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들에게 줄 선물을 일단 사고
번화한 시부야(渋谷) 거리를 거닐며
왠지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깨달음 회사가 있어서 자주 오는 편이지만
왠지 와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다.
스크램블 교차로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약속 장소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오봉야스미(추석연휴)뿐이었고
서로의 집과 교통이 편한 곳을 찾다 보니
시부야였다.
내가 협회 일을 그만두고 나서 그들과
송별회를 하지 않았던 건 직책은 내려놓았지만
회원의 일원으로서 앞으로도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양했었다.
굳이 송별회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내겐 별 의미가 없었는데
꼭 해야 한다고, 안 하면 안 된다는
하시노(橋野) 상의 강력한? 제의로 모두가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키가 휜칠한 미즈오(水尾) 상과
카네코(金子) 상이 같이 들어오면서
[ 역시, 정 상이 먼저 와 있군,
우린 항상 정 상보다 늦는다니깐..]라며
예약석에 앉아 있는 걸 보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모리(森) 상이 뒤늦게 합류를 하고
나를 포함해 5명이 다 모여
우린 생맥주로 먼저 건배를 했다.
추석인데 다들 본가에 가지 않았는지
어차피 태풍 때문에 비행기고 신칸센이고
뭐고 교통기관이 마비 돼 못 움직이니까
안 간 게 정답이었다는 말이 오갔다.
[ 정 상, 한국도 오봉이 있죠? ]
[ 네. 있어요, 음력으로 쇠니까 해년마다
날이 다르긴 해요 ]
[ 추석 때 먹는 요리도 따로 있나요? ]
[ 있죠, 일본하고 같아요, 추석의 의미는 ]
[ 아,, 그렇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모리 상이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며 화제를 바꿔 내가 나간 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보고 하듯이
세세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미즈오 상이 업무 얘기 그만하라고
정 상한테 털어놓아도 해결은 남은
우리가 해야 한다며 재밌는
얘기를 하자고 했지만
모리 상은 담아 둔 말이 많았던지
새로운 직원들 태도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도 하고 경리업무에 관한
어려움도 털어놓았다.
[ 정 상은 항상 잘 들어주니까
그냥 하고 싶은 말들이 계속 나오네..
이해해 줘..]
[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
[ 솔직히 난 정 상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 무리겠지만,, ]
[ 모리 상, 뭔 소리야, 오늘 송별회인데
다시 복귀회를 만들고 싶은 거야? ]
듣고 있던 카네코 상이 웃으면서
모리 상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건 실례라고 했다.
[ 아, 정 상, 내년에 한국에서 산다면서요? ]
[ 아,,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 그래? 그럼,, 나 한국 가면 서울 구경
시켜 줄 거야? ]
갑자기 한국 얘기가 나오면서 4명이
서로 한국에 가봤네, 안 가봤네,
경복궁이 어쩌고 이태원이 어쩌고
저마다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한국을
꺼내서 내게 쏟아냈다.
요즘은 멋진 카페가 가는 게 유행 아니냐,
유명 가수를 보려면 어딜 가야하냐,
닭한마리는 어디가 제일 맛있냐,
성수동에서 파는 마카롱을
코리아타운에서 안 파느냐,
지금도 사격연습장이 있느냐,
온천이 있느냐, 한국도 혼탕을 하느냐,,등등
남자들이 묻는 것과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게
판이하게 달라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 우리 이 멤버 그대로 갈까? ]
[ 싫어, 난 혼자 갈 거야 , 그리고
이 수가 다 가면 정 상한테 민폐야,
그니까 따로따로 가야 돼 ]
여행 얘기가 열기가 오르면서 다들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졌다.
송별회를 주관한 하시노 상이 약간 흥분 상태에
접어든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샤부샤부를
한 점씩 만들어 각자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 하시노 상, 우리 내년에 단체로 한국 갑시다]
[ 그거 좋네,, 거기 협회도 한 번 가보고
겸사겸사 여행도 하고,, 좋지 않아? ]
하시노 상은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긴 젓가락으로
목돔 샤부샤부를 남자들 접시에
야채와 함께 올렸다.
잠시 침묵과 함께 따끈한 샤부샤부와
술안주로 딱 좋은 생선조림을 먹고
있는데 하시노 상이 오늘 이 자리는
정 상이 그동안 수고한 것에 대한 감사를
뒤늦게나마 표하기 위한 자리이고
앞으로도 물론 정 상을 업무적으로
가끔 보긴 하지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내년에는 한국으로
단체여행이 아닌 세미나처럼 그런
행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린 정말 내년에 한국에서 일과 여행을
병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어
볼 수 없을까 각자의 아이디어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헤어질 시간이
됐지만 의견이 조율되지 않았고 아무튼
내년에는 무조건 한국에 간다는 것만
결정하고 다시 만나 계획을 세우기했다.
약간의 취기가 오른 상태로 전철을 탄
나는 모두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가게를 나서기 전, 다섯명이 마지막 잔을
들고 한 번 맺은 인연은 귀하게 귀하게
이어가도록 서로 노력하면 좋겠다던
그들에게 한국을 멋들어지게
소개할 테니 기대하시라고 했다.
좋은 인연이란 내가, 그리고 상대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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