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는 서류에 필요한 사항들과
기재내용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처음부터 차를 살 계획은 없었다.
결혼을 하고 이곳에 이사오기 전에 살던 곳에서도
우린 굳이 차가 필요치 않았다.
교통이 편리한 위치적인 것도 있었고 둘이서
그렇게 차를 가지고 장거리를 이동을 할 일도
그닥 없었고 드라이브를 즐길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린 차를 구입해야만
했던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긴 어렵지만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지불했으니 딜러에게
아주 편하고 괜찮은 고객이였을 것이다.
[ 차를 너무 안 타셔서,,걱정이였어요 ]
[ 그니까요,,남편이 면허가 있으면 좀 더
탔을련지 모르는데..막상 차가 있어도
쓸 일이 별로 없더라구요 ]
[ 그래도 너무 새 거여서 괜히 제가
아깝네요,,좋은 차여서 그냥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꽤 있는데.. ]
[ 아니에요, 저희는 더 이상 필요치 않으니까
괜찮아요 ]
5천키로도 못 달린 차를 팔기로 결정한데는
단순한 이유 하나였다.
가지고 있어도 이 차를 우리가 더
사용하지 않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깨달음은 전날밤까지 그냥
두는 쪽이 어떻겠냐고 나를 설득했었다.
[ 당신, 제주도에서는 차가 있어 좋다고
우리 차 제주도에 두자고까지 했었잖아 ]
[ 제주도는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곳이였잖아,
근데 여기서는 운전할 일이 없어 ]
[ 한국에 가져 가면 되잖아 ]
[ 언제 귀국할지 전혀 계획이 없는데
언제까지 저렇게 주차장에 둘 거야?
좋은 운전자 만나서 슁슁 달리는 게 저
차에게도 좋은 일이야 ]
한국에 가져가는 것도 잠깐 생각했었는데
그땐 필요하면 사면 되는 것이기에
복잡하게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집으로 올라오며
문득 한국이였으면 난 과연 차를 팔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폼잡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외제차를
그냥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솔직히 20여년전,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게 살아왔다. 주위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허세를 부리기도했고
괜시리 폼을 잡고 살았었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는 그런 허세가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짓인지 일본인들의
절약습관, 소비패턴들을 보면서
거품같은 허세들을 버릴 수있었다.
무엇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문화가
얼마나 무의미하며 손실이 큰 것인지
실속있는 경제개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자기 분수에 맞게 산다.
자기 월급에 맞게 계획을 세워 소비를 한다.
내게 필요없는 것들은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으며 예를 들어 본인의 수입이
나이키 운동화를 살 정도이면
그것에 만족하며 무리해서 유행하는
비싼 브랜드나 명품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물욕이 없어서가 아닌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여서 남의 눈을 의식하고 폼생폼사를
위한 어리석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허세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단 분수에 맞지 않는
헛된 욕심이나 남과 비교해가며
과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목돈이 들어가는 해외여행이나 비싼 물건을
구입해야 할 경우는 매달 그만큼의 절약을
조금씩 조금씩 해가며 알뜰하게 살아간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또 한가지 이곳에서 배운 건 미리 양보하고
배려하는 법인데 내가 먼저가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 이익이나 내 편리보다는 남을 먼저 돌아보게
되었고, 아무렇지않게 내가 먼저였던 생활이
이곳에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상대의 불편한 부분을 먼저 알아차리고
우선권을 주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뭐든지 먼저 하시라고, 먼저 가시라고,
먼저 드시라고, 먼저 앉으시라고
권해드리면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인
어딜 가나 빨리 가려고 하고, 뭐든지
먼저 하려고하는 조급함이 많이 고쳐졌다.
양보와 배려는 남이 해주는게 아닌
내 스스로가 먼저 해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넘치게 가진 것을 나누는 것도 배려이겠지만
내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에게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나누는 게 진정한 배려임을 배웠다.
양보와 배려는 재물이 많아서, 학식이 높아서
성격이 좋아서 잘하는 게 아니다.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너그럽게
바라보며 한발 양보하면 훨씬
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몸에 밴 양보, 몸에 밴 배려,
몸에 밴 아리가토(감사합니다)를
어릴적부터 철저하게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배려하고
그 배려에 감사함을 표현한다.
19년전, 처음에 일본에 왔을 땐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고 그런 작은 것에
일일이 고맙다해야하나라고
그냥 넘어가 지나쳤는데
이젠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환경에 맞게
적응되어져 가는 것도 있겠지만
입으로 직접하는 감사표현은 상대를
꽤 기분좋게 만들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문을 열어줘도, 문을
잡아줘도 고맙다는 말을 좀처럼 듣기 힘들다.
나역시 한국에서 있을 때는 고맙다는
말에 인색했는데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더라도 고맙다는 말을
자주하는 게 본인에게 훨씬
유쾌한 일이라 걸 알게 되었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잠깐의 배려,
엘리베이터에서 모두가 내릴 수 있게
열림버튼을 잡아주는 아주 작은 배려,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다면 또 그곳에
맞는 그 나라만의 상식과 문화,풍습에 맞춰
변화하며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이곳에 살게 되면
사회적인 적응에 의해 고쳐지고 몸에 배이게
되는 것들이 더 많아 질 것이다.
그런 변화들이 내가 일본화 되었다가 아닌
스스로가 선진시민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좋은 것들은
배우고 익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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