.

그래서  앨범을 찾기 위해 이층에서 

아버님 책상 서랍을 꼼꼼히 살펴

사진들을 모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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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사진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어머님 옷장 서랍에 것들을 모두 꺼내

처리하기 편하게 봉투에 넣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시댁에 처음 왔던 날,

 어머님은 내게 기모노를 주신다고 하시면서

꽤 좋은 기모노가 몇 벌 있으니 당신 

떠나며 모두 처분해서 용돈으로 쓰란 말씀도

하셨는데 이렇게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한다는 게 씁쓸하기만 했다. 

올 초, 깨달음이 혼자 잠깐 시댁에 들렀을 때

 몇 벌 챙겨 오긴 했지만 내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니

기모노 전문점에 가져다주겠다고 했었다.

두 아들의 성장이 담긴 앨범은 꽤나 많았고

그것들 외에 이것저것 남기고 싶은 게

있었는지 박스가 가득했다.

왜 두 개나 박스를 준비하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아버지, 하나는 어머니한테 보낼 거라며

아버지께는 추억이 담긴 과거의 흔적들을

보내고 어머님께는 지금 당장 필요한

따뜻한 겨울 잠옷들을 넣었다고 한다. 

박스에 정성껏 눌러 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깨달음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마당에 열려있는 감을

몇 개 따서 넣어드리고 싶다며 나갔던

깨달음이 정글이 되어버린 마당에서 감을

딴다는 게 도저히 힘들 것 같다며 포기했다.

[ 깨달음,, 그래도 하나 따 보는 게 어때? ]

[ 모기가 극성이야,, 그리고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못 따겠어, 나도 하나 따고 싶은데 ]

[ 그럼,, 어쩔 수 없네..]

이 감나무는 깨달음과 서방님이

태어난 던 해에 아버님이 심었다고 했다.

해년마다 다디단 단감을 매년 우리에게

보내주셨는데 이젠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작은 앞마당이었지만 해년마다 감나무에는

단감이 포도나무에선 청포도가 열렸고

아버님은 탐스럽게 열린 포도나무에서

내게 큰 포도알을 따서 주셨는데 그 따사롭던

기억들이 방울방울, 자꾸만 선명해졌다.

박스를 집 밖으로 옮기고 내가

택시를 부르고 있는데  깨달음이 대문 앞에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문패를 떼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 깨달음,, 뭐라고 기도한 거야? ]

[ 부모님, 그리고 형제 둘이서 무사히 이곳에서

성장했고, 지금껏 가족들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던 자기 집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면서도 착잡하다고 했다.  

 [ 당신도 광주 옛 친정집이 없어졌을 때 이런

기분이었어? ]

[ 응,, 기분이 묘했어. 앞집은 그대로인데

우리 집 라인만 없어져서....]

 친정집은 도로가 나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철거를 해야 했지만 깨달음은 상황이

다르다 보니  내가 느꼈던 허전함과

섭섭함보다 더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https://keijapan.tistory.com/1231

 

남편 가슴에 슬픔이 묻어나던 날

거래처와 약속이 있어 저녁을 먹고 온 깨달음에게서 술냄새가 났다.  많이 마셨냐고 물었더니 소주 세 잔정도 했다면서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한 시간쯤지나 다시 깨달음 방에 들어가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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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둘러 아버님과 어머님 요양원에 각자

박스를 가져다 드리고 바로 나고야역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두 분의 얼굴을 뵐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요양원 측에서도 연이은 면회는

불편해했고 이날 저녁때까지 마무리할 일이

있었던 서둘러 도쿄에 돌아와야 했다.

신칸센을 타자마자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 깨달음은 바빴고

난 자리에 앉아 찍어둔 두 분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이렇게 하루만 시간을 내면 얼마든지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오질 못했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자유롭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핑계를 삼았던 게 사실이다.

https://keijapan.tistory.com/1170

 

일본 시부모님이 날마다 하신다는 기도

아침 일찍 일어난 깨달음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어릴적부터 다녔던 신사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준비하고는 옷매무새를 만진다음, 아주 정중하게 신사에서  기도를 하는 깨달음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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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돌아온 깨달음에게도 두분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자기도 보여줄 게 있다며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 완전히 베스트 샷이야. 내가 타이밍

잘 맞췄지? 당신이 우니까

아버지가 눈물 닦아줬잖아, 그 순간이야 ]

[........................................ ]

https://keijapan.tistory.com/1369

 

내가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이유

[ 저녁은 먹었냐? ] 저녁 9시가 넘은 시각,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 니기 시부모님도 잘 계시지? 한국은  어버이날이였는디 일본도 있냐? 그런 거?] [ 응, 있어, 6월달에 ] [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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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또 사진을 찍었는지 당장 지우라고 했더니

감동적인 사진이라면서 배경화면으로

쓸 거라며 까불었다.

[ 아무튼, 너무 고마웠어. 역시 우리 부모님이

당신을 좋아해, 당신이 오면 두 분 다 엄청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잖아, 무엇보다

당신이 시부모라는 느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아시니까 더 좋아하셔 ]

왠지 쑥스러워 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https://keijapan.tistory.com/1093

 

한국 며느리가 일본에서 겪은 뜻밖의 갈등

내가 블로그를 통해 시부모님 얘기, 특히 시어머니에 관한 글을 올릴 때마다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시댁과는 너무 달라서 답답하다고  털어놓으시는 분이 상당히 많다. 오늘은 그 몇 분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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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니 결혼을 하고 지금껏 한 번도

시부모님을 어렵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시월드라는 생각이 없었고

그냥 먼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라 생각으로

대해서인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물론 두 분께서도 내게 시월드의 분위기를

일체 내보이지 않아서도 내가 편할 수 있었다.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성을 떠나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되니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말해주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셨다.

내가 외국인 며느리여서도 더 많은 이해와

포용으로 감싸주셨던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도

참 고마우신 두 분인데 이젠 헤어짐이

가까워진 듯해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온다.

옆에 앉아 있던 깨달음이 또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간다.

다음에 와서는 내 시부모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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