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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마음의 빚을 30년만에 갚던 날

by 일본의 케이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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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후배에게서 온 카톡을 오후에서야

확인했다. 

고등학교 후배인 미애(가명)의 첫째 딸이

결혼한다는 메시지였다.

어릴 적 나랑 목욕탕을 다녔던 그 꼬마 애가

서른이 넘고 이제 결혼을 한단다. 

친구 딸이 결혼하다고 했을 때도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후배가 장모님이 된다고 하니까

낯설기만 했다.

 

결혼하게 되면 꼭 나한테 알리라고 내가

축하해 주러 한국 가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 후배와 나는 참 많은 인연이 쌓여있다.

고등학교 후배이니 내 방황하던 10대와

푸릇했던 20대 청춘을 함께 웃고 떠들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후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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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서

말리겠다고 왜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100가지도 얘기할 수 있다고

흥분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101가지 말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결혼 같은 건

하는 게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옛 어르신 말씀처럼 살아봐야 아는 것이고

겪어봐야 느끼는 것이기에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과 저녁을 먹으며 후배 얘기를 잠깐

했더니 바로 생각났다고 했다.

 

[ 축의금 보냈어? ]

[ 응 ]

[ 얼마? ]

[ 좀 많이 보냈어..]

[ 잘했어.. 당신이 항상 그 후배 얘기

할 때마다 수표 얘기 했었잖아..]

[ 그거 기억하네..]

[ 기억하지, 당신한테 항상 고맙다고 

했던 그 후배잖아 ]

[ 맞아,,]

설거지를 마시고 내 방에 들어와 

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언니... 못 와? 진짜로? ]

[ 응,, 못 가,,, 날이 안 맞아,, 좀 일찍

알려줬으면 어떻게 가 보겠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 내가 ]

[ 아니야,,, 근데.. 우리 딸이 축의금

받자마자 일본이모가 친척보다 훨씬

낫다면서 좋아한 거 있지, 저렇게 속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시집가서

잘 살지 모르겠어..]

[ 너 닮아서 잘 살 거야,,]

[ 언니,, 고마워.. 진짜..]

[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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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30년 전,,

20대 중반이었던 난 경제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었다. 알바를 전전하면서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상당히 버거웠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카드빚이 있었고

어느 날은 전기세를 못 내 연체료가 붙어

독촉장이 날아왔는데 그걸 납부하지

못할 정도로 바닥에서 헤매고 

지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후배 미애는 일찍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그날도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한 참 놀다가 집에 돌아간 뒤에

갑자기 내게 전화를 했었다.

 

뭐 놓고 간 거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전화기 밑을 한 번 보라면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들어보니 그 밑에

10만 원짜리 수표가 놓여 있었다.

그 십만 원 수표를 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게 참 생명 같이 귀한 

10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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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부끄러움과

내게 아무 말없이 전화기 밑에 넣고 간

후배의 그 배려가 고맙고 고마워서

한참을 소리 내서 울었던 것 같다.

내가 자리를 잡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던 날,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돌려줬더니 빌려준 게 아닌데 왜

돌려주냐면서 절대로 안 받는다고

돈을 다시 나한테

내 가방에 쑤셔 넣던 미애...

그래서 그 몇 배로 축의금을 넣었다.

그 당시 받았던 그 10만 원은 내게

100만 원, 1.000만 원에 가치가 있었기에

그날 느꼈던 그 벅찬 감사의 마음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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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국에 들어올 거냐고 묻길래

중순에 들어가서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다.

[ 그럼,, 그때 만나서 언니가 좋아하는

조기찌개 먹으러 가자, 내가 살 게 ]

 [ 그래.. 알았어..]

[ 언니,, 정말 고맙고,미안하네,..]

 [ 아니야, 넌 내게 평생 고마운 사람이야 ] 

전화를 끊고 나서도 30년 전

그날의 여운이 남아 맴도는 듯했다.

마음의 빚을 진정한 감사로

전할 수 있어 참 다행이고 딸

수현이(가명)가 많이 많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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