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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개념의 부부들이 늘어가는 일본

by 일본의 케이 2020. 12. 23.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일단 예약를 할 

생각이였는데 괜찮으시면 오늘 비어있으니

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옷을 챙겨입었다.

미용실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자를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머리를 멋지게 단장하고, 곱게 화장을 하며

 정성껏 네일아트를 하는 여성들의 일반적

 꾸미기엔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보니

 오늘도 삭발이 제일 편할 거라는 생각만하고 

미용실에 들어섰다.

귀 밑까지 짤막하게 잘린 어느 헤어모델의

단발머리 사진을 보여주며 볼륨 넣지 마시고

그냥 이대로 잘라주시라 부탁한 뒤

 난 가져간 책을 꺼냈다.

[ 댁이 이 근처세요? ]

[ 저희 가게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

[ 오늘 너무 춥죠? ]

그냥 건성건성 대답을 했다.

일본 미용실은 너무 친절해서 불편할 때가 있다.

그냥 머리만 잘라줬으면 하는 바람에 

책을 더 몰두해서 읽었다..


기분이 울적해서도 아닌, 올 해를 마감하기 전에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들렀다.

 한국에서 하려고 했던 머리손질인데 더

 미룰 수 없어서 선택한 것뿐이다.

눈을 감고 머리를 맡긴 채 누워서 잠시

 순간이동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했다.

눈을 떠보니 한국 미용실이였다는....

과한 친절서비스를 받고 나오면서 거울 앞에

비췬 나를 보는데 언뜻 큰언니 모습이 스쳤다.

나이를 먹으니 점점 언니들 모습이 내 얼굴에서 

나오고 있다는 게 당연스러운 거라 합리화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고 길모퉁이에 작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시간대가 애매해서인지 실내에 나 밖에 없어 좋았다.

몇 장 남지 않은 책을 마져 읽을 요량이였는데

핸드폰에 새로 뜬 메시지가 날 붙들었다.


두 달이 넘게 마코 상(가명)과 나눴던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고 또 읽었다.

남편이 바람이 났다며 시작된 그녀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람 핀 증거도 확보해 두었는데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게 두렵다는 마코 상.

 남편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아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될지 모르겠단다.

모두가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가는 반면

마코 상의 남편은 의료계에 종사하셔서

더 바쁜 생활을 했단다.

자신이 몰랐던 남편의 모습이 그 여대생과의

라인 메시지를 보고 하나씩 알게 되었다며

 남편의 취미생활, 좋아하는 음식, 말투가 

생소해서 닭살이 돋을 지경이였다고,,

남편 핸드폰을 보고 모든 걸 알게 되었다는

마코 상은 자신이 모르는 남편의 모습들이

가장 놀라웠다고 한다. 


자기 남편이 아닌 모르는 남자의 얘기 같아서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며 오이를

 싫어하는 것도 몰랐고 오토바이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몰랐으며

게임 같은 건 전혀 집에서도 하지 않아서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매니아였단다.

집에서는 100%만점이였던 남편이였고

지금껏 한 번도 말다툼을 해 보지 않았고 

항상 마코 상에게 모든 걸 맡겨주어서

불만이나 트러블 자체가 없었다는 남편.. 

고양이보다는 개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도,

딸보다는 아들이길 바랬다는 것도

모두 핸드폰 속에 여성(대학생)과 나눈

 대화에서 알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자신을 철저히 속여왔는지,

아니 감추며 살아왔는지 생각하면 할 수록

바람을 핀 것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고

자신과의 재혼 8년간의 시간이

뭐 였으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게 자괴감에 빠진다는 마코 상.

두번째 결혼인 만큼 그냥 평범하게 애 낳고

살고 싶었다는 마코 상은 자신의 진짜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아내에게 맞춰서 살아왔던 

남편이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단다.

재혼으로 늦게 아이(초등 1학년)를 가진 

마코 상에게 1순위가 오직 아이뿐인 건 

변함 없었고 남편과의 이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그렇게까지 자신을 감춰야했냐고

그런 이중생활을 언제까지 할 생각이였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내 마음이 51%로 향하는 쪽을 따르는 게

덜 힘들지 않겠냐고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는데 그것들을 감안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어디까지나

마코 상이 결정하도록 유도했다.

어떤 결정도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게

그 적절한 선을 넘지 않게 한 걸음 떨어져

조금은 냉정히 본인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한 때 일본에는 가면부부가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가면부부라고 특별할 게 없지만

남들 앞에서의 모습과 둘 만 있을 때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부부를 칭하는데 원래 부부란

둘 만이 아는 세상이다보니 어설픈 조언은

필요치 않을 것 같았다. 


https://keijapan.tistory.com/1103

(요즘 일본에서 급증하는 가면부부)

내가 모르는 남편의 사생활, 나를 보여주지

않는 결혼생활,,이중된 모습으로

살아가야했던 남편에게도 무언가 할 말은 

있을텐데 마코 상이 그것을 어디까지

이해해 줄지가 관건인 것 같다.

집에서는 완벽한 남편, 밖에서는 내가 모르는 

개인적인 생활을 즐기는 남편,,

사생활이 중시되는 요즘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부간에도

넘지 말아야할 선들이 해년마다

시대별로 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디까지가 사생활이고, 

어디까지 지켜주고 모른 척 해야하는지

부부가 되었는데도 사생활이 중요한지

그 경계선이 각 가정마다 다른 것 같다.

부부의 모습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다보니

이렇게 마코 상 같은 신개념 부부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어 씁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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