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친구인 타무라 상(田村) 에게
김치를 보낸 건 한 달 전이였다.
늘 그렇듯,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일본인 지인들에게
김치를 보내는 것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이열치열하도록 칼칼한 김치로
좀 맵게 담아 보냈다. 이번에도
배추, 무, 오이김치 외에
창난젓과 진미채 넣었다.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가 맥주를 보내왔다.
깨달음이 보자마자 이 자식은 맨날
술만 보낸다면서 집에서 술 안 마시는데
쓸데없이 보냈다며 투덜거렸다.
대학동창인 타무라 상과는 지금까지도
일 관계로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할 말 못 할 말 다 털어놓은
절친중의 한 명이다.
[ 다시 돌려 보내버릴까? ]
[ 그건 실례겠지... ]
[ 김치 보내준 당신한테 고마워서
보낸 것일텐데 맥주가 뭐야, 당신도
맥주 안 마시잖아,,]
[ 줄 사람 생각해 보고,, 아니면
회사 직원들한테 줘 ]
[ 그래야겠다 ]
그런 타무라상이 우릴 자기 집에 초대했다
깨달음은 날도 더운데 왜 집에서 보냐고
또 투덜거렸지만 타무라 상은 원래
집에서 만나 먹고 마시는 걸 즐겨했고
예전에도 몇 번이나 초대받았던 이력이
있기에 난 당연하게 생각했다.
[ 오랜만이네요, 몇 년만이죠 ]
[ 5년쯤 된 거 같네요..]
아내분도 그대로이고
그 집의 냄새도 그래도였다.
건배를 하고 코로나 얘기를 시작으로
우린 5년간 있었던 사건 사고를
나누기 시작했다.
[ 정 상, 다리 골절상 당했다던데 지금은
어때요? 어디가 부러진 거예요? ]
[ 아. 그렇게 큰 골절은 아니고,,
지금은 다 나았아요 ]
타무라 상은 동창 요시다(吉田) 와이프가
올봄에 지병으로 떠난 것을 알고 있냐면서
후배 미나미(南)도 작년에 죽었다며
요시다가 외롭다며 술친구를 해달라고
날마다 귀찮게 한다고 하자, 깨달음이
요시다는 늦장가를 들어서 더 애틋한
모양이라고 위로 많이 해주라고 했다.
이젠 해년마다 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놀랍지도 않은 나이가 됐다며 씁쓸해했다.
아내분은 남편 타무라 상이 퇴직하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통에
숨 막혀 죽겠다며 제발 날마다
어디를 다니든, 뭘 하든 했으면 좋겠다며
불만을 하나둘씩 꺼내 놓았다.
하루 세끼를 챙기는 것도 지겨운데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힘들다며
내게 좋은 취미생활 같은 게 없냐고 물었고
그걸 듣고 있던 깨달음이 불쌍한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험담을 하고 있을 때
또 한 친구인 오쿠야마(奥山)상이
양손 가득 술을 사들고 왔다.
현장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다며 더워서 쓰러질 것 같다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우린 코로나 얘기부터 다시 시작해
건강, 면역에 좋은 음식이 뭔지
왜 깨달음은 코로나에 걸렸는지
헬스장을 다니는 이유가 뭔지 그런
애기들이 오갔었다.
[ 근데 와이프는 오늘도 바쁜가 봐 ]
[ 아니.. 그건 아니고 나,, 작년에
이혼했어 ]
깨달음이 염려차 물었던 아내의 근황인데
이혼했다는 너무도 뜻밖의 소리에 잠시
모두가 얼음처럼 굳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오쿠야마 상의 와이프도 나와 같은
한국인이고 이 집에서 우리와
같이 술을 마신 것도 여러 차례여서
솔직히 내가 가장 놀랐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혼했을까
궁금하다가 문득 남들은
이혼을 참 잘도한다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개인적으로 만나 두어 번 식사를
하면서 일본인과 사는 한국인 아내의
고충 같은 것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는데
카톡 속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까..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깨달음은 이혼 이유가 뭐냐고 캐물었고
타무라 상은 그걸 왜 묻냐고 부부가
결정한 것을 궁금해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둘이서 옥신각신했다.
황혼이혼이네, 남자는 혼자 살면 금방 죽네,
자업자득이네..니가 바람이 났냐 등등
여러 말이 오가는데
난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난,, 결혼을 하고 지금도 늘 이혼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고 있다.
깨달음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부적합한 인간임을
결혼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난 그녀처럼 용기가 나질 않았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별 게냐고들 하지만
나로 인해 발생되는 상대의 상처 역시
내 몫으로 돌아올 것 같아서 난
지금까지 부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혼을 쉽게 하는 부부들은 없다.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게 이혼이다.
부부의 일은 오직 둘만이 알기에
누가 평가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고
우린 각자, 서로의 삶을 택한 그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지라고
음원을 보내는 게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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