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온 덕분에
빵집에 줄을 서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이라고 하자
그녀는 이곳이 처음이라며 내 뒤에 서서
사람들이 뭘 사는지 눈으로 체크했다.
오늘은 일관계로 모리 상(森)과 함께
긴자(銀座) 쪽으로 나오게 됐다.
우리가 방문해야 할 곳은 미리 검토해 둔
상태여서 둘이서 특별히 준비할 건 없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방문을 해야 해서
그분께 드릴 간단한 음료 선물도 미리
사 두었다.
12시 30분이 되자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고
수업시간은 1시간 예정이었는데
회원님 댁을 나오니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너무 열심히 했으니 에너지 충전을
해야될 것 같아 점심을 먹으러 그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배가 고픈 상태여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면서
사무실에 연락을 했더니 그대로 퇴근을 해도
된다길래 우린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모리 상은 나와 식사를 하는 게
처음인 것 같다며 밥 먹고 가자고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 이미지가 어땠냐고 물었더니
쉽게 말을 걸 수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며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단다.
내가 원래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니고
그냥 업무 외에 별로 말을 잘 안 해서
그런 딱딱한 이미지였을 거라고 했더니
다른 회원들을 통해서 나에 대한
얘길 많이 들었단다.
[ 뭐래요? ]
[ 개인적으로 만나면 진짜 친절하다고,,]
[ 나,, 별로 안 친절한데..]
[ 일 할 때는 엄청 무섭다는 말도 들었어요 ]
[ 무섭다고? ]
[ 네. 저는 안 무서웠어요 ]
입사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은데 내게 가끔 물어보면 항상 알기 쉽게
잘 가르쳐줘서 무서운 이미지는 없었다며
다른 팀원들이 모였을 때 오갔던 얘기들도
스스럼없이 말해줬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얘길 조금씩 털어놓았다.
시골 출신이어서인지 아직까지
도쿄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과
가족관계, 그리고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오늘 나와 함께
일을 하면서 느낀 점들, 또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식사하자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끌어주니까 왠지
마음이 편하단다.
우린 사회생활의 고충 같은 걸 좀 나누다
레스토랑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역으로 걸어가는데
그녀가 커피숍에 가잔다.
방금 레스토랑에서 더치페이하지 않고
식사값을 내주셨으니 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나는 디저트 먹으면서 커피 마셨으니까
괜찮다고 사양을 했다.
[ 아니, 그래도 너무 고마워서요 ]
[ 뭐가 고마워, 처음이어서 사는 건데 ]
[ 그래도,, 다른 팀장님은 안 사주셨어요.
그래서 꼭 커피 사드리고 싶어요 ]
괜찮다고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했지만
꼭 사고 싶다길래 다음에
마시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녀가 떠나고 난 환승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지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녀가 주변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들었다며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리며.....
[ 정 상은 너무 과묵해서 무섭대요 ]
[ 정 상은 조용하면서 일처리가 빠르대요 ]
[ 정 상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친한 사람들과 만나면 농담도 잘 한대요 ]
[ 정 상에게는 어설픈 변명이나 거짓말을
해선 안 된대요, 다 꿰뚫어 봐서 ]
[ 정 상은 잔소리를 안 해서 좋은데
그대신 정곡을 찔러서 아프대요 ]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나라는 사람은 대충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내 친구나 후배들에게도 자주 들었던
말들이기도 해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되도록이면 부드럽고 간단명료하게
지시하려했던 건데 정곡을 찔러서 아프다는 말이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올 초에 해 본 mpti 성격유형에서
난 INTJ가 나왔다.
할 때마다 다른 유형이 나와 신빙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던데 역시나 맞는 것도 있고
전혀 다른 성향이 나오기도 했다.
깨달음은 ESTJ가 나왔을 때 아주 만족해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고
지적할 게 없어서 참는 것도 아니고
조용하고 싶어서 조용한 게 아니다.
맞춰가며 살아야 해서 침묵할 때가 많고
봐도 못 본 척해야만 할 때도 있고
못 이긴 척 따라가야 할 때도 많다.
한국에서나 이곳 일본에서나
남들이 보는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좀 더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야 될 것 같다.
정곡을 찌르기보다는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둥글둥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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