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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에서 (에세이)

신주쿠에 부는 북풍을 맞으며

by 일본의 케이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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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코리아타운이 있는

신오쿠보(新大久保)를 정처 없이 걸었다.

어딘가에 내 집이 있을 것만 같아서 

길 잃은 아이처럼 좁은 골목을

또 돌아 또 돌아 걷기도하고

한글이 빼곡히 적힌 어느 한식당

간판 앞에서 멍하게 메뉴판들을 읽었다.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멀리서 들려오는 한국어가 반가우면서도

부끄러워 펼쳐놓은 좌판과 거리를 두었다.

(다음에서 퍼 온 이미지)

노점에서 물건을 판다는 게 

유학생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봐

괜한 자격지심에 등을 돌리거나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내 정체를 숨기려

했던 적도 있었다.

콘비니(コンビニ) 불빛을 조명 삼아

이랏샤이마세( いらっしゃいませ)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쉼없이 외쳤던 시간들.

밤이 깊어지면 야쿠자들과 호스트들이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며 인도를 활보하고

나는 그들을 최대한 선한 눈으로 바라봤다.

혹시나 장사를 못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억지로라도 미소를

보였던 그 많은 날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모르면 용감하다던

옛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격하게 공감한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 버티고 있던 단골 식당은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행여나하는 마음에 오늘도

살짝 문 틈으로 들여다 보았다.

그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실까?

두 아들 데리고 일본에 와서 식당만

20년 넘게 하셨다는 민 씨 아줌마는

내가 대학원생이라고 했더니

졸업하면 자기 집에 시집 올 생각 없냐고

내 손을  잡고 자기 식당으로 데려가셨던

그날 밤, 난 노상 아르바이트가

마지막날이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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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신주쿠(新宿) 잘 안 나왔어? ]

[ 응, 우리 학교는 여기 신주쿠하고

거리가 멀어서 잘 몰라, 나는

신주쿠하면 언니가 먼저 떠 올라 ]

[ 아,, 그래,,, ]

기숙사는 멀었지만 어학원을 시작해

알바, 대학원도 신주쿠를 중심으로 

가깝게 있었다. 열성으로 그림을 그렸던 그 시절

 그룹전과 첫 개인전을 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고 그러고 보니 결혼식도 신주쿠였다.

후배는 신오쿠보 식당에서 알바비

못 받은 얘기를 하며 자기에겐

썩 좋은 기억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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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는 비빔밥을 좋아하나 봐?

맨날 비빔밥만 시키더라 ]

[ 그냥 한국적이라서....]

유학시절 최고의 외식 메뉴는

규동(牛丼)이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비빔밥을 주로 주문한다.

각종 나물을 맛볼 수 있고, 고추장에

쓰윽쓰윽 비벼 먹으면 한국에 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언제가부터 비빔밥은

내게 향수병을  치유해 주는 음식이 되었다.

 

[ 난 다시 유학생 하라면 못 할 것 같애 ]

[ 왜? ]

[ 너무 힘들었거든,, 나,, 양배추만 먹고

살았다고 그랬잖아,,

춥고, 배고프고, 돈도 없었고,,]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몇몇 부유한

부모님 덕에 윤택한 유학생활을 즐긴

친구들도 있었지만 거의 70%는

맨 몸으로 유학을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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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고 돌아오면 방은 항상

냉골이었고 한국처럼 온돌이 아닌 탓에 

방 안에서도 다운재킷과 양말을 신고

생활해야만 했던 그 시절을

이젠 따뜻하고 달달한 젠자이(ぜんざい)를

먹으며 웃으면서 얘기한다.

[ 그 놈의 바람은 왜 그리도 부는지..

어학원 우리 반 애는 집에서 동상

걸렸다니깐, 새끼 손가락이 ]

[ 진짜? ]

[ 정말이야,,그 애는 돈 아낀다고

전기 담요도 없이 찬물로 씻고 그랬거든 ]

[ 그래.. 그런 학생도 있었구나..]

일본의 겨울, 특히 북풍이 불어오는 날은

  돈 없고, 배고픈 유학생들에게

매서울 만큼 시려서 뼛속까지

추위를 느끼게 했다.

 

인간은 상대에 따라 변한다

요즘 우린 주말이면 아침부터 카페에서티 타임 시간을 즐긴다.커피를 마시다가 심심해지면 쿠키에와인도 한 잔 하고 또 지루해지면 샌드위치나케이크 한 조각 시켜놓고 둘이 야금야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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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부키죠(歌舞伎町)를 둘이서 걷는데

후배가 무섭다고 하길래 걱정 말라고

 여긴 내 나와바리(縄張り)라고

했더니 소리를 내서 크게 웃는다.

[ 그래도 우리 잘 버텼지? ]

[ 그래서 오늘이 있는 거겠지 ]

[ 맞아,,]

[ 그래도 여전히 이 키타가제(北風)는

적응이 안 돼.  너무 추워..

이제 배도 안 고프고 돈도 있는데..]

[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 찬바람은

그때처럼 춥고 시리다......]

 

커피 값, 돌려드릴게요.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해 둔 우리 집열대어들을 들고 아쿠아센터를 찾았다.결혼하고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물 생활을 정리했다.수조 두 개는 다음 주에 리사이클숍에서수거를 해 갈 것이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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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날, 남편이 털어놓은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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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우린 온몸을 밀착했다. 허허로운 마음 한 켠에

시린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北風が吹くあ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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