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차(グリーン車)에 올라탄 우린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코볼을 말없이 나눠 먹었다.
그냥 바다 보러 가자는 한마디에
출발 3분전에 후다닥 전철을 탔다.
늘 그렇듯 목적지는 정하지 않고
그 상황에, 그 시간에, 그 분위기에 맞춰
감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 부부.
종착역까지 노선도를 보면서
요코하마(横浜)를 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오랜만에 가마쿠라(鎌倉)를 가보기로 했다.
50분쯤 달려 가마쿠라 역에 내렸는데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눈에 띄였고
캐리어를 끌면서 한 손엔 핸드폰으로
목적지를 찾은 이들이 많았다.
[ 여기 5년 만에 왔나? 별로 안 변했네 ]
[ 근데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일본의 옛 풍경이 느껴지는 가게가
많았는데 지금은 젊은 층과 관광객을 타켓으로
하는 인기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 고로케를 여기저기서 파네..]
[ 간단히 먹기 쉽고 장사가 잘 되니까
너나없이 다들 파니까 특색이 없어졌네 ]
우리가 좋아했던 쯔게모노(漬物) 전문점이
두 곳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엔
고양이카페가 자리하고 있었고 다른 곳은
똥모양?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상점가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보며
아사쿠사(浅草)보다 못한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가마쿠라는
그 대신 다이부쯔(大仏)가 있어서
그걸 보러 오니까 올 만한 가치가 있다며
내게 보러 갈 거냐고 물었다.
[ 아니 ]
[ 일본 3대 대불상 중에 하나야 ]
[ 알아, 근데 올 때마다 봤잖아, 한국에서
친구들, 가족들 오면 맨날 데리고 와서
더 안 봐도 돼 ]
[ 그러긴 하네, 그럼 슬램덩크 배경지인
철도 건널목 볼 거야? ]
[ 아니, 관심 없어 ]
[ 아, 당신 만화 같은 것도 싫어했지 ]
내가 그쪽으로는 전혀 무관심인 걸
다시 확인한 듯한 깨달음은
상가를 돌아 나와 바다 쪽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바람도 차가운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놀랐다.
추위보다 파도를 가르는 그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에 나왔을 거라며
보기만 해도 추워진다고 깨달음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멍하니 서서 바닷소리를 듣고 있는데
깨달음이 배가 고프다며
뭐 좀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점심은 훌쩍 지났고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어서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장소를 옮겼다.
난 샌드위치를, 깨달음은 후렌치토스트를
주문해서 서로 조금씩 나눠 먹다가
갑자기 제주도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곳에 별장이 있었으면 하냐고 물었다.
[ 아니야, 별로... ]
[ 당신이 바다를 좋아하니까 물었어 ]
[ 예전에는 좋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 ]
깨달음이 날 한 번 쳐다보더니 조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내 모습이 좀 뭐랄까
사는 재미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단다.
기운도 없고, 생기도 없고 의욕도
없어 보였다며 무슨 고민 있으면
털어놓아보란다.
[ 없어..]
[ 진짜로? ]
[ 응]
[ 2월, 아버지 기일 때 한국 못 가서 그래?]
[ 아니야, 뭐 4월에 가잖아, 나보다 당신이
서운한 거 아니야? ]
2월에 한국에 갈 예정이었는데
깨달음 회사 직원이 심부전으로 위험한
상태여서 회사를 비우기 힘들다고 해
4월로 스케줄을 변경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다녀오라고 그랬지만
나 역시도 쉬기에는 애매하게 날이
겹쳐서 그만뒀다.
요즘, 난 특별히 우울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재밌는 일도 없는 건 사실이다.
매일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단지, 하나 염두에 두고 있다면
올 해를 끝으로 정식으로? 백수가 되면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깨달음이 그런 멍한 모습에
신경 쓰였던 것 같다.
[ 나,,백수 되면 뭐 하지? ]
[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깨달음은 골프를 쳐라, 여행을 떠나라,
태권도를 배워라, 도예공방을 다녀라 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섞어가며
계속해서 말을 해왔다.
정말, 백수가 되면 뭘 해야 할까...
사고가 정지된 것 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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