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후배에게서 온 카톡을 오후에서야
확인했다.
고등학교 후배인 미애(가명)의 첫째 딸이
결혼한다는 메시지였다.
어릴 적 나랑 목욕탕을 다녔던 그 꼬마 애가
서른이 넘고 이제 결혼을 한단다.
친구 딸이 결혼하다고 했을 때도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후배가 장모님이 된다고 하니까
낯설기만 했다.
결혼하게 되면 꼭 나한테 알리라고 내가
축하해 주러 한국 가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 후배와 나는 참 많은 인연이 쌓여있다.
고등학교 후배이니 내 방황하던 10대와
푸릇했던 20대 청춘을 함께 웃고 떠들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후배이다.
누군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서
말리겠다고 왜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100가지도 얘기할 수 있다고
흥분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101가지 말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결혼 같은 건
하는 게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옛 어르신 말씀처럼 살아봐야 아는 것이고
겪어봐야 느끼는 것이기에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과 저녁을 먹으며 후배 얘기를 잠깐
했더니 바로 생각났다고 했다.
[ 축의금 보냈어? ]
[ 응 ]
[ 얼마? ]
[ 좀 많이 보냈어..]
[ 잘했어.. 당신이 항상 그 후배 얘기
할 때마다 수표 얘기 했었잖아..]
[ 그거 기억하네..]
[ 기억하지, 당신한테 항상 고맙다고
했던 그 후배잖아 ]
[ 맞아,,]
설거지를 마시고 내 방에 들어와
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언니... 못 와? 진짜로? ]
[ 응,, 못 가,,, 날이 안 맞아,, 좀 일찍
알려줬으면 어떻게 가 보겠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 내가 ]
[ 아니야,,, 근데.. 우리 딸이 축의금
받자마자 일본이모가 친척보다 훨씬
낫다면서 좋아한 거 있지, 저렇게 속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시집가서
잘 살지 모르겠어..]
[ 너 닮아서 잘 살 거야,,]
[ 언니,, 고마워.. 진짜..]
[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정확히 30년 전,,
20대 중반이었던 난 경제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었다. 알바를 전전하면서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상당히 버거웠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카드빚이 있었고
어느 날은 전기세를 못 내 연체료가 붙어
독촉장이 날아왔는데 그걸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에서 헤매고
지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후배 미애는 일찍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그날도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한 참 놀다가 집에 돌아간 뒤에
갑자기 내게 전화를 했었다.
뭐 놓고 간 거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전화기 밑을 한 번 보라면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들어보니 그 밑에
10만 원짜리 수표가 놓여 있었다.
그 십만 원 수표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게 참 생명 같이 귀한
10만 원이었다.
후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부끄러움과
내게 아무 말없이 전화기 밑에 넣고 간
후배의 그 배려가 고맙고 고마워서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자리를 잡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던 날,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돌려줬더니 빌려준 게 아닌데 왜
돌려주냐면서 절대로 안 받는다고
돈을 다시 나한테
내 가방에 쑤셔 넣던 미애...
그래서 그 몇 배로 축의금을 넣었다.
그 당시 받았던 그 10만 원은 내게
100만 원, 1.000만 원에 가치가 있었기에
그날 느꼈던 그 벅찬 감사의 마음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언제 한국에 들어올 거냐고 묻길래
중순에 들어가서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다.
[ 그럼,, 그때 만나서 언니가 좋아하는
조기찌개 먹으러 가자, 내가 살 게 ]
[ 그래.. 알았어..]
[ 언니,, 정말 고맙고,미안하네,..]
[ 아니야, 넌 내게 평생 고마운 사람이야 ]
전화를 끊고 나서도 30년 전
그날의 여운이 남아 맴도는 듯했다.
마음의 빚을 진정한 감사로
전할 수 있어 참 다행이고 딸
수현이(가명)가 많이 많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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