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손에 들린 편지를
내게 밀더니 옆집 아줌마가
보낸 거라고 했다.
장마가 시작되던 한 달 전, 각 엘리버이터에
공지된 내용을 보고 바로 발코니 배수로 청소를
했는데 아줌마 편지 내용을 보니 먼지나
쓰레기가 배수로에 쌓여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막혀서 자기쪽으로
넘어오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으니
청소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깨달음, 우리 지난주에도 청소하지 않았나? ]
[ 했지, 내가 지금 가서 얘기하고 올게 ]
[ 아니, 잠깐만,,]
말릴 틈도 없이 다시 나간 깨달음이
바로 돌아왔다.
[ 없네...]
[ 있어도 무서워서 안 열어줬겠지..
그냥, 우리도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깨달음이 귀찮은 표정을 하며 내일 아침에
다시 자기가 가서 얘길 하겠다길래
내가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녀처럼 워드로 치려다 손 편지로
일주일 전에 청소를 했는데 불편하셨다면
더 한 번 하겠다고 써서 그녀의 우편함에 넣었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관리실 아저씨에게도
이런 편지를 받아서 우리도 이렇게
답장을 했다고 하자 관리인이 도리어
미안하다고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그다음 날, 야무우치 상 편지가
또 들어있었다.
이미 청소하셨는데 자기가 편지를
보낸 것 같다며 실례했다는 내용이었다.
깨달음에게 사과의 편지가 왔다가
사진 찍어 보냈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자기가 또
얘기할 거라길래 그러지 말라고 했다.
깨달음은 청소한 걸 확인하고 편지를 쓰던지
할 것인지 그녀의 행동이 경솔하다고 탓했는데
내 생각엔 그녀가 만족할 만큼 청소가
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일주일 전, 깨달음이 간단히 쓰레기랑
머리카락만 제거했기 때문에
야마우치 상 눈에는 좀 더 깨끗하길
원한 것 같아 내가 물청소를 다시 했다.
[ 깨달음, 우리가 잘 못한 거야 ,
좀 더 깨끗이 청소했으면 괜찮았을 일인데
건성건성해서 걱정된 모양이지..]
베란다를 내다보더니 물청소를 한 거냐면서
나보고 대단하단다.
괜히 아파트 살면서 특히 옆집과
트러블 생기면 정말 골치 아프니까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그냥 한 발 물러서서
일을 해결하면 편하다고 했더니 자기는
편지를 읽는 순간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단다.
[ 당신 표정에 그대로 나왔었어. 그런
얼굴로 옆집에 갔으니 열어주지 않았겠지 ]
[ 내가 요즘, 늦은 갱년기인지 날씨 탓인지
모든 게 짜증스러운 것 같아 ]
[ 그니까 좀 쉬어.. 그리고 사람들한테
예민하게 굴지 마.. 원래 안 그런 사람이
왜 그래..,,]
[ 몰라,,]
올해 들어 깨달음은 정말 갱년기 온 아저씨처럼
짜증도 많아지고 피곤해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깨달음이 변해버린? 이유가 뭔지
좀 더 세밀하게 파악을 해봐야 되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내가 처리하겠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때, 이제 깨달음은
퇴직이란 걸 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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