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신랑(깨달음)

드디어 남편이 한국어를 시작했다

by 일본의 케이 2022. 3. 7.
728x90
728x170

작년, 시댁에 다녀오던 길에 넘어져 안경을

부러트린 깨달음이 새 안경을 맞춘다고 했다.

그 사고? 가 나고 바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는

안 쓰고 둔 옛 안경으로도 괜찮다고 하더니

오늘은 새로 맞추겠다고 했다.

[ 알았어. 깨달음, 내가 사 줄게 ]

[ 그럼 그거 생일 선물로 해줘 ]

[ 아니. 안경은 그냥 사주고, 생일 선물은

또 다른 거, 필요한 거 뭐든지 사줄게 ]

[ 아니야, 안경이면 돼 ]

마침 엊그제가 생일이었던 깨달음에게

좀 더 멋지고 괜찮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갖고 싶은 게 없단다.

[ 봄 자켓 하나 사줄까? ]

[ 아니, 지금 있는 것도 거의 새 거야,

2년 전에 샀는데 두서너 번밖에 안 입어서

코로나라 여행을 못 가서..] 

즐비하게 놓인 요즘 유행 아이템을 하나씩

써보고는 제일 젊게 보이는 걸 골라달라고 했다.

[ 젊게 보이고 싶어? ]

[ 응. 이왕이면..]

직원분은 깨달음 나이에 맞는 색을 추천해

주었는데 못 들은 척하더니

젊은 느낌에 테를 하나 골랐다.

[ 이거 괜찮지? ]

[ 응, 디자인이 세련됐네 ]

시력을 다시 체크하고 안경이 완성되는 동안 난 

이세탄(伊勢丹)에서 작은 케익을 하나 샀다.

 

올 생일은 간단히 집에서 미역국으로

끝냈던 게 왠지 마음에 걸려서 점심을 먹으며

다시 축하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케이크를 들고 안경점으로 들어서며 아직

멀었냐고 물었더니 김서림 방지 처리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단다.

[ 그럼, 점심 먹으러 가자 ]

[ 근데.. 손에 뭐야? ]

[ 당신 좋아하는 케이크 하나 샀어 ]

[ 맛있겠다..]

가게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초를 하나

켰더니 자기 생일을 또 축하하는 거냐고 했다.

[ 응 ]

[ 엊그제 했잖아 ]

[ 그냥 밖에서도 해주고 싶어서 ]

음식이 나오고 깨달음에게 물었다.

소원 같은 게 있냐고..

[ 특별히 없는데 그냥 내가 50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많이 해 ]

[ 왜? 그리고 50대면 뭐가 하고 싶은데? ]

[ 더 열심히 일하고 싶기도 하고,, ]

[ 지금도 열심히 하잖아. 당신은 일이 재밌어? ]

[ 응, 재밌어. 근데 일도 그렇지만 혹 한국에서

살게 되면 한 살이라도 젊은 게 좋잖아.

나이를 먹으면 맘대로 못 노니까  ]

[...........................................  ]

반응형

지난달부터 깨달음은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를 갑자기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고 있다. 

잊어버렸던 모음, 자음부터 다시 쓰고 외우고

 한글강좌 초보편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발음 연습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결혼 12년을 맞이하며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성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단어들을 뒤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리고 

암기력이 너무 떨어져서 조금만 젊었으면

훨씬 빠르게  습득할 텐데 이래저래 자기가

50대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300x250

[ 원래 나이 먹어서 외국어 시작하는 게 힘들어.

그냥 쉬엄쉬엄 해 ]

[ 당신 말대로 결혼해서 바로 시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어. 솔직히 금방 될지 알았거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못해도

한국에 가면 웬만해선 그냥 다 통했고

맛있어요를 시작해 꽤나 알고 있는 생활용

단어들이 있어 나름 쉬울 거라 생각했단다.

특히 어순이 같으니까 쉽게 익힐 수 있다

자만했는데 막상 해보니 외워지지 않는 게

가장 힘들고 비슷비슷한 발음, 특히 어와 여,

의와 으가 아무리 들어도 자기 귀에는 구별이

안 된다며 늦게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식사가 끝나면 1시간씩 

거실에서 쓰고 읽기를 하며 내게 발음 교정을

부탁하곤 했다. 화장실에도 변기 정면에

한글표를 붙여놓을 정도로 열성을 다하고 있는데

 자신의 노력만큼 성과가 따라오지 않아서인지

뒤늦은 시작이 후회가 많았다.

[ 올 해는 한국에 가겠지만 그때까지라도

한글을 모두 읽을 수 있는 게 목표인데

진도가 너무 안 나가 ]

[ 걱정 마, 잘 하고 있잖아 ]

 

일본에서 한국분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들

협회 모임이 있었다. 내 앞 테이블에서 열심히 움직이시는 60대 중반 정도의 분에게 한국분이냐고  물었는데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

keijapan.tistory.com

728x90

원래 식당 메뉴판을 막힘없이 익는 게

목표이지 않았냐고 조금만 더 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것이 되어간다고 해도

받침 붙으면 점점 더 어려워질 텐데

잘할  수 있을지 초조해진다고 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닌

본인 스스로를 위해 하는 거니까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할 필요 없다고 

원래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한글 배울 때

많이 어려워하니 너무 낙심 말고 나이 탓도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배우는 건 재밌는데 앞으로 점점

더 못 따라갈까 봐 걱정이란다.

 

한국남자에게만 있다는 매력

참 오랜만에 만나는 미호 상이다. 서로 바쁜 것도 있고 코로나19로 사람 만나기를 주저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꼭 자길 만나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만나서 얘

keijapan.tistory.com

 

재혼,,그래서 더 어렵다

왠만해서는 한여름에도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 내가 오늘은 얼음이 둥둥 떠있는 것으로 목을 축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다는 생각에 한모금 마셨더니 역시 괜한 짓을 했단 후회가 컸

keijapan.tistory.com

[ 난 그저 지금이라도 한글 공부를 시작한 게

고맙고 시작하고서 하루도 빠짐없이

착실히 쓰기 연습을 하는 성실함에 고맙고

나한테 뭐든지 물어봐 주는 것도 고맙고 그래 ]

고맙다는 내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됐는지

열심히 해 볼 생각이란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그 나이가 되면 마음만큼 모든 기능이

뒷받침되지 않아 부담스러운 게 많은 모양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초조함을 낳은 것 같은데

꾸준히 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좀 서툴고, 좀 틀리고, 좀 느리면 어떠랴...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 메뉴들을

줄줄 읽어나가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저 깨달음이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즐기면서 한국어를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